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뜰이 나에게 주었던 이야기
재봉틀 공방 나비뜰은 고양이의 옆모습의 재봉틀 모양의 로고를 가지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키우시는 고양이가 모델이라고 하셨다. 유행하는 미니멀한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선생님만의 색이 있었다.
늦가을 공방은 출근하는 매일매일이 추웠다. 건물 안이 바깥보다 더 추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텅 비고 휑한 내 책상을 피해 나비뜰의 재단 테이블에 앉아 수를 놓았다. 따뜻한 난로를 하나 틀어두고 옹기종기 모여서 선생님은 재봉틀을 돌리고 나는 수를 놓았다. 소잉에 입문한지 얼마 안 된 나는 선생님의 작업이 궁금하기도 했고, 공방을 운영하게 된 스토리도 궁금했다. 선생님은 언제나 내가 오는 것을 반겨주셨다. 살뜰하고 포근하기보다는 담백하고 깔끔한 환대가 좋았다. 부담스럽게 챙겨주시지 않으셨고, 거절도 정확했다. 그래서 더 편안하게 선생님과 시간을 나눌 수 있었다.
귀촌 후 지방에서 소인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아이의 교육문제로 5도 2촌을 하셨고 그 때문에 종암동에 자리 잡았다.거의 같은 시기에 공방을 이사 온 우리는 쓸쓸한 가을을 지나 추운 겨울을 조용히 보내며 삶의 이야기를 나눴다. 언제나 나의 고민은 ‘돈’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접근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만 해도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고민만 했다. 나비뜰 선생님도 공방 유지를 위해 수익을 고민하셨지만 나처럼 이러 저리 흔들리지 않으셨다. 사실 공방은 생계유지를 위해 운영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대부분은 공방 유지를 목표로 한다. 지금도 그때도 남편의 도움으로 했으면서, 언제나 마음속에는 내가 생계의 일정 부분을 맡아야 한다는 부담을 늘 갖고 있었다.
‘선생님은 남편의 월급으로 생활하시기 부족하지 않나 보다.’
조급함이 없는 것 같은 모습에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눌 때면 제천에서 함께 생활하시는 친정 부모님,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예쁜 딸, 나비와 다른 고양이들 그리고 공방에 자주 놀러 오던 강아지 콩알 이뿐 남편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기에 (여자들 대화 주제가 남편일 때가 드물지 않나?)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일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언제나 단단하던 남편의 팔뚝과 허벅지가 전과 달리 흐물흐물했고, 2~3달의 짧은 시간에 10킬로그램이 넘는 살이 빠졌다. 이상함을 직감한 우리는 건강검진을 예약했다. 검진을 예약하고 결과를 나오기까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옥이었다. 매일 근심을 가득 안고는 ‘급작스러운 체중 감량’ ‘근육 빠짐‘ 등 남편의 상태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당뇨, 갑상선 관련 질환, 암 이 세 가지를 원인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급성 당뇨가 제일 의심 가는 부분이었지만 혹시라는 생각에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을 하곤 했다.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도 혹시라는 걱정은 바늘을 잡는 것도 아이들에게 웃어주는 것도, 심지어 음식을 먹는 것도 힘겹게 만들었다. 공방에 가면 선생님 옆에 앉아서 걱정을 나눴다. 그때 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삶의 여러 고비 끝에 서울 집을 정리하고 친정 부모님과 함께 제천으로 귀촌을 하셨다고 했다. 선생님은 아마 남편의 상황이 암은 아닐 거라고 위로해 주셨다. 큰 파도와 같은 시간을 여러 번 지나온 선생님은, 삶을 괴롭히는 마음들을 내려놓고 행복하게 만드는 일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셨다. 재봉틀 공방에서 가장 크게 수익을 낼 수 있는 일은 주문 제작을 받는 것인데 자신에게 흥미를 주지 않는 제작과 단순하게 반복만 되는 작업은 정확하게 거절하곤 했다. 선생님이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 돈만을 위해 자신과 맞지 않는 일을 하지 않는 이유였다. 여전히 선생님은 재봉틀 공방을 운영하고 계신다. 같은 공간에서 5년을 넘기시고 올해 집 근처로 이사를 한다고 들었다. 선생님은 자신의 재봉틀 책상을 끊임없이 지키고 계신다. 엄청나게 눈에 띄지도 않고, 커다란 수익을 가지지도 않았지만 꾸준히, 그리고 여전히 선생님의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