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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메리 Feb 14. 2023

6화.  치요코 할머니의 이야기

[연재소설] 벚꽃 맨션의 비밀



    치요코는 일본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부유한 일본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다. 그런 모습을 유심히 보았던 엄마는 치요코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었다. 어쩌면 일본에서 당신이 한국인으로서 받았던 서러움을 치요코의 미술적 성공으로 이겨내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열정적으로 뒷바라지해주던 엄마의 뜻대로 치요코는 순수 미술을 택했고 학창 시절에는 풍경, 인물, 사물 등을 그리며 학계의 인정을 받았다. 정식 작가로 데뷔하고 첫 번째 전시회도 열게 되면서 유명 화가의 길로 들어서고 있을 때였다.


    여느 때처럼 그녀는 이젤 앞에 앉아 있는데 문득 본인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존재하는 것을 그려보고 싶어졌다. 이를 테면 사랑, 바람, 따스한 분위기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간 그려온 스타일로는 도무지 표현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머리를 식히고자 그림 그리는 것을 잠시 쉬어 보려 했다. 그렇게 일 년, 이년, 그리고 십 년이 지나자 붓을 다시 들기조차 힘겨워졌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만 갔고 치요코에게 세상은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치요코, 시장 가자. 그만 좀 일어나라.”


    흰머리를 곱게 빗어 묶은 노모가 치요코의 이불을 들추며 깨웠다. 그녀는 허리 디스크가 있다는 핑계로 매번 치요코에게 물건을 들어 달라며 같이 시장에 나가자고 청했다. 엄마가 딸을 세상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치요코는 어젯밤 입 속으로 털어 넣은 수면제의 약효가 아직 몸 안에 남았는지 엄마의 부름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작고 통통한 몸에 생기가 넘치던 치요코의 앳된 모습은 더 이상 없었다. 머리는 헝클어졌고, 푸석한 피부 사이로 주름이 깊게 파인 것이 나이는 30대 중반이지만 언뜻 봐서는 50대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늘은 나나미상 가게에서 한국 고춧가루를 들여온다고 했단 말이다. 오랜만에 김치 한번 해 먹어 보자. 일어나거라.”


    “으으응…...”


    치요코가 힘겹게 대답했다. 일본인 사이에서 차별당하며 항상 고국을 그리워하던 엄마는 김치를 직접 해다 먹었다. 치요코가 세상은 거부해도 거부할 수 없는 단 한 사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엄마를 위해 부스럭대며 이불 밖으로 나왔다.


    최근에 아케이드 지붕 공사가 끝난 시장은 꽤나 번듯했다. 앞서 걷던 엄마는 어깨가 축 쳐진 채 뒤쳐져 따라오는 치요코가 신경 쓰였다. 세월이 흘러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딸을 안타까워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지? 저기 들어가서 차라도 한 잔 마실까?


    사실 짐을 들어달라는 것은 핑계고 엄마의 본심은 치요코에게 세상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서로 할 말이 거의 없어도 가끔 이렇게 카페에 들어와 딸에게 창 밖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관망자의 입장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다 보면 언젠가 자신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치요코는 창 밖을 내다보는 적이 없었다. 컵이 올려진 테이블만 주시하다가 가끔씩 멍하니 허공을 보곤 했다.


    “치요코, 작년에 아빠도 돌아가시고 우리 모녀가 참 기쁜 일 없이 살아왔던 것 같아.”


    “그렇지.”


    “있잖아. 엄마는 어릴 때 모험심이 참 많았어. 동네 구석구석 안 다닌 곳이 없었지. 그러던 어느 날 동네가 지겨워진 거야. 더 큰 곳을 보고 싶었단다.”


    그러면서 시작되는 엄마의 이야기는 항상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두부 장수 아줌마를 따라 일본 배에 몰래 올라 탄 이야기, 긴자에 도착해 번화한 거리를 보며 깜짝 놀랐던 이야기, 한국 사람을 만나 일자리를 얻고 우연히 아빠를 만난 이야기까지.


    치요코는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엄마를 따라 시장을 나오고 찻집을 가고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일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계절이 3번 정도 지났을 때 엄마조차도 치요코의 곁을 떠나고 만 것이다. 혼자가 될 딸이 걱정됐는지 눈도 감지 못한 .





    장례식장을 찾은 친척들은 혼자가 된 치요코를 걱정하였다. 사람들의 염려와는 다르게 그녀는 엄마가 떠난 날부터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7시에 맞춰 일어났으며, 깨끗하게 몸을 씻고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연습을 했다.


   치요코는 오늘 아침에어김없이 거울 앞에 서서 빗으로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넘기고는 한껏 미소를 지어 보았다. 턱 아래로 살이 처지고 푸석해진 피부를 마주하자니 지나간 세월이 야속하게도 다 드러났다. 외모는 아직까지 실망스럽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반짝이는 눈망울을 마주치고는 그 모든 것이 괜찮다고, 괜찮아졌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녀는 아침을 먹다가 문득 어젯밤 아기 울음소리 같은 고양이 소리가 유독 심하게 났던 것이 생각났다. 고양이 몇 마리가 심하게 싸우는 것 같았는데, 너무 졸려 뒤척이다 그냥 잤던 것이다. 혹시나 다친 고양이가 있는 건 아닐까 아담한 2층 주택을 따라 한 바퀴 도는데 아니나 다를까 집 뒤편 쓰레기를 모아 둔 곳에 고양이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검은색 몸에 하얀 눈썹을 한 삐쩍 마른 고양이였다. 얼굴과 등에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 같은 큰 상처가 여럿 나 있고, 안타깝게도 낙엽을 모아둔 곳 뒤쪽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는 것이 보였다. 어쩌면 어젯밤 이 고양이는 새끼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치요코는 서둘러 새끼 고양이를 마당 한편에 묻어주고, 어미 고양이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도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치요코는 새끼를 잃은 고양이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엄마를 잃은 자신과 새끼를 잃은 고양이. 어느 쪽이든 견디기 힘들 만큼 너무나도 큰 고통이었. 그녀는 고양이를 담요로 덮어주고 따뜻한 물 한 접시를 놓아두었다. 고양이는 눈은 끔뻑 댔지만, 물도 마시지 않고 기운이 없이 쳐져만 있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집에 있는 참치 캔을 찾았다. 고양이의 입 앞쪽까지 내밀었더니 그제야 조금씩 핥아먹기 시작했다.   


