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내 교사 문화를 바로 세우는 것은 자발성에서부터
이 주제에 대한 글을 꼭 써야겠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어떻게 써야할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내 경험을 직접 풀어쓰는것이 나에겐 더 도움이 되겠다 싶어 그렇게 하기로 한다.
이런 조직 문화에 대한 생각은 비단 학교 조직에만 적용되는 건 아닐테며 다른 모든 공동체와 조직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그 구성원들이며 관리자는 그 구성원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그 자발성을 유도해내야 한다. 시켜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관리자가 원하는대로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관리자가 정말로 좋은 관리자다. 물론 그것은 너무 어렵다. 구성원에 대한 신뢰도 문제가 될 것이며, 관리자의 인내도 문제가 될 것이고, 구성원의 역량도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중요한건 구성원들이 스스로 배우고 노력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그 조직이 살아있는 조직이 되며 모든 구성원이 다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다양한 인간들을 스스로 동기를 지니고 열심히 살도록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정말 존나게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본인이 관리자가 아니라 구성원이라면 조직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움직이게 하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걸 해내는 관리자들도 더러 있다.
지금껏 학교에서 몇년을 일하면서 누가 시켜서 열심히 살았던 적이 없다. 잦은 야근과 늦게까지 이어지는 회의, 작은 일에도 아주아주 깊게 고민하며 일을 일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을 담아 움직이는 태도, 종종 있는 주말 교육 활동, 매달 몇번씩이나 있는 저녁 학부모 모임, 아이들의 삶을 한 명 한 명 깊이 있게 살펴보며 아이들이 진정으로 잘 자라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 모든 정성과 노력들은 결국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삶을 가꾸고자 노력하는 일들이었는데 이런 노력들은 분명 누군가 시켜서 한 일이 절대 아니었다. 무엇이 나라는 개인을 움직이게 했을까?
작년에 어떤 회의자리에서 아이들을 생각하면 교사로서 당연히 그렇게 움직여야 하지 않느냐는 누군가의 물음이 있었다. 전혀 동의하지 못했다. 내가 한 노력들은 나의 의무를 훨씬 넘어서는 나의 정성들이었는데 좋은 교사라면 당연히 그 정도로 움직여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 말에 나는 동의하지 못하겠더라. 물론 나도 교사라면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 자체에는 동의하나 그것의 범위와 한계에 있어서는 나는 그건 분명 나의 초과적인 정성이었다고 생각했기에 그것이 당연하지 않냐는 말에 마음이 불편했었다.
내가 아이 한명 한명 각자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했던 것은 분명 의무감을 넘어서는 무언가에서 나온 행위었을텐데 그것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곰곰히 고민해보니 결국 그것들은 나라는 개인의 '자발성'에서 나온 일이었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는 것. 그런 경험들은 힘들고 어려웠지만 참 재미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급식이 나오지 않는 어떤 날. 아이들을 위해 40인분 가량의 식사를 혼자서 준비했던 일이 있다. 미리 집에서 몇시간 정도 국수 고명이랑 육수를 준비해가서 아이들이랑 나누어 먹었는데 어느 누구도 나에게 그것을 바란 적이 없었다. 얘기조차 나온 일도 아니었고 그저 아이들이 각자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면 되는 일이었지만, 그냥 고마운 내 아이들을 위해 그렇게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별로 힘들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힘든 아이 집에 직접 찾아가는 일.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방향과 방식의 교육 활동을 고민하고 만들어내는 일. 손이 훨씬 더 많이 가지만 더 많이 준비하고 실행하는 일. 그런데 만약에 누군가가 그런 일을 나에게 요구했다거나 바랐다면 내 마음은 완전히 달랐으리라. 의무를 넘어서는 정성은 별로 쏟고 싶지도 않았을 수도 있다. 어떤 선생님은 매년 아이들과 날을 잡아 밤까지 함께 있으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나눈다. 저녁도 같이 해먹고 수다도 떨고 놀이도 하고 책도 읽고 다양한 공부들을 함께 한다. 그런 '정성'은 교사가 아이들을 위해 스스로 한 것이다. 그런 각 교사의 정성에 대해 누군가가 '선생님이니까 아이들을 위해 그 정도는 하셔야죠?' 라고 이야기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런 교육 활동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정말 아름답고 즐겁고 행복하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진정한 의미의 성장의 경험이 될 수 있었을까? '선생님이니까 아이들을 위해 그 정도는 해야 한다'는 마음은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지. 누군가가 요구한다고 해서 만들어진 정성이 아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누가 시켜서 하는 것과 자발적으로 움직여서 하는 것은 많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내가 반골기질이 있어서 그런건지 모든 인간이 다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되면 별로 하고 싶지가 않아진다. 그리고 그런 것이 '의무'로 다가오는 순간 +a에 해당하는 부가적이고 더 깊고 큰 정성을 쏟는 것이 싫어진다. '아 그냥 이만큼만 하면 되겠지' '내 역할은 다 한 것이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일에 개인이 쏟아 만들어내는 정성과 기적은 사라지는 듯하다.
그럼 이렇게 어려운 구성원의 '자발성'은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내야 하는가? 그리고 나는 왜 자발적으로 더 많이 움직일 수 있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