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밤하늘의 차가운 공기
[연재소설] 벚꽃 맨션의 비밀
(6화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하늘을 날게 해 준다던 고양이는 치요코에게로 다가와 포근한 꽃무늬 이불 위에 묘한 표정으로 앉았다. 그리고 잠에서 막 깬 그녀의 몸은 서서히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두 발부터 떠올라 살짝 엎드린 상태로 침대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몸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걷는 것과 흡사했다. 생각대로 발걸음이 옮겨지듯, 몸도 자연스레 뜬 채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녀는 서고 엎드려 보기도 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을 난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치요코는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과감히 팔을 뻗어 창문을 열었다. 깊은 밤의 차가운 공기가 집 안으로 훅 들어왔다.
그녀가 창 밖을 나서 본격적으로 하늘로 날아오르자, 밤바람이 두 뺨을 훑으며 빠르게 지나갔다. 하늘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동네는 밤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아 깜깜했고, 듬성듬성 놓여 있는 가로등만이 옅은 빛을 뿜어 내고 있었다. 깜깜한 밤하늘은 생각보다 무서웠다. 그녀는 우선 동네부터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자신감을 얻은 치요코는 아주 높이 올라가 보기로 했다. 하늘로 오를수록 저 멀리 옆동네까지 한눈에 펼쳐졌다. 건물과 길이 아주 작게 보였다.
한창 구경을 하다 보니, 차가운 안개 같은 것이 살갗에 부딪히면서 점점 으슬으슬해졌다. 온몸이 덜덜 떨리고 이가 부딪히며 딱딱 거리는 소리를 낼 정도가 되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올 때는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도 빠르게 하강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집에 열린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발을 붙이고는 일어섰다. 추위로 잔뜩 움츠린 몸을 이끌고 서둘러 옷장으로 가 두터운 카디건을 꺼내 입었다. 신기하고도 놀라운 밤이었다.
그날 밤이 지나고, 치요코는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사실과 메리와 소통할 수 있는 사실에 매일이 즐거웠다. 메리는 이제 가족 같은 친구가 되어 항상 치요코 곁을 지켰다. 매일 아침 메리와의 티타임도 일상이 되었다. 오전 10시쯤 따스한 햇살이 거실을 비출 때면, 치요코는 부엌에서 따뜻한 홍차를 내리고, 쿠키를 준비했다. 예쁜 딸기 무늬 접시에 고양이 간식을 담고서 거실로 들고 가 소파에 앉으면, 메리도 꼬리를 길쭉하게 세우고는 요염하게 따라왔다.
“메리, 어제는 아주 멀리까지 다녀왔어. 고토구 너머 바다까지 보이더라니까. 이제는 매일 운동하는 느낌으로 밤에 산책을 다녀오려고. 어때, 나 볼 살 좀 빠진 것 같지 않아?”
메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메리를 올려다보았다.
“조심해, 치요코. 밤하늘은 위험한 법이야.”
“나도 알아. 사실 엊그제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뾰족한 교회 첨탑 위에 있는 십자가에 부딪힐 뻔했어. 밤이라 잘 보이지가 않더라고.”
치요코가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재밌어. 마치 어릴 때 처음 자전거를 탄 기분이야. 아주 먼 거리를 빠르게 달려 동네 한 바퀴를 둘러보았을 때의 그 기분 있잖아.”
메리의 대답이 없었다. 대신 고양이는 웅크려 누웠다.
“아, 너는 자전거를 타 보지 않았겠구나. 미안해. 그런데 문득 궁금해. 넌 내 말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거야?
예를 들면 인터넷 같은 단어 말이야. 고양이는 컴퓨터를 하지 않잖아.”
“나도 다 알아들을 순 없어. 그냥 기분으로만.”
메리의 대답은 항상 짧거나, 아예 대답이 없거나 둘 중 하나였지만 치요코는 그런 메리가 좋았다.
“그렇구나. 사실 나는 너와 대화하는 게 정말 즐거워. 나처럼 수다스럽지 않아서 더 그래. 내가 정말 고양이와 대화하고 있는 것 같잖아!”
치요코가 흥에 겨워 보조개가 폭 파인 채 즐겁게 웃었다.
“야-옹.”
메리가 귀엽게 화답했다.
