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받아들이는 것.
임신과 함께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계속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결혼 전 나는 미술관 교육팀에서 2년이 조금 넘는 시간 근무를 했었다. 미술관으로 출근하면 참 행복했다. 근처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올림픽 공원을 산책할 수 있어서 좋았고, 새로운 전시를 준비하며 교육 프로그램을 구상할 때가 제일 신났다. 박봉이라 차비, 밥값 약간의 용돈이면 월급이 사라졌지만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계약직에 불과했다. 미술관에서 계속 일을 하기 위해서는 대학원 진학이 필수였고, 전시가 있는 주말에 일을 하면 교회를 빠져야 했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지속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고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오랜 꿈이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임신이 된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며 같이 그림을 그리던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일러스트카페에서 만나 온라인전시를 준비했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나이도 같아서 이야기가 통했는데 한 달 차이로 임신이 되었다. 임산부가 된 우리는 일상을 함께 그리면서 전시회를 보러 다녔다. 둘이었지만 언제나 넷이었다. 그 해 가을은 정말 즐거웠다. 배불뚝이 둘이 합정 핫플들을 찾아다녔고,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그림을 고민했다. 멋진 전시를 보면서 질투심에 사로 잡히기도 하고 출산과 육아라는 닥치지 않은 현실을 두려워하기도 설레기도 했다.
그게 벌써 십 년도 더 전이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하고 나눈 대화도 희미하다. 그때는 보이지 않던 아이들이 자라 열 살이 넘었고, 그때 보일 것 같던 우리의 꿈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은 힘겨울 때도 있었고 행복하기도 했다. 이루지 못했다는 절망이, 찬란한 미래를 꿈꾸던 희망이 나를 요동 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꿈을 꼭 이루어야만 행복한 삶일까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세상에 나와 언어를 익히고 걸음마를 배우며, 사회에 변화되는 것처럼 그때의 꿈과 지금의 꿈은 같지만은 않다. 아이들의 성장을 지지해 주고 바라보듯이 나의 꿈이 환경과 상황에 맞춰 달라지는 것을 서운해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