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30, 프랑크푸르트에서
지나온 공간 : 프랑크푸르트 공항, 뢰머 광장, 마인 강변
착륙한 시간은 현지 시각 4시 40분, 한국 시각으론 밤 11시 40분이었다. 오랜만의 만나는 타국 공기, 거기에 혼자라는 불안감이 엄습해 바가지인 걸 알면서도 내리자마자 즉시 공항에서 유심을 구입했다. 여행에서 즉흥으로 움직이는 걸 선호한다고 말해왔지만, 사실 이 부분은 그냥 내 준비성이 모자란 것이다. 유심, 국제 면허/학생증, 항공권, 유레일패스, 뮤지엄패스 등 - 한국에서 미리 구비해줘야 하는 것들은 핑계 대지 않고 그렇게 해둬야 한다. 즉흥으로 행동하더라도 무조건 더 싸고, 더 편한, 도움 되는 것의 준비와 최소한의 사전 조사는 필수이다. 게으름뱅이가 아닌 진정한 즉흥인으로 인정받고 싶으면 이에 유념하도록 하자.
그래도 공항 바가지 유심이 남긴 경험도 있다. 공항에서 급히 유심 신청서를 작성하고선 키가 190은 되어 보이는 외국 남성 뒤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머리가 저 정도로 떡질 때까지 안 감는다고?' 생각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팔을 곧게 편 채 부르르 떨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옆 직원들의 진심 어린 알유오케이가 아니었다면 퍼포먼스나 주변에 대한 위협으로 생각했을 정도로 본격적이었고 격렬했다. 하필 그는 덩치도 커서 작은 여자 직원들은 차마 다가가질 못했고, 그가 서서히 뒤로 쓰러지자 나도 모르게 내가 그를 부축하여 떠안고 있었다.
분명 간질(뇌전증이 정확한 용어이다) 증상이었다. 안타깝게도 몇 년 전 공부했단 사실만 기억나고 떠오르는 건 머리를 딱딱한 것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구강 내 분비물을 대비해 옆으로 누이며 기도 확보를 해야 한단 것뿐이었다. 서서히 그를 벽에 떨어뜨린 상태로 뒤로 눕히며 머리 아래에 내 손을 받쳤고, '푹신한 뭔가'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던 찰나에 뒤에서 누가 pillow, pillow를 요청해주었다. 다행히 남자는 따로 기도에 찰만한 분비물 없이 원활하게 숨을 쉬는 상태로 전환됐다. 나도 내 갈 길이 있는지라 한바탕 소동이 휩쓸고 간 후에는 옆에 서있는 한 남자(이전에 crew로 근무한 적 있다고 하며 현장을 전두지휘했다)에게 인계하고 자리를 떠났다. 언제 어디서 Epilepsy 환자를 만날지 모르니 우리는 세 가지만 기억하도록 하자. 머리 보호, 기도 확보, 여유가 된다면 이번이 첫 발작이냐고 묻는 질문까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티켓을 구매해 중앙역까지 열차를 타고 와서 내렸다. 아직 해가 훤한 늦여름의 오후 6시. 정면 게이트를 나서 고개를 13도쯤 들어 위를 올려다보면 대문짝만 하게(사실 당연히 대문보다 훨씬 크다) 'KUMHO TYRE' 라 적힌 글자 구조물이 한국인 여행객을 반긴다. Tire가 아니라 Tyre라니, 금호타이어가 보이더라도 역시 외국에 온 것이 실감 났다.
