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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장 Nov 03. 2022

현충원에서

차갑도록 강직하고 따스하게 익살맞은 사람을 생각하며

낙엽이 떨어진다고 내 생각은 하지 마라. 가을은 너가 그러지 않아도 외롭고 쓸쓸한 계절이다. 또 낙엽은 길에 너무 많이 떨어진다. 내 생각은 가끔씩만 하는 게 어떨까 싶다.


한 템포 미소가 차분해져도 좋을 초여름 즈음에, 회상할 매개체로는 시원한 수박이 적당하겠다. 굳이 가을에 날 떠올려야 하거든 밤송이를 보고 해라. 위고 옆이고 빳빳했던 내 머리칼과도 비슷하고, 낙엽보단 흔치 않을 것이다.


너 오려거든 검정 구두 대신 발 편한 운동화를 신어라. 나 있는 곳은 언덕 위라 적지 않게 걸어야 한다. 내 신어보니 구두는 발볼이 죄고 대리석을 걸을 때 미끌거린다. 정장을 몸 치수를 재 맞췄는데 한 번도 제때 입지 못했다. 너도 그냥 청바지를 입고 와라. 너 학교 다닐 때 매일 입던 추리닝, 그놈만 아니면 된다.


운동화를 신으면 좋은 점이 하나 더 있다. 온 김에 여기 언덕을 산책 좀 해라. 여럿이서 몰려와도 다들 눈치가 보이는지 떠들썩한 사람 없고 조용하니 속정리 하며 걷기 좋다. 이곳이 오기는 힘든데 주변엔 뭐가 없잖냐. 멀리 걸음 했는데 마음껏 줄 것이 점잖도록 맑은 공기 밖에 없다.



그러니 너도 너무 자주 오진 말아라. 나도 너 생각 그리 많이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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