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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프 Jan 06. 2023

시간을 사랑한 남자

56. 그는 늘 핑곗거리를 찾는다


그는 시간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시간만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이기에

남에게 뺏기지 않도록 종종 바쁜 시늉을 한다


누군가 그를 만나길 원하는 날이면

샤워를 한 뒤 시간이 없어

물기조차 제대로 닦아내지 못한다는

핑계를 대고 약속을 정중히 다음으로 미룬다


그리고는 집에서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해치우는 연습을 한다


울고 웃고 화내기

행복하고 슬퍼하고 성가셔하기

사랑하고 이별하고 재회하기


어떤 법칙이라도 있는 듯 보이는 연습이 끝나면

밤은 매일 그에게 허락을 구하고 찾아온다


찾아와서는 이상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양쪽 눈알에 꺼풀 한 장씩을 이불로 덮어준다


하지만 시간과 사랑을 나누는 그는 가끔 시간이

아까워 멋대로 잠에서 깨고 어둠이 물러갈 때까지 시간을 세며 누워있는다


초침이 원을 그리며 특정 시각에 도달할 동안

그는 다음엔 어떤 핑계를 댈지 고민한다


시간을 온전히 독차지하는

어떤 우월감에 도취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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