프랑크푸르트, 독일 서부에 위치한 독일 경제와 금융, 교통의 중심지. 이를 증명하듯 19세기 말 프로이센 조각상들이 남아있는 중앙역만 지나면 유로타워를 비롯한 깔끔한 현대식 마천루가 즐비하다. 프랑크푸르트는 대도시임에도 관광할 곳이 마땅찮다는 평이 많은데, '유럽 풍경' 하면 한국인이 떠올릴 낮고 장식 많은 석재 고건물들을 쉽게 길가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유럽의 대도시들과는 달리 서울 종로 2가의 빌딩 숲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나마 종로는 청계천이나 종로3가에서 탑골공원 뒤로 이어지는 먹자 골목, 포장마차와 광장시장 등 차가운 근무를 마치고 따스함에 몸을 비빌 장소가 많은데, 프랑크푸르트는 글쎄, 자잘한 삶의 풍경이 많이 제거된 느낌이다.
이 도시가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춘 데에는 전쟁과 관련이 깊다. 과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서부 전선을 중심으로 연합국은 높은 강도의 폭격을 이어갔고, 프랑크푸르트는 그 중심에서 상당수의 건물을 잃었다.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 독일은 그만큼이나 인명- 재산 피해도 심각했는데, 추정 군인 사망자 수는 400만 명으로 연합국 전체와 같은 동맹 패전국인 일본과 이탈리아의 군인 사상자 수(소련 제외)를 합친 것보다 많았고 전체 주거지 약 40%가 폭격으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2000년대 이후 여러 건축-예술가들이 도시 복원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관광객들에게 프랑크푸르트는 인기가 없다. 한국-독일 직항 노선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많이 배치되어있어 어쩔 수 없이 머무르는 사람들이 많고, 공항에서 중앙역으로 와 곧장 다른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독일 볼 거 없다. 그런데 프랑크푸르트는 더 없다.'
일부 유럽 여행객들의 이러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에서 2박 일정을 잡아버렸다.
첫째 이유로는 교통의 중심지라 주변 소도시를 들리기 좋기도 하고, 둘째로는 유럽 여행 1,2일 차에는 정말 아무래도 좋은 기분이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에게도 내게 정을 줄 기회 정돈 줘야 하지 않겠는가. 낯설지만 잘 정돈된 길을 걷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첫날은 광장과 주변 인근을 둘러보기로 마음먹어 저녁도 먹을 겸 짐만 풀고서 곧장 호텔 문을 나섰다.
원래 가려고 한 곳은 나름 현지인 맛집이라는 학센 등을 파는 식당이었으나 줄이 너무 길어 가지 못하고 배가 고파 대강 옆에 있는 버거집에서 첫 끼를 먹었다. 카운터 직원의 추천을 받아 적당히 바비큐 소스가 올라간 14유로짜리 수제버거를 먹었는데 살인적이라는 유럽 외식 물가를 감안하면 가격 대비 맛도 훌륭했다.
다만 어지간하면 음료를 시키는 것이 기본 문화이자 매너(예의까지 인지는 단언 못하겠습니다)라는 정보 때문에 4유로짜리 레모네이드를 시켰으나 너무 달고 가루만 푼 그저 그런 음료라 아쉬움이 남았다. 미취학 아동 시절 레모네이드 만들어 파는 내용의 게임을 한 기억으로는 싱싱한 레몬을 짜서 주는 거였는데....... 그새 세상이 많이 바뀌었나 보다.
기존 계획이었던 학센 집은 버거를 먹고 나와서도 줄이 길었다. 정보력 좋은 한국인도 역시나 많이 보였다. 결국 벼르기만 하다 끝까지 먹지 못하고 프랑크푸르트를 떠났는데, 혹시 갈 일 있으면 여러분이 대신 한번 시도해봐도 괜찮겠다.
