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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 절이 싫어진 이유

챕터 : 규칙 없음

by 재민

<규칙 없음>도 <프리워커스>에 나왔던 추천 도서였다. 그래서 <지적자본론>을 다 읽고 나서 곧바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뜨거운 여름이었지만 그래도 나와 용 대리님은 길 건너 투썸에서 독서 모임을 이어 갔다.


<규칙 없음>은 넷플릭스의 설립자이자 경영자인 리드 헤이스팅스와 비즈니스 스쿨 교수 에린 마이어가 쓴 넷플릭스 회사에 관한 책이다. <프리워커스>에 나온 추천 도서였지만 자세한 내용설명은 없어서 단순 호기심에 이끌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다 읽고 나서 보니 넷플릭스처럼 중독성 있고 매력 있는 책이었다. 그만큼 얻어 갈 수 있는 것도 있었고 글도 잘 읽혀서 재미도 있는, 역시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답다.


<규칙 없음>에서는 넷플릭스의 남다른 사내 문화에 관해 이야기한다. 왜 그런 문화를 만들었는지 여러 인사이트와 경험들이 담겨있다. 어떻게 넷플릭스만의 남다른 문화를 만들었는지 읽으면서 감탄하기도 했다. 계속 든 생각은 ‘나도 넷플릭스 같은 회사를 경험해 보고 싶다’였다. 물론 책에서는 현실의 모든 고충을 다 담지는 못했겠지만 정말 치열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그렇게 특별한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가진 넷플릭스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우리 회사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본 넷플릭스는 이상적인 환상이 되면서 오히려 점심시간이 끝나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 침울해졌다. 돌아가는 길이 침울했던 건 몇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첫 번째로 꼰꼰 건축은 문화적으로 보수적이라는 것. 두 번째로는 꼰꼰 건축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세 번째로는 모든 회사가 꼰꼰 건축 같지는 않을 텐데 왜 이런 문화에 정착해 있는지에 대한 답답함이었다.


첫 번째 이유인 꼰꼰 건축의 보수적 문화를 전에는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보수적인 것은 알았지만 인턴 경험을 제외하고는 첫 회사였기 회사는 당연히 보수적인 것이고 회사가 다 비슷비슷하다고 어림잡아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분명 다른 회사는 다를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 계속 들었던 ‘회사는 어디나 비슷비슷하다’를 믿었다. 어차피 이직해도 이름만 다를 뿐 대부분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굳어있었다.


회사마다 문화가 다른 것은 주변 친구들을 통해 알 수 있었지만, 단편적인 부분들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경험해 보지 않은 넷플릭스의 사내 문화를 책으로 읽으니 얼마나 꼰꼰 건축의 사내 문화가 보수적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이건 내 기준이다. 꼰꼰 건축은 종종 올드한 건축 회사라고 낮은 연차 직원들은 말하는데, 아무래도 기성세대가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젊은 세대들이 끌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와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원래 그런 줄만 알았고 자연스레 끌려가고 있었다. 불만은 많았지만 아무 말 못하고 그러려니 하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다음 이유에서 이어진다.


두 번째 이유인 꼰꼰 건축의 사내 문화 변화 가능성이다. 나의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미미하다고 봤다. 종무식이나 각종 행사에서 회장님은 젊은 세대에 관해 공부를 하신다며 당당하게 90년대생의 퇴사를 이야기했다. 물론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가 겪는 감정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회장님은 자신있게 알고있고 이해가 된다고 했다. 하지만 연설에서만 말할 뿐이지 회사 정책이나 문화에는 변화가 없었다. 한번은 회사 창립기념일에 성장에 관한 욕구가 만족하지 않아서 퇴사자가 많다고 했지만, 연설 후 어떤 임원도 직원들의 성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나 성장에 대한 고충을 직원들과 나누지 않았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꼰꼰 건축이라는 절은 많은 중의 동의와 합의 끝에 이루어진 시스템이다. 그걸 바꿀 의향도 없는 절에 한낱 중인 나는 변화를 원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보수적인 문화가 싫고, 정책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바꿀 수 없었다. 너무 답답했지만, 내 바람과 상관없이 꼰꼰 건축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이런 문화에서 일하는 게 익숙한 사람들이 꼰꼰 건축에 남아 있는 것이기도 하고 다른 회사에 있는 꼰꼰 건축 출신으로 만들어진 팀도 그 문화를 이어 나가고 있다고 카더라로 듣곤 했으니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세 번째는 답답함이었다. 왜 문화를 바꾸려는 사람이 없는지에 대한 답답함이 있었다. <규칙 없음>을 읽고 모든 회사가 다 똑같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회사는 거기서 거기다’라는 선입견도 깨졌다. 그러면 나에게 맞는 회사로 가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아직 ‘내일채움공제’는 끝나지 않았다. 바뀌지 않는 회사 말고도 나의 목표를 위해 버티는 시간이 답답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직원들이 나같이 답답해한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많은 숫자의 인원들이 그렇다. 그러나 회사를 바꾸려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나처럼 각자의 목적을 위해 답답하지만 이 회사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꼰꼰 건축을 평생 다니지 않을 거라는 전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니까. 더 좋은 절로 가서 수행을 이어가면 되니까.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꼰꼰 건축이 지금 문화에 정착해 있는 건 이게 대부분의 직원이 일하는 방식과 문화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그래서 내 입맛에 맞춰 사내 문화를 바꾼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분명 변화에 있어서 한 명이 이득을 보면 다른 한 명은 손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를 위한 정책은 사실 존재 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이게 진짜 이유일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였다.


<규칙 없음>은 너무나 당연한 듯이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기업의 혁신적인 문화를 다룬다. 분명 특이한 케이스이지만 모든 회사가 꼰꼰 건축과 같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좋은 문화, 나에게 더 맞는 문화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회사는 다 다르다. 누군가 회사는 유기체와 같아서 계속해서 변화하기도 하고 모두 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비록 점심시간 30분 동안 읽는 <규칙 없음>이지만 그 시간만큼은 내가 넷플릭스에 다니는 것같이 즐겁고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었다.


독서 모임을 하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아닐 것 같지만 이상적이고 나에게 맞는 회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좀 더 큰 확률로 맞는 회사가 있을 것이다. 그 회사가 유명하고 잘나가지는 않더라도 내가 좋아할 수 있고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그런 회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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