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유럽에서 헬스하기

8.31 프랑크푸르트에서

by 이원장

지나온 공간 :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FitOne(독일 피트니스 체인 업체)


자연스러운 아침 햇살에 눈을 뜨니 오전 8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우원재가 민망할 정도로 내 몸은 시차를 모르는 듯 가볍고 상쾌했다. 이 날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몸을 쓰는 여정이었다. 저녁 느지막이 노곤하게 숙소로 돌아와 맥주 한 잔 시원히 마시고 그대로 잠들기까지가 최종 계획. 이동 거리가 조금 될 예정이라 서둘러야 했다. 아침 대신 전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사둔 사과 두어 개를 우적우적 씹어 당을 채웠다. 사과를 씹으며 오후에 있을 근교 당일치기용 짐을 백팩에 가볍게 싸고, 운동화를 신고선 바삐 중앙역으로 향했다.

중앙역으로 가는 길

독일 첫 아침 일정은 ‘헬스장 가서 웨이트’였다. 유럽 도착 다음날부터 헬스라니,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도 많을 걸 안다. 보통 사람에게 운동이란 살기 위해서, 건강 때문에, 살이 너무 쪄서 - 등의 이유로 하기 싫어도 의무감에서 하는 것(특히 헬스)이기 때문에, 행복을 위해 떠난 여행 중에 헬스를 하는 사람을 ‘천국까지 가놓고 자유 의지로 고문 받는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아, 오해해둘까 봐 미리 적지만 내가 운동을 좋아하긴 해도 김종국 님처럼 우락부락한 몸에 하루라도 웨이트를 거르면 손바닥에 가시가 돋치는 그런 운동 중독자는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왜 굳이 독일까지 와서 헬스를 하는 걸까.


내게 있어 운동은 행복의 열쇠 중 하나다. 몸을 풀며 하루를 시작하는 일과가 상쾌하고, 가슴 충만하며, 무엇보다도 운동하는 행위 자체가 즐겁다. 무거운 중량을 내 의지로 밀고 당기며 자극을 섬세히 조절하는 일이, 최대 가동 범위에서 찢어지고 수축되는 근육이 느끼는 부하가 내게 희열을 준다. 무엇 하나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다. 그러나 주변이 온통 낯선 여행지에서 조차도 익숙한 내 몸뚱이만큼은 의지대로 따라주며 가쁜 숨을 생명의 표식처럼 내뱉는다. 얼마나 고맙고도 즐거운 일인가.


제주도 같은 국내 여행지를 가도 운동 시간을 확보하는 것을 좋아한다. 꼭 헬스장을 가지 않더라도 아침에 여행지 강변이나 해안을 러닝하고 혹여나 야외 운동 시설이 설치되어있으면 풀업 몇 세트를 하고 돌아오곤 한다. 제주도라면 근처 오름을 아침 산책 삼아 오르내리고 와도 좋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채비를 마쳐 그날 여정을 위해 밖을 나서면, 생기 있게 깨어난 뇌와 적당히 열이 올라 부드러워진 근육은 낯선 세상을 잔뜩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이 날까진 9-유로 티켓이 유효해 독일 내에서 대중교통 이용이 무제한 가능했다

더불어, 독일 헬스장은 시설이 매우 좋기로 정평이 나있다. 유명 운동 유튜브 채널에서도 소개된 바가 있어 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라 독일 헬스장만큼은 꼭 가보기로 목표를 세웠다.


이 날의 목적지는 독일 전역에 체인이 있다는 FitOne. 프랑크푸르트 지점은 중앙역에서 전철로 30분 정도 걸리는 정거장 근처로 꽤 멀리 위치해있었지만 별 부담은 되지 않았다. 기차 여행이라 생각하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들뜬 마음을 살랑살랑 간지럽히고 있으면 금방 도착하지 않을까, 싶었다. 무엇보다도 지금 한국을 떠나 독일에 온 지 20시간도 안 되었지 않는가. 이럴 땐 촉을 세워 감각을 집중하지 않아도, 특별한 구경거리를 찾을 필요도 없이 창밖만 바라봐도 모든 스침이 경이롭다.