배도 채웠겠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근처 뢰머 광장으로 향했다. 느지막한 저녁에 유럽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 별다른 계획 없이 짐을 풀었다면, 당신이 무료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기 가장 좋은 방법은 무작정 광장으로 나가보는 것이다. 가는 발걸음에 날씨 좋은 석양이라도 슬쩍 물들기 시작한다면 일곱 살 아이처럼 무지개색 비눗방울이라도 불고 싶은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로마, 바르셀로나, 파리, 피렌체, 프라하, 세비야 등, 우리가 주로 가는 유럽의 도시에는 관광객들도 익히 들었을 법한 광장을 적어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광장을 가면 커피와 음식을 겸하는 식당에서 내놓은 테이블과 의자가 깔려 있고 분수대나 조각상 같은 공공 건축물 주위나 나무 벤치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맥주를 마시고 웃고 떠들며 담소를 나눈다. 사람이 모이니 아코디언, 바이올린을 든 악사들이 버스킹으로 멋진 배경음악을 깔아주고, 유럽 특유의 낯가림 없는 문화가 더해져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목적 없이 합석하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우리나라였으면 피아식별 애매한 조명과 쿵쾅거리는 붐뱁 사운드 아래에서, 나이 서른다섯 이하 + 이성 대상 조건에서만 가능할 합석이 (뚜렷한 목적 하에) 저렇게 교양 있는 그림으로 이뤄지니 대한민국 대표 외향인으로서 국내 문화가 아쉽기도 하다.
뢰머 광장은 위에서 열거한 도시들의 대광장과 비교했을 때 큰 성당이나 유적지다운 건축물도 없고 크기도 작다. 그렇기 때문에 탁 트이는 개방감이나 너른 평지에서 찾을 수 있는 압도감은 부족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대신 이곳엔 평화로운 중세 유럽, 작은 공국의 젊은 왕이 대관식을 거행할 것만 같은 아기자기한 동화 마을 감성이 있다.
실제 뢰머 광장은 15세기 초 귀족의 저택을 매입하여 개조한 곳으로, 광장의 주변은 뾰족한 삼각형 지붕을 가진 큰 목조 가옥들로 둘러싸여 있다. ‘오스트차일레’라 불리는 목조 가옥은 가로세로 대각선으로 이어진 붉은 창틀과 새하얀 회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칫 어설프면 한국에서 보던 장난감 마을이나 놀이동산, 공공기관에서 야심차게 기획하여 모방한 유럽 콘셉트 관광 마을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깔끔한 마감과 주변 구조물들과 조화로 이곳이 모방이 아닌 OG, 진짜 유럽임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진정한 오리지널리티는 실제 유럽인들이 그곳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술병을 한 손에 끼고 다니는 모습이 친숙한 유럽. 늦은 시간이라 대부분의 마트와 리커샵의 영업시간이 끝나 몇 차례나 닫힌 매장 문을 마주한 끝에 편의점 비슷한 곳에서 크롬바허(klombacher) 병맥을 하나 사서 마인 강변으로 향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함부로 길에서 캔맥을 까려다 경찰에게 제지당한 일이 떠오르며* 그때의 한풀이를 하듯 근처 철제 책상을 병따개 삼아 호기롭게 뚜껑을 땄다. 순간적인 기압 변화를 이기지 못한 맥주가 거품이 되어 솟아올라 얼굴과 손을 조금 적셨지만 마냥 좋았다. 오늘은 유럽 첫날이니까.
*캘리포니아에서는 길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불법이다.
한참 더웠던 독일의 여름이 막 풀린 탓인지 강변에는 광장보다 사람이 많았다. 한강에 있는 것과 화려해 보이는 유람선도 갑판과 식당에 사람들을 가득 채운 채 형형색색의 알전구로 수놓은 형채를 뽐내며 유유히 승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왼쪽 허리춤엔 작은 힙색을 메고 오른손엔 맥주병을 들고서 강변을 따라 산책하다 중앙역 근처 숙소로 다시 들어왔다. 설렘으로 잠시 덮어두었던 13시간의 비행과 4시간의 외출의 여독이 샤워를 마치자 몰려들었다. 오늘의 사진을 잠시 정리하고 내일의 일정을 대략 머릿속에서 브리핑하면서 알람 없이 잠에 들었다.
첫날, 아무래도 좋은 프랑크푸르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