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걸 왜 이렇게 먹어?
피자에 파인애플을 넣든 말든,
민트초코에 치약을 넣든 말든,
평양냉면 육수에 걸레를 빨든 말든
- 각양각색의 음식에 톨레랑스 정신 유감없이 발휘하는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조합이 하나 있다.
바로 고구마에 김치를 얹어먹는 것.
사실 처음 언급한 음식들에 비해 호불호 논쟁도 없는 편인 데다가 어찌 보면 꽤나 대중적인 조합이라 의아할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달고 퍽퍽한 고구마 위에 시고 짜고 매운 김치를 도대체 왜 얹어 먹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내 눈엔 도넛에 김치를 얹어 먹는 꼴이다.
이러한 나의 반감에는 근본적으로 ‘김치는 밥과 먹는 것’이라는 인식이 담겨있다. 여기서 ‘밥’은 <벗긴 벼를 쪄서 만든 호화된 상태의 쌀 알갱이 모음>을 일컫는 좁은 의미가 아니라, 아침-점심-저녁으로 구분되는 끼니로 먹는 음식을 의미한다. 이 글은 세상의 음식을 크게 두 분류로 나눠 하나는 ‘밥’, 그 여집합을 '간식’이라 정의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밥’과 '간식'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이냐. 전문적으로 들어가자면 콕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하고도 다양한 기준들이 섞여 있다. 그러나 내게 이를 단순화하여 단 하나의 기준을 꼽아달라고 한다면, 바로 ‘당도’다. 달면 밥이 아니다. 비록 쌀로 만들지 않았지만 잔치국수는 밥이다. 그래서 김치와 먹어도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시루떡이라면? 이건 비록 쌀로 만들었을지 언정 밥이 아닌 '간식'인 것이다.
조금 투박한 비유를 보태자면 밥과 간식의 경계는 제빵과 제과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제과-제빵의 차이는 발효 여부, 밀가루 종류, 설탕 배합 등등 여러 기준이 있지만, 일반적으론 쉽게 당도로만 구분해도 대충 들어맞는다.
마카롱, 케이크, 타르트 등은 제과로 분류된다.
치아바타, 바게트, 식빵, 베이글 등은 제빵으로 분류된다.
크루아상은 제과와 제빵의 경계에 있다고도 하는데, 생각해 보면 크루아상은 마냥 달지도 않고, 그렇다고 달지 않다고도 말하기도 어렵다. 크루아상은 간식으로도 먹지만 속을 갈라 샌드위치로 만들어 점심 대용으로 먹기도 한다. 어떤가, 단순하지만 나름 써먹을 만한 기준 아닌가.
태어났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집에서 시리얼을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 내가 평생에 걸쳐 먹은 '호랑이 힘이 솟아나는' 녀석의 양은 한 팩이 결코 안 될 것이고, 우리 가족 전체가 20년 간 소비한 시리얼을 다 합쳐도 다섯 팩이 안 나올 것이다. 주부 9단 이신 나의 어머니께서 뭐 엄청난 건강, 교육, 애국, 자식 사랑…. 그런 신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시리얼 척화비는 나와 내 동생의 식성 때문에 세워졌다.
어머니께서 아침으로 떡을 내주시거나 케이크를 먹은 직후에도 꼭 우리 형제는 ‘밥’을 달라고 외쳤다. 과일을 먹거나 옥수수를 먹어도 마찬가지였다.
한두 시간 뒤면 “우리는 밥을 먹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님!”하고 둥지 돌아온 어미에게 입을 쩍쩍 벌리는 새끼 제비들처럼 아우성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시리얼이 밥 대용이 될 리가 없었다. 모처럼 쉬고 싶은 주말 오전, 투덜거리시며 아침 점심을 모두 차려주셨던 어머님께 이 글을 빌어 사죄를 드립니다
- 대신 반찬투정은 안 했잖아요, 어머님.
“다른 집 애기들은 시리얼 달라고 난린데 너희들은 대체 왜 그러냐~!”
어머님의 푸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덕분에 우리는 건장하고 건강하게 잘 자랐다. 아직도 우리는 과자를 거의 먹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밥’이 좋다.
한국 음식이 달게 변한 것을 비교적 최근의 현상으로 생각하곤 하지만, 먼 기원을 찾자면 일제 강점기가 그 시작이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설탕이 한반도에 들어왔고, 1921년 평양에 제당 공장이 세워지면서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그 이후 각종 음식에 설탕이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이는 1931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자랑거리 음식솜씨」 칼럼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조선의 양념 갈비(맥적)와 일제 강점기 이후의 양념 갈비도 분명 맛이 상이하고, 주된 차이는 아마 당도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한식의 당도가 올라간 게 나의 어머니께서 태어나시기 전부터라고는 해도, 근 10년 사이 급작스레 음식들이 달아졌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괜스레 성실한 사업가 백종원 씨를 '슈가 보이'로 매도하고 싶어 지면서.
점점 더 달아지는 바깥 음식들을 먹으면서 밥돌이인 나는 불만이 쌓여만 간다. 닭도리탕을 먹어도 달고, 제육을 먹어도 달고, 돈부리를 먹는데도 달고, 투움바 파스타를 먹어도 달다. 배달음식과 술집 안주는 자극과 직관적인 맛을 추구하니 그러려니 했건만, 그 바람은 여러 방향으로 퍼져 온 대한민국의 식당들을 푹 고은 달고나처럼 만들고 있다. 달지 않으면 손님이 안 온다는 사장님들의 푸념은 십분 이해하는 바이지만, 제발, 나는 ‘밥’이 먹고 싶다.
오늘 회사 밥으로 낙지비빔밥과 김치, 홍합탕, 그리고 고구마가 나왔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밥을 담아 콩나물과 야채, 낙지를 비볐다. 입가심이 필요하다 싶을 땐 김치의 배추 밑단 부분을 아삭히 씹었고, 이파리 부분은 젓가락으로 찢어 숟가락 듬뿍 뜬 비빔밥 위에 얹어 왕- 한입에 담았다. 비빔밥 재료를 섞는데 들인 시간이 무색하리 만큼 금세 깨끗이 비워냈다.
다 먹고선 물을 한 잔 떠 와 후식을 베어 물며 퇴근할 생각에 들떴다.
고구마, 달디 단 호박 고구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