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맨션은 참으로 이상한 곳이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곳이었지만, 유럽풍의 분수대가 있는 광장, 아름다운 정원, 그리고 야외 수영장 같은 외국 휴양지에서 볼법한 공간이 즐비했다. 아치로 이어진 회랑을 걸으며 미지가 입을 열었다.
“내는 있다이가. 이 맨션이 동네에 숨겨진 최고의 비밀 공간 같았다. 저 높은 벽 안에는 뭐가 들어있나 너무 궁금했거든.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여기에 들어와 보니까, 역시나! 벚꽃 맨션은 어마어마했다.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다. 이것 봐라. 야자수 나무가 심긴 잔디밭과 수영장. 이런 게 1980년대에 지어졌다는 게 말이 되나?”
서울에서 살다 온 오서는 부산에 처음 왔을 때 오래된 구도심에서 풍겨져 나오는 정겨움에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곳은 오서가 그간 보아오던 부산과는 전혀 달랐다. 과연 이런 곳에 와도 될까 하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하지만 고양이를 꼭 찾아야만 했기에 그는 고개를 두리번 거리며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미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오서야, 저기! 수영장 쪽 덤불나무!”
오서가 시선을 돌린 곳에는 정말 메리로 보이는 고양이가 조팝나무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쉽게 찾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오서는 어서 메리를 데리고 낯선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미지가 자기가 잡겠다며 소리를 치고 뛰어가는 바람에 메리는 순식간에 일어나 덤불숲으로 뛰어들어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무작정 다가가면 어떡해. 고양이는 그렇게 뛰어가면 도망치는 거 몰라?”
여기까지 힘들게 따라온 것이 헛수고가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벚꽃 맨션 어딘가에 있을 기다. 원래대로 슈퍼에 물어보러 가보자. 먹을 게 많은 슈퍼로 갈지도 모른다이가.”
머쓱해진 미지가 한 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미지와 오서는 벚꽃 맨션의 네 개 동과 그 사이에 위치한 작은 정원을 모두 지나 한 바퀴를 돌았다. 정문에 다다랐지만, 미지는 정문으로 곧장 나가지 않고 경비실 쪽으로 향했다. 경비실 뒤에는 관리가 잘 되지 않은 것 같은 작은 풀밭과 벚나무가 있었고 저 멀리 오래된 슈퍼가 보였다.
그들은 풀 밭 가운데 난 오솔길을 따라 벚꽃 슈퍼로 향했다. 빛바랜 천막 앞에는 페인트 칠이 벗겨진 입간판이 살짝 기울어져 있었다. 오서는 어렴풋이 보이는 ‘벚꽃 슈퍼’ 라는 글자를 보고서야 이곳이 바로 미지가 이야기했던 곳임을 눈치챘다.
“이 슈퍼에 사람들이 오긴 해?”
“처음부터 여기가 슈퍼는 아니었다. 원래는 이 땅을 개발한 시행 회사의 관리사무소로 사용되던 곳이었다더라.”
미지는 기억을 더듬으며 치요코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오서에게 들려주었다.
“옛날에는 대형 마트 같은 것도 없고 슈퍼로 가려고 하면 너무 머니까, 대표가 사람들이 입주할 때쯤 여기를 벚꽃 슈퍼로 바꾸었다고 들었다. 이래 보여도 여름철 같은 성수기 때에는 사람들이 이 슈퍼로 꽤 온다. 가깝다이가.”
지금은 휴가철이 끝나서 인지, 주변이 휑했다. 그래도 성수기가 있어서인지 슈퍼는 야외 공간도 적극 활용하고 있었는데, 야외 천막 아래에 먼지 쌓인 상품이 가득 한 진열장이 있는 공간이 꽤 넓었다. 오서는 지나가면서 ‘친환경 두루마리 휴지 30프로 세일, 13,900원’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오래전에 프린트한 것인지 종이가 누렇게 색이 바래고 잉크가 번져 있었다. 그는 정말 급하게 필요한 것이 아니면 여기서는 절대 제 값 주고 물건을 사지 않을 것 같았다.
게름칙해하는 오서와는 달리, 미지는 천막 아래 음침하고 너저분한 공간을 편안하게 지나 건물 안으로 거침없이 걸어 들어갔다.
계산대에 서 있던 한 남성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미지를 멀리서부터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30대 중반이었지만 키가 중학생인 미지와 비슷했다. 살이 쪄서 두툼한 얼굴이었고, 직접 자르는 듯한 바가지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몇 년 동안 똑같은 검은색 티셔츠에 무릎이 나온 검은색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일했다. 마치 슈퍼에서만 지내는 사람처럼.
오서는 계산대에서 무표정하게 서 있는 남자을 보고 음산한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소름 돋는 한 사람을 더 보게 되었다. 가게 구석 진 곳의 어둠 속에 똑같이 생긴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 기억나세요? 치요코 할머니와 함께 몇 번 왔잖아요.”
미지의 어색하게 밝은 인사가 가게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하지만 슈퍼 쌍둥이는 여전히 어두운 표정으로 대꾸하지 않고 미지를 쳐다보았다.
“다름이 아니라, 이 친구가 몸이 검고 눈썹이 하얀 고양이를 잃어버렸는데 제가 여기 앞 음식물 쓰레기통 근처에서 본 적이 있어서요. 혹시 그 고양이에 대해 아세요?”
계산대에 서 있던 남자는 미지의 말을 듣더니 앞니로 아래 입술을 살짝 깨물며 고개를 숙인 채 눈동자를 굴렸다. 무언가 고민하는 눈치였다. 미지와 오서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어색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가게 안 어디에선가 퀴퀴한 냄새가 나는 듯했다.
그때 이 상황을 유심히 보던 지켜보던 다른 쌍둥이 남자가 계산대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곤 망설임 없이 책상 위에 있던 오래된 컴퓨터 모니터에 옆에서 어떤 사진 한 장을 떼어 내 미지에게 덤덤하게 내밀었다.
“오래전에 치요코 할머니가 주고 가신 거야.”
가게만큼이나 오래된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받아 든 미지는 너무 놀라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주저앉아 버렸다. 오서가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미지의 손에 든 사진을 쳐다보았다.
"전설 속의 고양이와 찍은 사진이라셨어. 벚꽃 맨션에서 누군가 당신을 찾는다면 이 사진을 보여주라 하셨지. 이 고양이 같은데?"
몇십 년 전에 찍은 듯한 오래된 사진 속에는 젊은 치요코가 눈썹이 하얀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그 고양이는 메리와 똑같이 생겨서 오서 조차도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