헬스장을 이용할 땐 일일권 대신 ClassPass라는 어플을 사용했다. 일정 월 금액을 내면 제휴되어있는 각종 운동 시설(GYM, 필라테스, 복싱, 요가 등)을 사용할 수 있게 연결해줘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여행객에게 유리한 구독 기반 운동 서비스이다. 독일 체인 헬스장인 Fitone의 경우 1년 단위의 회원권을 끊으면 월 30유로 정도에 이용할 수 있으나, 일일권은 없거나 20유로에 이르기 때문에 여행자 입장에서 사용하기 상당히 부담스럽다. 강좌와 시간대마다 차이가 있지만 Classpass의 경우 이 날 기준으로 40유로에 7-8번 정도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상당히 합리적인 가격이니 유럽에 가서도 운동을 포기 못 하는 이들은 한 번쯤 이용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ClassPass의 화면. 위처럼 강좌/시간 별로 사용되는 크레딧이 적혀있고 구독 결제할 카드를 등록해 일정금액을 지불하면 크레딧을 받는다.


센터에 도착해 프런트 직원에게 Classpass로 예약을 하고 왔다고 하니 신청서 작성을 도와주고 친절하게 시설을 구경시켜주었다. 독일인 무뚝뚝하다는 소문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겠다. 새삼 느끼지만 독일 사람들 영어도 참 잘한다. 토플 시험을 치면 평균 100은 나오지 않을까. 워낙 평균 실력이 높다 보니 Native도 아닌 내가 질문을 하기 전 ‘Do you speak English?’를 묻는 것이 민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열에 아홉은 나보다 더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했으니까.



독일 헬스장의 장점


한국과 비교했을 때 FitOne 헬스장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크고 깔끔하다. 그게 뭐 특별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프리웨이트를 즐기는 사람들은 '크고' 깔끔한 웨이트 존이 얼마나 편리한지 안다. 헬스를 한다면 덤벨 프레스를 하려고 사레레(사이드 레터럴 레이즈)하는 사람 옆을 이리저리 피해 플랫 벤치를 옮겨본 적 있을 것이다. 혹은 조심스레 덤벨을 찾으러 가다 다른 사람의 몸이나 바를 건드린 경험, 한번쯤은 있지 않나.


독일 Fitone 헬스장에서는 그럴 일이 거의 없다. 덤벨은 잘 정돈되어 짝을 잃은 아령을 찾아 헤멜 필요 없고, 플랫/인클라인 벤치는 널찍한 간격으로 거울 앞에 줄줄이 고정되어 있어 따로 옮길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은 자리로 가 그대로 덤벨을 들고 운동을 수행하면 된다. 넓고 정돈이 잘 되어있기 때문에, 운동 경계선을 침범받는 일 없이 공간과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운동이 가능하다. 높은 층고와 널찍한 평면에서 오는 개방감은 덤이다.

심심이 안정되는 벤치 세팅 상태
심신이 안정되는 공간감


두 번째, 운동 목적과 훈련 종류에 따라 구역이 구분되어 있다. 프랑크푸르트 지점은 계단으로 이동하는 개방된 형태의 3층으로 유산소 존, 웨이트 존, 기능성 트레이닝 존으로 분리되어 각자가 원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세팅이 되어있다. 이러한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운동의 목적마다 필요로 하는 공간적 운동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풀업이라도 정자세로 정적으로 올라가는 풀업과 키핑 풀업, 혹은 머슬업과 공중 동작을 동반한 풀업은 모션 레인지가 확연히 다르고, 같은 하체라도 런지, 스쿼트, 케틀벨 스윙은 주변 사람들이 비켜줘야 하는 범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헬스장에서는 딱딱하고 무거운 물체를 다루기 때문에 주변 사람과 부딪히지 않게 적절한 공간을 확보해야만 안전한 운동을 할 수 있다. 독일은 구획이 구분되어 주변 행인을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이 안전하게 운동에만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다.

FitOne의 구역, 2층 계단에서 찍은 전경


기능성 트레이닝 존의 일부

검정 우레탄 바닥이 깔려 있는 기능성 트레이닝 존은 매우 넓고 충격 흡수가 잘 돼 넓은 반경의 동적인 웨이트 동작이 가능하다. 국내 헬스장에선 보기 힘든 엘리트 체육 선수들이 주로 쓰는 민첩성 훈련 장비와 긴 공간을 필요로 하는 배틀 로프도 갖춰져 있다. 기능 훈련을 위한 공간이니 컨벤셔널 데드리프트를 하다 쾅쾅 내려놓는 소리가 눈치 보여 멈출 일도 없다(한국에선 시끄러우니 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 것도 봤다). 6개 이상 줄 지워 설치된 파워렉에서 바를 뽑았다가 정점에서 손아귀를 놓고 마음껏 중력 방향으로 바를 떨어트려도 된다. 한국으로 치면 평범한 헬스장과 크로스핏이 결합된 형태라고 이해하면 편하겠다. 다만 그 크기와 시설이 두 부분에서 모두 월등한.


