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가녀린 몸집의 미지가 좁은 골목길을 열심히 올라갔다. 그리고 그 뒤를 오서가 씩씩대며 바짝 따라갔다. 좁은 골목길을 열심히 오르는 두 사람에게 응원이라도 하듯 시멘트 바닥을 비집고 피어난 민들레가 한들거렸다.
이 길은 한때 미지가 치요코에게로 향하는 길이었다. 바람처럼 자유롭고 싶다더니 어느 날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치요코.
“오미지, 여기가 길은 맞는 거야? 너무 좁아서 팔이 다 긁힐 것 같아.”
미지도 처음 이 길을 오를 때는 별 희한한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이 길이 아니면 윗동네 출입 카드가 있는 게 아니고서야 벚꽃맨션이 있는 동네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뒤따르던 오서의 숨이 턱까지 찼다. 골목에서 타고 내려오는 바람조차도 그의 이마에 가득한 땀을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오서의 흐르는 땀을 보았다. 검은 머리카락이 살짝 젖어 있는 모습조차도 매력적이었다. 자세히 쳐다보면 심장이 더 뛸 것 만 같았다. 그래서 그의 볼멘 말투를 무시한 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야윈 몸으로 오르막 길을 오르는데 집중했다.
“지금 뒤 돌아보지 마라!”
힘겹던 오르막을 지나 약간의 평지에 도착한 미지는 그제야 발걸음을 멈추고 뒤따르던 오서에게 소리쳤다.
“네가 그리 말한다면, 뒤돌아 봐야지.”
오서는 만나서부터 퉁명스럽게 명령조로 말하는 미지의 말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 가파른 경사에서 비틀대며 뒤를 돌아보았다.
오서가 힘겹게 올라온 길의 저 너머에는 짜증스러운 감정을 덮어버릴 만큼 감동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오밀조밀 붙어 있는 정겨운 집들 끝에 펼쳐진 바다. 넓고 푸른 바다의 한가운데는 햇빛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오서의 마음은 순식간에 벅차올랐다.
“아이 참. 일단 다 올라와서 봐야지, 벌써 보면 어떡하노. 여기는 처음 와보제?”
중간에 멋진 풍경을 봐서일까, 오서는 미지에 대한 태도가 한 결 너그러워졌다. 점점 더 가팔라지는 오르막에도 그는 군말 없이 미지를 따라 묵묵히 골목길을 따라 올라갔다.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던 두 사람은 드디어 마지막 가파른 계단 3개를 지나 좁은 골목을 빠져나왔다. 이곳에서의 경치는 더 멋졌다. 푸근한 구도심이 가려진 것이 없이 펼쳐졌다. 도심과 바다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것이 액자만 드리워졌다면 마치 한 폭의 작품 같았다.
“내는 이런 내리막 길 끝에 있는 바다를 보면 정말 신기하다. 저 아래에 있어야 할 바다가 여기서 보면 저만치 위에 있다이가. 참 신기하제.”
“그래, 바다도 보이고 경치가 멋지긴 하네.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어.”
“모를 만도 하지. 부산에서도 여기가 외지 기도 하고, 사람들이 놀러 온다 캐도 부둣가 어시장에서 회만 먹고 가지 이래 오래되고 쑥쑥한 동네로 누가 올라오려 하겠노. 내 아니었으면 니 같은 서울내기는 영영 이런 절경을 못 봤을끼라.”
오서도 미지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은 했지만, 지금은 경치가 문제가 아니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사라진 지 꽤 된 고양이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 근데 고양이를 이 동네에서 본 게 확실해? 우리 집은 여기서 한참 떨어져 있는데.”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모르나 보네. 우리 학교에서 걸어서 30분도 안 걸릴걸? 그리 안 멀다. 고양이들은 점프도 잘하고 그러니까 이 정도는 충분히 오지.”
미지는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지만 왠지 고양이들은 여기저기 멀리 다닐 것 만 같았다.
“네가 코딩 수업에 온 첫날, 자기소개에서 하얀 눈썹 고양이 메리에 관해 얘기 했다이가. 그때 내는 그 고양이가 어쩌면 내캉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동네를 돌아다녀 봐야 안 되겠나. 내도 메리처럼 모험을 좋아하거든.”
그녀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모험가의 표식이라며 자랑해 대던 보라색으로 염색한 머리칼을 손으로 한번 흩날렸다.
