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이어지는 꿈, 꿈, 꿈 (2)
# 절규, 그리고 절망
정신을 차려보니 여전히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은 뜨지 못한 채, 주위의 소리로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곧이어 여러 명의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지고 내 주위에 둘러서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아 아마 주치의와 간호사진이 회진을 온 것 같았다. 주치의가 간호사에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환자분 오늘 밤에 뇌 MRI 촬영합시다. 촬영이 환자에게 좀 힘들 수 있으니, 잠들게 하는 주사(또는 약)를 미리 투여해 주세요."
'나는 오늘 밤에 MRI 촬영을 할 거고, 그건 좀 힘든 검사구나...'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어 그저 침대에 누워있던 나는 생각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와중에 우연히 듣게 된 MRI 촬영이 내 하루의 유일한 일정이었기 때문에, 나는 하루종일 그 촬영만을 생각했다. 아마도 내 팔과 다리가 침대에 묶여있는 것 같았는데, 나는 그조차도 밤에 있을 MRI 촬영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제로 누운 채로 고정되어 있는 내 자세가 정말 불편했지만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누운 채로 시간이 흐른 뒤, 아마도 저녁 즈음부터는 나는 언제 MRI 촬영을 끝내고 마음 편히 쉴 수 있을지 기다리기 시작했다. 중환자실은 창문도 없고, 24시간 조명이 켜져 있어서 시간을 알아차리기가 매우 어려웠다. 하루 세 번 콧줄을 통해 투입되는 유동식, 하루 한 번 또는 두 번 간호사들의 교대 시간, 그리고 그 교대 시간에 맞추어 내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혀주는 시간으로 하루의 흐름을 어렴풋이 추측할 뿐이었다.
내가 느끼기에는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나고 밤이 되어 가는데도, 간호사들은 여전히 내 병실을 들어왔다 나갔다 할 뿐 MRI 촬영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내 차례는 언제일까...'
평소 같았다면, 바로 내 차례는 언제인지 간호사가 들어오자마자 묻고 확인했겠지만, 나는 생각만 할 수 있을 뿐 눈도 뜰 수 없고 입도 열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내 방에 들어온 간호사들이 이번에 새로 신입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측되는 남자 간호사가 오늘 밤에는 나를 전담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최근 내 병실에 들어와서 팔에 꽂힌 주사도 갈아준 적이 있었고 선배에게 깍듯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궁금한 것을 묻는 젊은 간호사였다.
'아, 신입 간호사의 환자라서 내 차례가 좀 밀리는 걸까...'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내가 마지막 순서라 밤늦게 촬영을 하더라도 이해해야지 하고 다시 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간호사들은 밤이 깊었는데도 나에게 MRI 촬영 얘기를 꺼내지 않았고, 이렇게 침대에 내 손발을 묶어둔 채 일과를 끝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순간, 밤새 이렇게 침대에 묶인 채로 있을 생각을 하니 갑자기 숨이 막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간호사들이 다 나가버리기 전에 날 풀어달라고, MRI든 뭐든 얼른 다 끝내주고 날 마음 편히 자게 해달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내 병실의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내 목소리가 바깥까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절망스러움에 사로잡혀 몸부림치고, 있는 힘껏 울고, 고함을 내지르며 팔과 다리를 빼내려고 했다.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던 몸이 조금씩은 움직여졌다. 특히 목 위로는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아 목과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때마다 어디선가 높은 음의 기계음이 들렸다.
"삐 - 삐 -"
기계음이 울리자, 나를 ‘전담’한다는 그 남자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왔고 수치를 보며 큰 소리로 같은 말을 반복해서 외치며 내가 괜찮다는 것을 외부에 있는 다른 간호사에게 알렸다.
"이상 없습니다."
"제가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나는 검사를 빨리 해주거나, 오늘 검사하지 않을 거라면 내 팔과 다리를 침대에서 풀어주길 바랐다. 생각으로는 또박또박 요구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어떤 말로도 전달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의 나는 예/아니오 형식으로 물어봐야만 간신히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정도였다고 한다. 어쩌면 나의 절규와 호소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얼굴을 찡그린 정도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아찔하고 소름이 돋는다.
어쨌든 나는 계속해서 누군가 내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물어줄 때까지 또는 내 말을 들어줄 때까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몸부림치고 소리치며 발악을 했다. 마치 그래야만 내 목소리가 전달될 수 있는 것처럼.
스스로 나의 절규에 지쳐갈 때 즈음, 마침내 선임으로 보이는 여자 간호사 2명이 왔고, 신입 간호사를 호되게 질책했다.
"이런 상황이면, 진작에 말을 했어야지!"
"교수님께 연락드렸고, 곧 교수님이 오신다고 합니다."
"어휴... 나 오늘 교수님을 하루에 2번 보는 거야? 망했다..."
내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 깊은 밤중에 주치의에게 연락을 한 것 같았고, 그 때문에 간호사들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웃으며 서로 농담은 했지만, 나 때문에 하루의 일이 잘 풀리지 않은 것, 일과가 무사히 끝나지 않는 것을 푸념하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주치의가 올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나자 난 조금은 잠잠해질 수 있었지만, 간호사들이 나를 원망할까 두려웠다.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만히 누워서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곧 올 것 같던 그들의 ‘교수님’은 오지 않은 채, 간호사들은 침상을 끌고 요트 안에 있는 창고로 날 데리고 갔다. 어두컴컴한 창고 안에 내가 누워있는 침대와 나를 짐짝처럼 넣어놓고 문을 쿵 닫았다. 아마 그들은 밖에서 야식을 먹으며 주치의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문 밖에서 들리는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그들이 먹는 음식 냄새를 맡으며, 내 옆에 을씨년스럽게 쌓여 있는 빈 침대들을 보며 누워있었다.
