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다들 시를 잘 쓸까?
'본투비~'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마치 태어날때부터 타고난 ~같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표현인데, 무언가를 아주 타고나게 잘하는 사람한테 주로 쓰곤한다. 모든 아이들은 그 표현을 쓰자면 본투비포잇(born to be poet)인 것 같다. 시인이 아닌 아이들이 없다. 모두가 타고난 시인들이다.
요즘 반에서 아이들과 동시 프로젝트 수업을 한다. 개인적으로 동시 수업의 가장 큰 요소는 아이들의 상상력과 감성이라는 생각으로, 몇 단계의 수업 과정을 마련하였다. 최종적으로는 그림과 시가 어우러진 반 시집을 출판하는게 목표인데 지금은 아이들과 다른 사람이 쓴 동시를 읽고 느낀 점을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단계에 있다. 동시를 읽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시간에서도 아이들의 감각을 잘 느낄 수 있었는데 자기가 느낀 점을 아주 기발한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해주어 교사로서는 참 재밌는 시간이었다.
김응 작가의 불량감자들의 외침이라는 시를 예로 들자면,
불량감자들의 외침
김응
조금 울퉁불퉁한 것뿐이에요
조금 상처 나고 모난 것뿐이지요
조금 못생기고 작은 것뿐이라고요
우리는 불량하지 않아요
우리는 문제아가 아니에요
마음에 안 든다고
내버리지 마세요
이래 봬도 속은 새하얀 감자예요
몸집은 작아도 알찬 감자라고요
라는 시를 읽고 우리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아주 인상적이다. 감자에 감정이입을 해, 감자가 외모차별을 받는 것이 슬프다. 앞으로 감자가 울퉁불퉁해도 맛있게 잘 먹어야겠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아이들만이 얘기할 수 있는 아주 귀여운 감상평인 것이다.
특별히 멋지게 표현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공감각적, 초감각적인 표현들과 상상력이 아주아주 풍부한 표현들이 우리 아이들에게서는 너무 편하고 쉽게 나온다. 깜짝 놀랄만한 표현들은, 아이들이 시를 읽고 그림으로 바꾸어 표현하는 활동에서도 나타난다. 나라면, 어른으로선, 쉽게 생각할 수 없는 표현들이 아이들에게선 아주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아마 어른들에게 시를 읽고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보라 하면 시의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하고 표현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시에서 얻은 감정을 가지고 다른 이미지를 상상하여 재창조한다는 느낌이 든다. 이 상상력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우리 아이들이 시를 쓰는 것을 별로 어렵게 느끼지 않고 휙휙 쓰는 것을 보면, 성인인 내가 시를 쓰는 것과는 아주 딴판이다. 나는 시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숙고하고 재고하여 글을 아주 어렵게 써내려감에도 결과물을 보면 참신한 표현이나 시적 상상력이 한참 부족함을 느낀다. 아이들은 쉽게 쉽게 쓰면서도 그 안에 어른들은 생각해내기 어려운 재미난 표현들을 많이 담는다.
나도 어릴적 시를 썼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그리 어렵게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어쩌다 자랄수록, 어른이 되가며, 그 '선천적인 감성'을 놓치게 되는걸까? 본투비포잇, 선천적 시인들이었던 사람들은 어쩌다 시와 멀어지고 그 상상력과 표현력을 잃게 되는걸까?
참 아쉽다. 그런 아쉬운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이 아직 머금고 있는 감성을 담은 시문집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간직하게 해주고 싶다.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들이 썼던 작품들을 보며 다시 그 감성과 동심을 찾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