하늘을 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나서부터 치요코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공허했던 마음이 따스한 안개 같은 것들로 가득 채워졌음을 느꼈다. 하늘을 그리는 것이 그녀의 마음을 그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녀의 작품은 순식간에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밤하늘을 나는 횟수는 줄어들고, 뽀얗고 오동통한 손으로 부드러운 춤을 추듯 캔버스를 채워 나가는 시간만이 늘어만 갔다.
“메리, 이번에 어느 대학교에서 강의 문의가 왔는데, 한국이래. 가고 싶어.”
메리는 듣는 둥 마는 둥 창가에 앉아 혓바닥으로 두툼한 핑크빛 발바닥을 핥고 있었다.
“부산은 엄마의 고향이기도 해. 너도 함께 가 줄 거지?”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치요코는 메리를 채근하지 않고 대답을 기다렸다. 양쪽 발바닥을 핥고, 등의 털까지 조금 핥고서, 앞발로 얼굴털까지 정돈한 후 메리는 송곳니를 보이며 크게 입을 열었다.
“야-옹.”
메리는 짧게 대답했다.
메리는 한국으로 출발하기 바로 전 날 갑자기 사라졌다. 오후 내 찾아봤지만, 도무지 보이지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연관된 일정이 이미 짜여 있어, 치요코는 내일 떠나야만 했다. 마지막날 밤 호텔 방에서 남몰래 하늘을 날아올라 메리를 찾아보려고도 했지만, 메리가 사라져서인지 더 이상 하늘을 나는 능력이 발휘되지가 않았다.
메리는 도대체 왜 떠났을 까.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도 두려운데 하물며 내일이면 홀로 낯선 한국까지 가야 했다.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그날 밤 그녀는 사그락거리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는 얼굴을 따라 하염없이 타고 흐르는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눈물로 범벅이 된 치요코는 갑자기 며칠 전에 들은 메리의 말이 떠올랐다.
“한국에 가면 쌍둥이를 찾아야 해.”
도대체 어떤 쌍둥이를 찾아야 하며 왜 찾아야 하는 건지 물어봤지만, 당시 메리는 한마디로 일축할 뿐이었다.
“넌 그들을 만날 거고, 바로 알아볼 거야.”
그 말이 치요코의 머릿속에서 빙빙 돌았다. 쌍둥이를 만나게 된다면 그것은 운명일 것이다. 메리가 사라진 것과 쌍둥이와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그들을 찾아 메리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다음날, 치요코는 무난히 김해 공항에 도착했다. 마음이 심란하고 복잡한데, 한국 땅이 발에 내딛자 엄마의 따스한 그 무언가가 온몸에 전에 졌다. 메리에 대한 온갖 감정을 엄마가 모두 다 품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 이곳이구나.' 그녀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치요코는 숙소로 향하는 차에서 부산의 빽빽한 도심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제법 높은 산까지 아파트와 집이 오밀조밀하게 덮어버린 독특한 도시 풍경이었다. 지금 눈으로 담고 있는 이 진짜 부산의 모습에 엄마의 어린 시절을 자꾸만 그려보았다. 엄마와 함께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메리라도 함께였다면.
치요코의 숙소는 언덕을 오르고 또 올라가야만 했다. 다행히 찻길이 새롭게 정비된 듯하여 가는 길이 깔끔하고 괜찮았다.
“치요코 교수님, 안녕하세요. 부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부터 교수님을 보조할 이자현이라고 합니다.”
벚꽃 맨션이라는 곳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이자현이라는 젊은 조교가 인사를 하며 치요코의 짐을 받아 들었다. 검은 긴 생머리에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자현 씨, 반가워요.”
“비행기 타고 오시느라 피곤하시겠어요. 여기가 교수님께서 머무르실 벚꽃 맨션입니다. 호텔과 비슷한 장기 숙소로 보시면 돼요. 교수님 짐은 여기 이 분들께서 옮겨 주실 겁니다. 벚꽃 맨션 관리원이세요. 앞으로도 지내시는데 어려운 점이 있으면, 이 분들께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자현의 말이 끝나고 치요코는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바가지 머리를 하고 앳되어 보이는 쌍둥이 형제가 빙긋 웃어 보였다. 치요코는 본능적으로 그들이 메리가 말한 쌍둥이임을 알아챘다. 메리는 치요코가 한국에 오자마자 이 사람들과 만나게 될 거란 걸 어떻게 알았을 까.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