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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kim Jul 21. 2023

선생님, 미안합니다.

선생님 정말 미안합니다.

우리 학교는 1학기를 마치며 1학기 교육과정을 전체적으로 돌아보는 평가회 겸 워크숍을 3일간 가진다. 어제가 그 첫날이었고 여러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9시에 회의를 1차적으로 마무리했다. 누가 시켜서 하면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못 나눌 것이다. 교사로서 내가 더 잘 살고 싶어서. 우리가 다 같이 교사로서 잘 살고 싶어서 그렇게 자발적으로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퇴근하고 휴대폰을 켜보니 참담한 소식이 들려왔다. 서이초 2년차 선생님이 본인의 일터인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였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그리고 내가 교사로서 행복하게 자발적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같은 동시대에 다른 곳에서 나의 동료들은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 상황에서 내가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여러가지 카더라에 의한 썰들이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야기가 조금씩 명확해졌는데. 그저 머리가 멍해졌다. 참담하다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아무 것도 못하겠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잠도 못자고 안절부절 침대에서 뒤척였다. 나의 초임시절과 저경력시절이 떠올랐다. 


동학년이었던 아줌마 교사들로부터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성희롱을 매일같이 당했고. 학교의 다른 선배들로부터 당했던 괴롭힘과 그 모멸감. 수치심. 비인격적인 대우들. 심지어 중간에 발령받은 초임교사의 학급에 본인들이 맡기 싫어 기피하는 학생들을 모두 모아놓는 졸렬함까지. 그 부당함과 힘듦을 스스로 감내하라고 강요하던 관리자.  나는 최악의 상황과 환경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불합리하고 부당한 상황인데 불구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그런 학교. 부당한 일에 어떻게 개겨야 하는지도 몰랐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시절이라 그냥 그렇게 묵묵히 혼자서 견뎠다. 그런데도 무너지고 또 무너졌다. 교직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만 자꾸 떠올랐다. 그래도 버티고 버텨 교사로서 지금처럼 잘 살고 있지만.


이름도 모르는 그 선생님의 비극을 듣고 나는 그때가 떠올랐다. 게다가 나 역시 학부모로부터 부당한 민원과 시달림을 당해본 적이 있었기에. 저경력교사는 어떤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지 나도 정말 잘 알고 있기에 남일같지 않아 자꾸 눈물이 흘렀다. 나는 과거의 그런 경험을 겪고 선배교사에 대한 혐오가 극심해졌지만, 다행히 그 사람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수 있었다. 후배들을 대할 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다가가 돕고 이야기도 먼저 하고 힘들때 항상 곁에 있는 선배가 되어주고자 부단히 노력하며 살았다. 난 도저히 그런 인간들같은 교사는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내 자신을 다잡으며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주위에 있는 교사들과 연대하고자 노력했고 어려움이 있는 교사들을 돕고자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그 노력이 부족했다는 생각이다. 더 나눴어야지. 더 나서서 다른 어려움이 있는 후배들과 동료들을 위해 나섰어야지.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왜 더 먼저 작금의 교육 환경을 바꾸고자 노력하지 않았나 스스로를 끊임없이 자책하게 된다. 죄송하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후배 선생님이 겪은 일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 공교육에서 늘상 벌어지는 장면이라는 걸 생각하면 나는 더 연대하고 더 돕기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 우리 교실에 있는 우리 아이들이 나에게 가장 중요하지만 그걸 넘어 대한민국의 같은 교사들을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했는가 반성해야 한다.


착잡했다. 참담했다. 죄송했다. 그래서 오늘 느즈막히 퇴근하고서는 옷을 갈아입고 바로 서이초로 향했다. 소식을 듣고 24시간정도 됐는 그 시간동안 참 많이 울었다. 남일이 아니라 내 일 같아서, 나도 겪었던 일이라서 어떤 기분이고 어떤 참담함인지 알 것 같아서. 그리고 죄송해서. 그래서 많이 눈물이 나더라.


서이초에 가서 조용히 추모하고 돌아왔다. 학교에 가니 더 참담하고 그저 죄송한 마음밖에는 들지가 않는다. 왜 나는 우리들을 위해 더 노력하지 못했을까? 나의 연대는 충분했는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참담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앞으로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가? 동료교사로서, 선배교사로서의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만 고민했다. 


나의 연대는 충분하지 않았으니 앞으로 나는 더 나서서 연대할 것이다. 나와 우리를 위해. 그게 궁극적으로 우리 아이들을 위하는 길이 되리라 생각하기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픔 없는 곳에서 부디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더 노력하며 주위를 더 살피며 살겠습니다.


전국에 있는 모든 교사들이 같은 심정이리라. '트라우마'와 아픔을 안고 우리는 매일 또 교실에서 아이들과 그렇게 살아 나가야 한다. 어느 누구도 교사를 보호해주지 않는 교실과 학교에서 그렇게 스스로를 지키고 다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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