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에 마주한 낯선 교실

처음 만난 어른 학생들

by studio imparo 소희

올해 들어 가장 춥다는 날이었다.

관악구 복지관 강의실, 16년만에 처음으로, 학생이 아닌 어른들 앞에 섰다.

PPT를 열며 든 생각 하나, 목소리가 떨리지 않으면 좋겠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부터 4주 동안 선생님들과 함께 수업할 강사 박소희입니다.

다행히,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밝았다. 조금 안도했다.


손을 드신 분


열 분의 수강생, 보조강사를 할 때는 여성분들이 훨씬 많았는데, 오늘은 남성분들이 더 많으셨다.

순간 머릿속으로 수업 내용을 재조립했다. 남성분들이 더 많으셨으니까.


1주차 주제는 '안전'.

사기 문자, 악성 앱, 보이스피싱, 설명을 마치고 앱 설치를 안내하는데, 한 분이 손을 드셨다.


"선생님, 이것 좀 확인해 줘요."


손에는 ‘가스요금 환급 안내’ 문자 메시지가 떠 있었다.


"자꾸 이런 게 와서 무서워서 누르지도 못하고 그냥 가지고만 있었어요."


나는 네이버를 켜고 가스공사 번호를 찾아드렸고 상담원과 통화하시도록 했다. 문자는 가짜였다.


"계속 신경 쓰였는데, 이제 괜찮겠네. 고마워요, 선생님."


환하게 웃으시는 얼굴에 나도 입가가 올라갔다. 다른 분들도 고개를 끄덕이셨다.


알게 된 내용에 고맙다는 말을 들은 게 얼마 만인가. 요즘 학생들은 표현하지 않는다.

알아도 말하지 않고, 모르면 그냥 넘어간다. 고맙다는 말은 시험 점수가 올랐을 때나 학생이 수업을 좋아할 때, 주로 학부모님들이 해주셨다.

하지만 오늘, 내가 알려드린 것으로 누군가의 불안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서, 바로.


5.jpg 각자의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보안 설정 시간이었다. 지문인식, 패턴, 여섯 자리 핀번호. 스마트폰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들이다. 수업이니까 다들 따라 하셨다. 그런데 쉬는 시간, 70대 후반과 60대이라고 하셨던 두 분이 조용히 내게 오셨다.


선생님, 이거 지울 수 있어요? 눌러도 자꾸 안 열려서...


지문인식이 등록은 됐는데, 인식이 잘 안 되는 것이었다. 오래 일하셔서 지문이 닳으셨다고 하시며 민먕한 웃음을 지으셨다.


“당연히 되죠, 선생님.” 바로 삭제해 드렸다. 내 마음이 좀 무거웠다.


처음부터 말했어야 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고.

지문이 잘 안 읽히시는 분들은 패턴이나 핀번호가 더 편하다고.

수업이라는 이유로 다들 따라 하셨고, 불편하셨던 두 분은 쉬는 시간까지 기다리셨다가 말씀하셨다.

가르치는 사람의 당연함이 배우는 사람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그걸 다시 배웠다.



검사님처럼 나오셨네요


2교시는 AI 이미지 만들기. 직접 입력하는 대신, 샘플 이미지를 고르면 내 사진에 반영되는 방식이었다. 캘리 그래피, 민요풍, 프로필 스타일 중 본인 사진만 넣으면 그 형태로 완성되는 방식이었다.

한 분이 민요풍을 선택하셨고 결과물이 화면에 떴다.


"와, 괜찮네."

“어떻게 나왔는데요? 보여주세요.”

“선생님, 너무 잘 나왔으니까 선생님께서 괜찮으면 다른 분들께 보여주세요.”


선생님께서는 흔쾌하게 다른 분들께 보이시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프로필 사진을 바꾸셨다.

또 한 분은 프로필 스타일을 선택하셨다. 결과물이 나왔는데, 내가 보니 검사님 같은, 아니 검찰총장 같은 포스였다. 그런데 그분 표정이 묘했다.


"이게... 저 맞아요?"


수업중에 본 선생님의 스타일은 소녀스러운 분이셨다. 그 당당한 얼굴이 낯설었던 모양이셨다.

조금 더 여리게 나오는 스타일로 다시 시도했다.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 속상해하셨다.


그 마음이 이해됐다. AI 이미지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내가 원하는 나, 그리고 AI가 보는 나 사이 어딘가에서 나온다. 그 간극이 때로는 당황스럽고, 때로는 즐겁다.


수업을 마치고 짐을 챙기며 생각했다. 학생들과 수업을 하고 나면 늘 진이 빠졌다. 그런데 오늘은 살짝 상기되어 강의실을 나왔다.


이 느낌, 이게 내가 찾던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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