갑자기, 내 발 쪽 구석 어딘가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여긴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누구지? 누굴까?'
문득 내가 의식이 있고 그 인기척의 존재를 알게 되면, 그것이 날 해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애써 그 인기척을 무시하고 눈을 감고 누워있자니 공포감이 밀려왔다. 난 이 창고에서 무사히 나갈 수 있는 것일까. 밖에 있는 간호사들에게 이 상황을 알려야 할까. 알리려고 눈을 뜨고 목소리를 내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인기척이 당장에라도 나에게 달려들어 목을 조를 것 같았다.
애써 그 인기척을 무시하며 잠시 모든 걸 포기한 채 가만히 있었다. 한참이 지난 뒤, 여자 간호사가 들어왔다.
"이제 좀 검사 준비가 되었네."
그녀는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악역의 대사 같은 말을 읊으며, 이마 위로 흘러내린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뒤이어 내 침대는 요트 안의 창고에서 바로 옆의 동굴에 있는 검사실로 들어갔다. 해변가 절벽 쪽에 있는 작은 동굴이었다. 그곳에 커다란 기계가 하나 설치되어 있었고, 이내 나는 MRI 촬영을 시작했다. 주치의가 말한 것처럼 굉장히 힘든 검사였다. 이 병원의 모든 시스템과 간호사를 원망할 만큼.
'왜 날 재워주지 않은 거야...'
나는 마스크를 쓰고 온몸이 꽁꽁 묶인 채, MRI 기계 안에 누운 채로 들어가 끔찍할 정도로 웅웅 거리는 소음을 듣고 있었다. 어쨌든 검사가 끝나야만 하는 거라면, 나는 숫자를 9만부터 거꾸로 세는 것으로 이 괴로운 시간을 버텨보기로 했다.
'설마... 9만까지 숫자를 세다 보면 끝나 있겠지.'
수를 세다가 세다가 잊으면 다시 1부터 세고, 또 잊으면 다시 9만부터 세고. 그러나 아무리 숫자를 속으로 되뇌어도 검사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결국 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이 답답해졌다. 숨이 막혀왔다.
'이대로라면, 죽을지도 몰라. 그만, 그만!'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나는 괴물처럼 소리치고 몸을 비틀고 울었다. 울어도 울어도 검사가 끝나지 않아 누운 채로 구역질을 했다. 입에 걸친 마스크가 내 몸부림 때문에 눈과 코를 덮었다. 그제야 검사 담당자는 잠시 기계를 멈추었다. 내 마스크를 정돈해 주고 내 상태를 살펴보는 듯했지만, 어쩔 수 없이 검사 마무리를 위해 조금 더 버텨야 한다고 했다. 다시 검사가 시작되자 절망한 나는 소리 지르고 우는 것으로 그만하고 싶다는 말을 대신했지만, 나의 소리는 기계의 소음에 묻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또다시 지친 채로 모든 걸 포기하고 말았다. 내가 울다 지쳐서 정신을 잃어야만 끝날 것 같았다.
# 마비
결국 MRI 촬영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병실로 돌아와 아침을 맞이했다. 분명 내 몸은 다시 중환자실에 돌아온 것 같았으나 정신은 몽롱하고 꿈은 계속되었다.
나는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태초마을’처럼 생긴 마을에 살고 있었다. 올해 여름은 마을에 가뭄과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뜨거운 태양 아래 서서 몹시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마을 곳곳에는 아주 커다란 ‘비타민 워터’ 같은 음료가 들어 있는 커다란 물탱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물탱크 안에 있는 비타민 워터는 내가 어떤 미션을 성공하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반드시 그 물을 마셔야만 내 갈증이 해소될 것 같았다. 물을 찾아서 떠나려고 하는데, 갑자기 내 다리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나는 연구실 같은 건물의 침대 위에 다리가 마비된 채로 누워 있다는 사실도.
나의 움직이지 않는 돌덩이 같은 다리를 어떤 규칙에 따라 움직이게 되면, 나에게 그 시원한 물이 보상으로 주어질 것 같았다. 필사적으로 다리를 움직여 보려고 힘을 줘보았더니, 고통스럽지만 아주 조금씩 다리가 움직였다. 나는 허공에 대고 누군지 모를 이에게 소리쳤다.
"지금 너무 목이 말라요. 다리를 움직이는 것을 성공했어요, 물 좀 주세요!"
그러나 연구실에 있는 사람들은 내 옆을 스쳐 지나가기만 하고 내 말은 들리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누군가 CCTV로 보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다시 고통을 꾹 참으며 다리를 움직이고, 움직인 다리를 두 손으로 붙잡으며 물을 달라고 외치고를 반복했다.
그러나, 내 괴로움만 갈수록 커질 뿐, 아무도 나에게 물을 주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끝없이 이상한 꿈이 계속되다가 어느 순간, 꿈과 현실 사이에서 현실의 비중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괴로운 꿈을 꾸고 있을 때는 꿈과 현실이 뒤엉켜서 이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더욱 괴롭다는 것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현실 속의 나는 ‘중환자실’이라는 하얀 방 안에서, 얼굴 근육과 다리는 마비되고 손은 침대에 묶인 채로 여전히 몸 안에 갇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