세 번째, 운동 기구를 포함하여 부대시설이 다양하고 최신으로 꾸며져 편의성을 갖췄다. 깔끔하고 현대적인 것은 물론, 한국에서는 찾아보지 못한 신박한 서비스도 있었다.


처음 놀랐던 것은 '보충제 정수기'였다. 출입 카드를 찍으면 물부터 다양한 맛을 갖춘 BCAA 음료까지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사과, 체리, 레몬 등 맛과 양을 조절하는 것은 물론 물과 섞을지 탄산수와 섞을지도 선택 가능했다. 신기해서 맛 별로 7번은 타마셨는데 개인적으로는 레몬이 가장 입에 맞았다.

다시 봐도 영롱한 음료 자판기


숄더 프레스 머신. 평소 삼두 팔꿈치 쪽에 통증이 있는데, 이 날은 통증없이 자극이 매우 좋았다.

모든 머신은 Cybex, Hammerstrength, Nautilus 사까지 인수한 세계 피트니스 업체 1위 기업 Life fitness의 제품이다. 해당 사의 제품은 관절 움직임과 모멘트 힘을 고려한 적절한 가동 범위 및 부하 설정으로 부상을 예방하고 최적의 자극을 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기도 하다. 내벽과도 색을 맞춘 것인지 조화가 이뤄지는 같은 디자인의 최신 제품들로 구비되어 통일감도 느낄 수 있었다. 화장실은 독일답게 매우 깨끗하고, 이용하진 못했지만 샤워실 안에 사우나 시설까지 갖춰져있다고 한다. 시설은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가 없었다.



이 날은 어깨를 주요 타깃으로 하고 풀업, 로우 동작으로 등도 조금 깔짝거렸다. 확실히 한국인들보다 키도 크고 아름다운 상체 근육을 지닌 남자들이 여럿 보였다. 나도 한국에선 덩치가 좀 큰 편에 속했는데, 독일 헬스장에선 글쎄, 상위 30%에 겨우 들 것 같다. 며칠 만에 제대로 웨이트를 하니 매 동작마다 근육을 늘리고 자극을 먹이는 맛이 쏠쏠했다. 김종국 님이 방송에서 랫풀다운 동작으로 근육을 조이는 일이 행복에 겨워 미소 짓는 모습을 비춘 적 있다. 아마 이 날 나도 비슷했지 싶다. 속으로 하, 이야, 좋다, 맛있다를 몇 번을 외쳤는지 모른다.


운동을 마치고 점심은 대강 Rewe(독일 내 대형 마트)에서 프로틴 초코 푸딩과 빵을 사 먹었다. 다시 전철을 타고 숙소에 도착해 오랜만에 용쓴 근육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며 달랬다.


12시 41분에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뤼데스하임을 향하는 RB(regional bahn) 열차를 타야 했다. 남은 시간이 촉박해 반팔-반바지에 배낭을 메고 호텔을 나서 역으로 달렸다.


다행히 40분 직전에 도착해 바글바글한 사람들 뒤로 열차 줄을 설 수 있었으나, 헐레벌떡 가쁜 숨이 무색하게 열차는 20분 이상 지연되었다. 9유로 티켓 탓인지 7-8월엔 승객들이 너무 몰려 열차 지연이 잦다고 했다. 교통비용이 절감되는 측면만 생각했는데 이런 단점도 있구나. 여하간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 지연이면 오는 길에 기차가 뒤집혔나 싶었을 테다. 이곳 사람들은 대중교통 지연에 많이 익숙한 듯했다. 8월의 마지막 날 치고는 유달리 더웠던 날, 습도라도 높지 않음을 감사하며 30분을 기다려 열차를 탔다.


이날의 두 번째 행선지는 근교 시골 마을 뤼데스하임, 그곳에서 비탈진 와인밭을 걷고 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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