멋진 경치를 품은 윗동네는 방금 전 올라온 아래 동네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좀 오래되긴 했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걸맞은 정원 딸린 호화 주택 몇 채가 줄지어 있었다.
찻길 옆으로 야자수 나무, 자전거 길, 그 옆으로 난 아름다운 산책로를 걸으며 오서가 감탄했다.
“언덕배기 마을을 올라오니 완전 다른 세상이 나오네? 이런 부자 동네가 있을 줄이야.”
미지는 오서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곳에 대해 알려주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가 어렸을 때만 해도 여기가 제일 심한 판자촌이나 다름 없었다카더라. 전쟁 때 내려온 사람들이 서둘러 대충 지은 집하고 무성한 잡초가 전부였지. 근데 어느 날부터 이래 멋진 경치를 본 외지인 몇 명이 내려와 집을 허물고 별장을 짓기 시작했다대. 동네 입구부터 경비가 삼엄해가꼬 출입증 없으면 못들어오는데다. 우리가 온 길은 니만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 네 말대로 이렇게 멋진 경치를 그냥 두긴 아까웠겠다. 비밀은 지킬게."
“오야. 아, 그리고 휴가철만 아니면 여기는 대부분 한산하다. 내는 텅 빈 이 길을 걷는 게 참 좋더라. 너희 집 고양에 메리도 내처럼 이 길을 좋아했겠제?”
미지는 태평스럽게 그 거리의 주인인 마냥 으스대며 거닐었지만, 경비 초소에서는 외부인이 왔음을 눈치챘다. 머리가 벗겨진 김 씨 아저씨가 오랫동안 초소에 있어 지겨웠다는 듯이 기지개를 켜며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하품도 크게 한번 한 후에 허리에 뒷짐을 쥐고 괜히 초소 주변을 살피는 척했지만, 오서는 그의 힐끔거리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곳에 몰래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한 감정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어서 메리를 찾아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메리는 도대체 어디서 본거야? 여기서 본 거야?”
그가 다그치듯 물었다.
“이제 막 얘기하려고 했다. 너희 메리는 말이다.”
그녀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하늘을 가릴 만큼 높은 담이 한 블록 넘게 이어지는 압도적인 곳이었다.
“여기 벚꽃 맨션 안에서 봤다. 벚꽃 슈퍼 근처에서 자주 보이더라고. 할머니 집을 찾을 때마다 몇 번이나 유심히 봤다. 검은 몸에 눈썹만 하얀 고양이가 흔하지는 않다이가?”
미지가 자신만만해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마 벚꽃 슈퍼로 가모 그 고양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모른다. 일단 벚꽃 맨션 안에 있는 슈퍼로 가보자.”
“이런 곳에 슈퍼가 있다고? 이렇게 아무도 못 들어오게 생긴 곳 안에?”
“안에 들어가면 다르다. 일단 따라와 바라.”
오서는 의아해하며 일단 미지의 뒤를 따라갔다. 붉은 담을 따라 한참을 걷다 코너를 돌자 드디어 <벚꽃 맨숀>이라는 청동색의 낡은 표식이 보였다. 옆에는 ‘입주민 외 출입 금지’라는 벽보도 붙어 있었다. 미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서는 미지와 달리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멈칫거리고 있었다.
“야, 여기는 못 들어가는 곳이야.”
“말했잖아, 친한 할머니가 여기 사신다고.”
미지의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녀는 오서가 같이 모험을 하는 동지가 된 것 같아 좋았다. 사실 오서의 고양이를 찾아주기로 한 순간부터 데이트 같은 걸 상상했다.
그녀는 집에서 자기 전에 잔뜩 상상했던 것들 때문에 오서의 옆에 서면 자꾸만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래서 벚꽃 맨션에 도착해서까지도 오서보다 앞서 걸어야 할 것만 같았다.
벚꽃 맨션의 정문을 먼저 지나간 미지는 반짝이는 햇빛처럼 빛나는 오서에게 어서 오라 손짓했다. 벚나무의 싱그러운 초록 잎도그에게들어오라는 듯 흔들거리고 있었다.
“빨리 온나!”
오서는 미지의 말에 이끌린 듯이 자연스럽게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아치형 정문 안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입구를 지키던 벚꽃맨션 경비원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신문만 바라볼 뿐 별 그들에게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