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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우리는 모두 디자이너

챕터 : 지적자본론

by 재민

<지적자본론>의 부재는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미래’이다. 제목처럼 디자인(기획이라고 이해 할 수도 있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개인이나 기업의 디자인 능력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건 작가 마스다 무네아키의 경험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책을 쭉 읽으면서 이상적인 상상을 이뤄낸 마스다 무네아키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말이 힘있게 다가왔다.


건축을 배우면서 디자인 사고를 배운다. 문제점을 찾고, 리서치하고, 분석하고, 기획하고, 솔루션이나 제안에 이르는 사고방식을 배웠었다. 이런 흐름에서 <지적자본론>에서 말하는 디자이너는 시각적인 디자인만 집중하지 않고 기획까지 아우르는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나에게 더 와 닿았다. 학교에서 배운 디자인 사고는 정말 재미있었고 그 부분에 매료되어 건축을 좋아했다.


그러면 과연 건축가는 디자이너일까? 건축가는 종종 공간 디자이너, 건축 디자이너 등의 모호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꼰꼰 건축에서 나는 과연 건축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들기도 했다. 물론 이 질문의 답은 나의 좁디좁은 꼰꼰 건축의 경험을 배경으로 한다. 평소 회사에서는 디자인 사고를 사용할 수 없었고 그나마 ‘베트남 국제 현상’을 할 때 쓸 수 있었다.

그때 에 과장님, 용 대리님, 동기 S랑 나는 종종 회의실에 모여 프로젝트 전략을 짜곤 했었다. 어떤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떤 프로그램이 들어가고, 어떤 공간이 만들어져야 하는지 로직을 짜고 이에 맞는 뒷받침 될 자료를 찾고 보고서를 만들었다. 우리는 지어질 건물의 미래를 그렸다. 그 건물은 터무니없는 상상이 아니라 꽤 현실을 반영하는 정말 있을 법한 상상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현상도 그렇고 인허가 프로세스에서도 디자인 사고를 사용 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특히 아파트 프로젝트를 할 때는 시공사마다 매뉴얼이 있어서 부대시설 구성, 평면 구성뿐만 아니라 창 높이, 난간, 단열 등까지 매뉴얼에 맞춰서 해야 했다. 사실상 꼰꼰 건축에서는 ‘디자인’을 많이 할 수 없었다.


디자이너라는 개념에 기획까지 포함된다면 나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물론 나는 연차가 많지 않으니 좀 더 기다리면 기획하고 계획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눈치껏 봐도 공간을 기획한다는 개념보다는 기획된 건물 계획을 실제로 지어질 수 있도록 현실화 하는 것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디자이너로 사는 삶은 무엇일까? 모두가 디자인해야 한다는 마스다 무네아키의 말의 뜻은 무엇일까? 결국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같다. 디자이너는 문제를 찾고 질문하며, 문제를 분석하고 현재를 파악해서 현실과 이상의 교차점을 찾아 그걸 제품이나 서비스로 만든다. 사이드 프로젝트가 하나의 기획이고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개념이면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모두가 디자이너 아닐까?


나는 작더라도 내가 기획하고 만드는 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디자인하는 게 서비스건 제품이건 소설이건 상관은 없다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굳이 내가 만드는 것이 건물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더 큰 목표였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 나는 디자인 사고를 통해 세상에 이롭고, 재밌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배우는 건축도 재밌게 했고 건축을 좋아했다. 그런데 건축 실무를 하고 있는 나는 과연 디자이너로 성장하고 있는 걸까?


나는 디자인 사고가 길러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디자이너가 되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어진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사회에서 경쟁력을 꼰꼰 건축에서 잘 키우고 있는 걸까? 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데 여기서는 기계가 되어 가고 있지는 않나. 내가 하는 일은 디자이너가 해야 하는 일 중 기계적인 한 부분일 뿐이다.


꼰꼰 건축에서는 처음부터 기획이 된 건물이 들어온다. 안에 무엇이 들어갈지, 어떤 사람이 쓸지, 구성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기획된 매뉴얼이 온다. 나는 그 기획서에 맞춰 선을 컴퓨터로 그리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실무의 건축가는 문제를 찾지 않는다. 물론 내 위치와 자리의 문제겠지만, 이렇게 해서는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지적자본론>을 읽으면서 ‘디자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디자이너가 되어 기획까지 같이한다는 건 나에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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