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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업실시옷 Apr 05. 2024

당연한 줄 알았던 나의 공간

편안한 책상은 어디에 있을까?

 자신의 진로를 아는 아이가 몇이나 있을까? 나도 그랬다. 뭐든 딱히 잘하는 것도, 그렇다고 못하는 것도 없이 모든 것이 어중간한 아이였다.


나는 무얼 하며 살아야 할까? 나는 어떤 것을 잘할까?


어린 시절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칭찬받는 아이였다. 그래서 그리기를 참 좋아했다. 7살 무렵 입체적인 코의 형태를 예쁘게 표현하고 싶어 관찰을 하고 연습을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는 만들기와 만화책을 좋아해서 매일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고 읽었다. 하지만 나는 쪼물딱쪼물딱 소심하게 작은 그림을 그리는 아이였고, 형태감이 필요한 큰 그림은 부족했다. 사실적이지 않은 귀여운 그림이었다. 나는 똑같이 못 그린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잃었고,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그림으로는 밥 벌어먹기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께서 사 오신 그림책을 보고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따뜻한 색감에 귀여운 그림들. 하지만 그 꿈도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소심한 꿈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고 미대입시를 꿈꾸며 입시미술을 시작했지만 역시 어려웠다. 엉망진창은 아니었지만 칭찬을 받는 일이 거의 없었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완성이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수능을 보고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시각디자인과에 진학했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어 진학한 시각디자인과였지만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그림으로 정면 승부를 하는 대신 차선으로 좋아하는 박물관학을 복수 전공하고 미술관에서 일을 시작했다. 학교를 다니며 박물관 인턴을 하고 대외활동을 했다. 미술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 무렵 우리 가족은 드디어 완전한 우리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부모님의 아파트는 그동안의 고생을 다 보상해 줄 정도로 좋았다. 넓고 예쁜 우리 집을 엄마는 정성을 다해서 꾸몄다. 인테리어에 별 관심 없던 내 방은 엄마의 취향으로 꾸며졌다. 견고한 체리목 색의 목재로 몰딩과 손잡이가 앤티크 한 멋을 풍기는 미국에서 건너온 컴퓨터 책상. 엄마는 그 책상을 참 좋아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 책상이 싫었다. 책상의 왼편에는 서랍 대신 여닫을 수 있는 캐비닛이 있었고, 책상 아랫부분의 서랍을 열면 키보드를 넣을 수 있는 판이 나왔다. 자잘한 물건이 많았던 나는 수납에 불만이 있었고, 의자 높이를 책상에 맞추면 허벅지가 끼고 의자를 내려앉으면 허리가 아파 불편했다.


‘내 집이 생기면 나는 꼭 편안한 책상을 가질 거야.’


 가진 것 없는 목회자와 시작한 신혼집은 단출했다. 거실 겸 주방과 방 두 개. 하나의 방은 침대와 옷장, 다른 하나는 애매한 거실 대신 티브이를 보며 쉴 수 있는 방으로 꾸몄다. 내 책상을 둘 공간이 따로 없었지만 커다란 6인용 식탁을 두고 식탁 겸 책상으로 생활했다.

  결혼 후 미술관 일을 접었다. 배스킨라빈스 알바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은 임금과 석사가 필수인 벽 앞에서 어차피 가난한, 삶 더 하고 싶던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자 마음먹었다. 두 사람이 하루 세끼 해 먹는 것만으로도 바쁘던 그 시절에도 내 꿈의 공간은 식탁이었다. 먹기에 바쁘게 치우고, 그리기에 바쁘게 접었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나면 먹었던 자리를 정리했다. 설거지를 하고 캡슐 하나를 선택해 커피를 내렸다. 향긋하고 고소한 커피 향기를 맡으며 포근한 우유거품도 만들었다. 라테 한 잔을 만들고 나면 음악을 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집중력이 필요할 때는 클래식을 듣고, 신나게 색을 칠할 땐 록음악을 들었다. 집 안을 가득 채운 음악소리만큼이나 마음도 충만해졌다. 앞 집과의 거리가 좁아 언제나 커튼을 쳐 둔 어두컴컴한 거실이었지만 기억 속 신혼집의 거실은 언제나 환했다. 손에 익지 않은 집안일을 하다 보면 그릴 시간이 부족하다고 투덜 댔지만 둘만 쓰는 넓은 식탁은 언제나 한편에 여유가 있었다. 칠하다 멈춘 그림과 도구를 살짝 옆으로 밀어 두고 언제든 다시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완벽히 편안한 내 책상을 가졌던 적은 없지만 온전한 나의 공간이 있던 그 시절에는 내 집에서 나를 위한 공간이, 내가 꿈꿀 수 있는 장소가 있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다. 첫 아이를 배고 그림을 그리면서 출산 후에도 언제든 다시 내 꿈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평의 공간을 갖는 일이 이렇게나 어렵고 치열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는 아직은 꿈 많은 배만 부른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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