    치요코는 고양이 상처에 약을 발라 준 후 집에 먹일 것이 더 없나 찬장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고양이의 말소리가 들렸다.


           “아기를 잃었어요.”


    찬장을 뒤지던 치요코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고양이는 그 자리 그대로 담요를 덮은 채 누워 있었다. 고양이가 말을 할 리는 없었다. 방금 그 소리도 직접 귀로 들은 소리는 아니었다. 마치, 마음속의 울림 같은 것이었다. 치요코는 괜찮다고, 이제는 씩씩하게 이겨 낼 거라 생각했는데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고양이의 말 까지 들릴 정도로 허약해졌나 싶었다.


   '이상하네. 분명 고양이의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겉으로 보기에 고양이는 새끼가 떠났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녀 역시 겉으로는 엄마가 떠난 것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듯이.


     2주가 흘렀다. 다행히 동네에 무인 고양이 용품점이 있어, 치요코가 고양이가 먹을 만한 것들을 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정성껏 아픈 고양이를 돌보았고, 고양이는 이제는 집구석 구석을 잘 돌아다닐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그렇게 긴 시간이 또 흘렀다. 날이 흐리던 어느 날, 고양이가 또 말 같은 것을 했다.


    “비가 와요.”


    치요코가 놀라며 창 밖을 내다보자 후드득 비가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동그란 눈으로 고양이를 바라보는 사이 비는 점차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늦가을에 마치 한여름의 폭풍 같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너 방금 말한 거야?”


    고양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요염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나 요즘 왜 이러지.'


    치요코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여유롭게 집 안을 거니는 고양이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 비가 그치면 추위가 찾아올 것이다. 그녀는 따뜻한 오차 한잔을 준비해 암체어에 앉았다. 고양이도 따라와 그녀의 무릎에 누웠다. 그녀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빗소리를 즐겼다.


    “고양이야. 네가 정말 말을 하는 거야?”


    고양이는 웃음 진 눈으로 머리를 손 아래로 들이밀며 쓰다듬으라 청했다.


    “후후후. 그래. 그건 말이 안 되겠지만, 난 네 목소리가 가끔씩 들리는 것 같단 말이야.”


    치요코는 귀여운 덧니가 드러날 만큼 싱긋 웃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놀랍게도 또 울림과 같은 고양이의 말이 전해졌다.


    “내 이름은 메리.”


     “또 말한 거야? 이름이 있었구나. 어릴 적 좋아하던 만화 속 주인공의 이름도 메리였는데. 앞으로는 널 메리라고 부를 게.”

 

    “여러모로 고마워. 치요코.”


    고맙다는 말 까지 들었을 때 치요코는 고양이가 말을 한다는 것에 확신을 가졌다. 처음에는 그저 외로움 때문인지 고양이가 원하는 걸 마음속으로만 생각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양이와 대화를 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때 창 밖으로는 느닷없이 천둥 번개까지 치기 시작했다.


    “너 정말 말을 하는 거야?”


    우르릉 쾅. 다시 한번 더 천둥소리가 집 안을 흔들었다.


    “아니. 인간의 말을 할 순 없어. 네가 느끼는 대로 너와 소통을 할 수 있는 것뿐이지.”

       

   고양이와 대화가 되는 것을 깨달은 치요코는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와 정말 신기하다.”


    “난 아메 네코. 이 비가 그치고 쾌청한 하늘이 드러나면, 메시지를 전할 게."


    치요코는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메 네코란 이름 자체에 ‘비’란 글자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 장대 같은 비와 함께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란 것쯤은 알 수 있었지만,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란 말인가?


    “비가 그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거지?”

           

    “응.”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메리와 거실에 앉아 시간을 보냈지만, 비는 쉽사리 그치지 않았다. 치요코는 한참을 기다리다 침대에 누웠다.

           

    “밤도 늦었고 너무 졸려. 메리, 이 비가 그치면 깨워줘. 꼭.”

           

    메리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치요코의 다리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웠는지 따스한 온기가 전해져 왔다. 졸린 그녀를 배려해 알겠다는 말 대신 조용히 따라 누웠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야옹. 야옹.


    얼마나 지났을 까. 메리가 치요코의 얼굴을 핥고 있었다. 치요코는 부스스해진 머리를 헤어 밴드로 넘기며 정신을 차렸다. 커튼을 걷자 창 밖엔 비가 그쳤고, 짙푸른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 새벽임을 알 수 있었다.


    메리는 창틀에 꼿꼿이 앉아 신비한 눈빛으로 치요코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양이를 좋아하세요?

    그렇다면 하늘을 날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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