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업실시옷 Mar 29. 2024

어디든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나의 책상

엄마에게도 꿈을 꾸는 공간이 필요해


 오늘도 실패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어제 계획했던 일을 해내고 싶었다. 10시 반쯤 아이를 재우고 눈을 붙이려고 했다. 마치지 못한 설거지는 내일로 미룰 수 있었지만, 코감기에 걸려 힘겹게 입으로 숨 쉬는 아이를 위해 가습기의 물은 채워 넣어야 한다. 그렇게 몸을 일으켜 세우자, 피곤에 가라앉았던 감각도 잠들지 못하고 다시 일어나 버렸다. 어차피 일어난 거 설거지도 하고 오전에 읽지 못했던 말씀도 마저 읽자. 할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줄줄이 나온다. 이제는 진짜 자야겠다 마음을 먹으니 12시가 또 훌쩍 넘었다. 내일을 위해 자고 싶지만 여러 가지 생각들이 팝콘처럼 자꾸만 튀어나와 도통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 들었는지 눈만 감았던 것인지 깨어서 주위를 살핀다. 아직 어두컴컴하다. 아마도 2시쯤 되었겠지... 잠든 아이의 발을 만져 온도를 체크하고 다시 잠이 든다. 귓가에 들리는 남편의 인기척 4시 반쯤인가? 갑자기 선명해진 정신에 시계를 보니 6시다. 지금 일어나면 오전 내내 너무 피곤할 텐데 조금만 더 자자는 마음으로 누워 7시 알람을 끄고 뒤척뒤척 결국 8시다. 피곤해.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은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다. 자는 것도 깨어 있는 것도 아니고, 먹는 것도 먹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는 너와 눈을 맞추고 있는 시간조차 딴생각들에 사로 잡혀 있다. 경계 없는 모든 시간의 나열이 마음을 텅 비웠다. 그래서 오로지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너의 낮잠 시간에 나는 부족한 잠의 분량을 채워 넣을 수가 없다. 방학이 되니 이마저도 어렵다. 글을 쓰며 아이들이 노는 소리를 듣고 있고, 생각의 깊은 바다로 들어가려 할 때마다 엄마를 부르는 소리에 뭍으로 자꾸 끄집어 올려놓는다.

 언제나 책상만큼은 지키려고 노력했다. 조용한 공간을 함께 만들고 싶었지만 그 정도까지는 허락되지 않았다. 거실 한편에 자리한 내 책상에는 작업실에서 가져온 컴퓨터도 있고, 책과 스케치북도 한가득 꽂혀있다. 하지만 책상 위에는 대부분 아이들의 책이나 장난감이 올려져 있다. 책상이나 책상이 아니다. 목적의 경계 또한 사라졌다.  매일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렸던 시간 나는 모든 것을 책상으로 만들어버렸다. 국을 끓이는 시간엔 주방 조리대 한편에서 그렸고, 더운 여름 거실에서 자는 아이들을 피해 베란다 불을 의지하고 바닥에 쪼그려 그림을 그렸다. 아이패드를 두고 그릴 수 있는 곳은 모두 내 책상이 되었다. 어디나 모두 나의 책상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나의 그림은  11인치 작은 액정에서 채워졌지만 내 꿈은 11인치로는 부족했다. 내 나이 마흔. 나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