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투명인간

왜 나한테만 관심이 없지?

by 구름


중환자실에서는 더 이상 괴로운 꿈을 꾸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꿈을 꿀 수 있는 정도로 길게 잠들 수 없었고 꿈을 꾸었더라도 침대에 누워 간호사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 말고는 다른 경험이 없어 꿈과 현실의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실제로 지난 일주일 동안의 꿈에서 들렸던 간호사들의 목소리는 실제 중환자실 간호사들의 목소리였다. 물론 꿈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진짜로 날 어디론가 데려가서 괴롭히고 가뒀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이렇게 내가 꿈꾸기를 멈추고 주변을 인식하며 날짜와 시간을 인지하게 되는 시점에, 병원에서는 내 병세는 호전되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때부터는 또 다른 괴로움이 시작되었다.


중환자실에서 내 팔은 거의 침대에 고정되어 있었고 다리는 마비 때문에 천근만근 무거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서 거의 사지가 묶였다시피 한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졌다. 익숙한 간호사들의 목소리와 그들 사이에 오가는 얘기를 통해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난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만히 누워 주위의 소리를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듣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들리는 정보를 나름대로 해석해서 내 상태와 주변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주치의 또는 간호사의 대화를 들으면서 시간과 요일을 인지하고, 계속해서 기억하고자 했다.


몇 년 전부터 남편과 나는 구글 캘린더를 이용해서 일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가 같이 해야 할 일정, 남편이 나에게 알리고 싶은 그의 일정, 내가 남편에게 알리고 싶은 나의 일정,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잡은 일정 등 핸드폰 화면을 가득 채운 캘린더에는 빼곡히 여러 가지 색들로 구분되어 일정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나는 그 캘린더를 떠올리며, 내가 응급실에 들어간 날짜, 그리고 한 번의 주말이 지난 것, 이번 주에 원래 잡혀 있던 약속들을 생각하며 계속 시간과 요일과 날짜를 되짚으며 기억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는 의식을 되찾은 뒤로는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날짜와 요일을 되새기고, 혼자 추론하고, 눈을 뜰 수 있게 될 수 있는 시점부터는 계속 시계를 확인했다.


어쩌면 그 일만이 다리가 마비되고 손은 침대에 묶여있고 눈은 뜰 수 없는 상태에서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침은 진통제 기운으로 평화로웠다. 그러나 밤은 정말 괴롭고 길었다. 중환자실의 밤은 항상 조명이 꺼지지 않아서 정말 밝았다. 행여 병실이 어두운 조명으로 바뀐다고 해도 2번 병실 밖은 여전히 밝고 부산스러웠다. 밤엔 자고 싶었지만, 그것도 어려웠다. 그리고 어떤 날은 주치의가 회진을 오기도 하고, 오전인지 오후인지 나는 알 수 없는 시간에 남편의 얼굴이 내 눈앞에 나타나고 그런 날들이 반복되었다.


내가 의식을 되찾은 뒤로(어쩌면 그전부터) 병실에 들어오는 간호사들은 나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최선을 다해 반응하고 대답하려고 했지만 나의 반응이나 대답은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괴롭고 죽을 것 같은 느낌에 몸부림칠 때 마주하는 것은 간호사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난 중환자실에서의 아주 많은 시간들을 간호사들을 미워하며 보냈다. 간호사들도 사람이었고, 사람은 동일한 일이라고 해도 그 일을 대하는 태도가 모두 다 같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각자 다양한 대응을 했다.


남자 신입 간호사는 나에게 최선을 다해 내 상태를 확인하려고 거의 소리치듯이 계속 나에게 질문을 했다.


“환자분, 지금 어디가 불편해요?”


“환자분, 지금 더우세요?”


“환자분, 팔을 좀 풀어드릴게요. 진정하세요.”


또 한편으로는 여러 환자들(나 포함)에게 지쳐서 질려버린 듯한 간호사도 있었다.


“그 팔 풀어도 쉽지 않아. 어려워. (그냥 둬.)”


라고 말하며 괴로워하는 나를 두고 당황한 신입 간호사에게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그렇게 말하는 간호사가 정말 야속하고 미웠다. 그러나 나중에 매일 중환자실 면회를 왔던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초기의 나는 거의 의사표현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내가 열심히 간호사들에게 소리쳤던 목소리들, 질문들, 대답들은 거의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이유 없이 계속 몸부림치는 중환자인 나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했던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차라리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무엇이 그렇게 괴로웠냐 묻는다면, 명확히 말하기가 어렵다. 어디가 아프다거나 했다기보다는 결박되어 있는 상태, 가만히 있어야 하는 상태,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는 채로 있어야 한다는 것. 그냥 그 시간이 처음 겪는 고통이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keyword
이전 09화하얀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