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검은 질문과 붉은 침묵
잎이 붉은 나무
잎이 검은 나무
어느 날
질문한다
그들이 뿌리내린
이 완벽한 정원을 지키기 위하여
인간의 노력은 과연 필요한가?
바람이 한 차례 불고
검은 나무는
계시라도 받은 것 마냥
몸을 부르르 떤다
스스로 피조물임을 잊은
저 작고 무지한 생명체는
결국 번성을 위해 정원을 망칠 것이다
그렇다면
정원의 완성은
인간의 죽음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은 질문과 붉은 침묵 사이
어슬렁거리던 뱀은 제안한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종(種)의 행동이
그들의 양심에 증거 하는지
언약을 따르는지
열매로 꾀어 보기로 한다
눈에 보이는 것들의
이름 짓기 바빠 돌아다니던
두 생명체가 죽음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