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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먼저 세우면 그래도 조금은 쉬워진다

교사라면 '왜'를 묻고 또 물어야 한다

by j kim

몇 주 전 새학기를 맞아 2학기의 교육 활동과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한 고민은 있었으나 흔들림은 별로 없었다. 생각해보면 과거에는 흔들림이 훨씬 더 컸는데 이제는 고민은 깊지만, 흔들림은 별로 크지 않다. 계기는 내가 교육과정을 세울 때 해당 교과를 '왜' 가르치는지 아이들 입장에선 이것을 '왜' 배워야 하는지, 무엇을 우리의 목표로 삼아야하는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것들을 일종의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데, '철학'을 단단하게 세우니 그 이후의 '방법'은 자연히 따라오게 된다.


나는 모든 교과를 우리들(나와 아이들)의 사정과 상황에 맞게 새롭게 재구성한다. 그냥 이렇게 해야지 구상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 문서를 꽤나 자세하게 풀어 써가며 체계적으로 재구성한다. 그 가장 첫번째는 당연히 철학에 대한 것이다. 모든 교육과정의 시작과 고민을 '왜'에서 출발한다. 나는 교사로서 이것을 아이들에게 '왜' 가르쳐야 하는가. 아이들과 함께 이것을 왜 배워야 하는가?를 묻고 또 묻는다. 그것에 대한 해설을 나름대로 쓰고 나면 자연스레 그 이후 교육과정의 가닥이 잡힌다.


올해를 예로 들면, 올해 나는 체육 과목을 전담하여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교육에 있어 체육 교과가 가지는 의미와 이를 왜 학교에서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서부터 교육과정을 세우기 시작했다. "체육을 왜 배워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서 시작해서 나온 초등 체육 교과의 근본적 철학과 목표는 "건강, 재미, 공동체성" 세 가지였다. 그렇게 세운 나의 2025년 체육 교육과정에서는 그 세 가지 커다란 목표가 가장 상위에 자리잡고 학년별 체육 교육의 목표도 그 철학에 무조건 영향을 받는다.


연간 계획과 학기 계획을 세워 어떤 교육활동을 할지를 고민하면서도 가장 근본적인 철학과 목표에 부합하는지를 고민한다. 만약 근본적인 목표와 철학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그 교육활동은 우리의 공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러한 기준과 '잣대'가 명확하게 서있다면 교육에 대한 고민과 흔들림이 자연히 줄어든다.


예를 들어, 나는 올해 체육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공동체성'으로 잡았다. 체육에서 건강과 흥미는 사실 어떤 체육 수업에서도 기본적으로 충족할 수 있는 가치들이지만, '공동체성'은 내가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강화한 것이다. 나와 함께 하는 체육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깊이 고민할 수 있기를, 학급을 기본으로 하는 공동체가 조금이라도 더 단단해지기를, 구체적으로는 아이들이 체육 수업을 통해 더 많이 소통하기를, 친구와 더 많이 협력하기를, 갈등을 겪고 해결하는 것을 경험하며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체육 수업 중 친구들끼리 게임의 목표의 성취를 위해 진지하게 소통하고 전략을 세우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가 좋다. 평소 이야기하지 않던 친구와도 체육 수업에서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이야기 나누고 힘을 모으는 그 모습이 나의 체육 수업의 가장 큰 가치를 상징하는 장면일 것이다. 나아가 체육 수업을 통해 아이들끼리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목표의 성취라 할 수 있다.


공동체성을 가장 큰 가치로 삼아 체육 교육과정의 계획을 세우고 그렇게 6개월여의 시간을 아이들과 살아가다보니 내가 의도한대로 아이들이 체육 수업을 통해 공동체성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게 되고 더 가까워지고 체육 수업을 '함께' 즐기는 모습이 보여 교사로서 즐겁다. 추가로 운영하는 체육 관련 스포츠 동아리가 있는데 이 동아리를 통해서도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고 '이야기'를 써나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감개무량하다.


나는 늘 체육이나 스포츠가 '공동체'라는 측면에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힘이 어마어마하고 그것은 또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리고 그 경험을 아이들이 직접 겪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올해 교사로서의 목표로 삼았기에 교육과정을 구상-기획하고 운영하는 것이 조금 더 세심하게 에너지가 투입되지만 그럼에도 즐거운 마음이 든다.


교육이라는 것은 온전히 인간이 행하는 행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좌충우돌하게 된다. 그것을 준비하는 교사도, 그것에 참여하며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도 끊임없이 흔들리게 되는데, 그때 철학이 바로 서있다면 그래도 그 흔들림이 줄어들고, 흔들린다 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교사는 끊임없이 '왜'를 묻고 또 묻고 고민하고 또 하고 철학을 바로 세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좀 덜 흔들린다. 흔들리고 넘어지더라도 단단하게 일어설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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