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응급실로
기절한 것처럼 자고 일어나 아침에 눈을 떴다.
보통의 아침처럼 아이가 제일 먼저 일어나 혼자 책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기다리다 지쳐 날 깨우러 왔다. 날 톡톡 쳐서 깨우는 아이에게 몸을 일으켜 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전날 밤 두통과 함께 잠이 들면, 다음날 아침까지 그 두통이 이어지는 경우는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이번 두통은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통증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손과 발도 역시 처음 겪는 느낌으로 저려왔다. 간신히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해서 일으켜 세워 침대 끝에 걸터앉았지만, 천장과 바닥이 빙글빙글 돌며 어지러웠다. 아이는 영문을 모르고 옆에 우두커니 서서 내가 어서 일어나서 같이 책을 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만, 엄마 화장실 좀."
안방 침대에서 화장실까지는 불과 열 걸음도 채 안 되는 거리였음에도, 화장실까지 걸어가는 길에 내 몸이 의지와는 달리 비틀거리고 있었다. 간신히 양변기에 다시 걸터앉았지만 여전히 어지러웠다.
'무언가 잘못된 거야.'
화장실에서 나와서 아직 잠이 깨지 않은 남편이 누워있는 침대로 돌아와 다시 쓰러지듯이 누우며 말했다.
"119를 불러야 할 것 같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호흡도 가빠오는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처음엔 남편은 내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잠시 후 몸을 돌려 내 상태를 본 남편의 목소리가 자뭇 심각해졌다. 그리고 이어서, 남편과 내가 출근한 후 아이의 유치원 등원을 도와주기 위해 격주로 아침마다 우리 집으로 오는 엄마도 도착했다. 평소와 같았다면,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어느 정도 한 후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아침을 먹었을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얼굴을 쳐다볼 겨를도, 우리 집으로 출근한 엄마를 맞이할 겨를도 없이 누워만 있었다.
그래도 누워 있을 때는 어지러움이 잦아들었다. 머리를 조금만 들어도 어지러워서 머리를 거의 들어 올릴 수 없었다. 회사 출근은 당연히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침대에 누운 채로 부장님, 팀장님 그리고 같은 팀에 있는 동기에게 오늘 하루 휴가를 내야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손 끝이 저려서 온 힘을 다해 집중해야만 오타를 내지 않고 휴대폰에 메시지를 입력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남편은 119에 연락해서 지금 당장 갈 수 있는 응급실을 문의했다. 2024년 3월, 의료계 파업이 진행되고 있던 시기라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은 없었고, 집 근처의 큰 병원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응급실을 알려주었다. 남편은 일단 본인이 운전을 해서 안내받은 응급실 중 한 곳으로 직접 가보겠다고 했다. 남편은 몸을 가누기 어려워하는 나를 겨우 부축해서 조수석에 태웠다.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까지 내려가는 길 내내 어지러워서, 나는 거의 아무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일어서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이 들었다. 차에 타자마자 조수석을 할 수 있는 만큼 눕혀서 모로 누웠다. 남편은 다시 한번 119에 통화를 한 후, 우리 집에서 가까운 S병원 응급실로 가겠다고 나에게 말해줬다. 그러나 나는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그 어떤 의사결정에도 남편과 함께 논의할 수가 없었다. 그저 누워서 어디든, 어떤 병원이든 이 어지러움과 손발 저림을 없애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S병원은 집에서 차로 20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다. 병원 야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응급실로 들어갔다. 당시 느끼기에도 주차장에서부터 응급실 입구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길이었지만, 이제는 남편의 부축 없이는 혼자 걸을 수가 없었다. 남편에게 거의 매달리다시피 걸어서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자 차가운 공기 속에 대기할 수 있는 딱딱한 의자가 있었다. 나는 그 의자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있었고 남편은 옆의 접수처에서 정신없이 접수를 했다. 코로나가 어느 정도 종식 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응급실 안은 여전히 코로나로 인해 모든 의료진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고, 입구도 철저히 통제되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병원 로비와는 달리 응급실의 분위기는 차갑고 삭막한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 딱딱한 의자 위에 앉아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어지러워 호흡이 가빠졌다.
접수를 마친 남편과 함께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더니, 간호사 한 명이 있었고 그 앞에 또 작은 의자가 있었는데 그곳에 앉혀졌다. 간호사는 증상을 물었고 손발이 저리고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워서 혼자 걸을 수가 없다고 얘기했는데, 얘기를 하면서도 호흡이 점점 어렵고 숨이 차는 것이 느껴졌다. 간호사는 내 증상을 듣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과호흡 증상 중 하나라고 말했다.
"과호흡이 지금 심하세요. 손발 저린 증상은 과호흡으로 인한 경우가 많아요. 숨을 좀 참아보시고 호흡을 천천히 할 수 있도록 해보세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최선을 다해 호흡을 천천히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손끝과 발끝은 점점 더 저려오고 통증도 느껴졌다.
나는 곧 안에 있는 응급실 침대로 옮겨졌다. 남편은 응급실 안에 같이 들어왔다가 나간 것인지, 아니면 간호사와의 면담 후 바로 헤어지게 된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응급실 침대에 누운 채로 의사와 간호사가 번갈아서 나에게 오며, 증상들에 대해 여러 질문들을 했다. 원인을 찾기 위해 검사를 하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떤 검사인지 알아듣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왼쪽 팔엔 수액이나 검사를 위한 주사 바늘이 꽂힐 것이고, 오른쪽 손목엔 '동맥검사'라는 것을 한다고 했다. 왼쪽 팔에 꽂는 주사는 아무래도 응급실 주사라서 바늘이 굵어 아플 수 있고, 동맥 검사는 좀 많이 아플 거라고 친절한 경고도 해줬다. 정신없는 와중에 나는 우습게도 최근 유튜브에서 본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간호사(박보영 배우 역)가 떠올랐다. 환자가 주사 바늘이 아프다고 말하자, 다른 간호사들은 사무적으로 '응급실 주사 바늘이라 굵어서 그럴 수 있다'라고 말하는 반면, 박보영 배우 역 간호사는 환자를 친절한 목소리로 안심시켜 주며 더 가느다란 아동용 바늘로 갈아 끼워주는 장면이었다. 그 와중에도 굵은 주사 바늘은 무서웠었나 보다.
원래 주사를 많이 무서워하는 편은 아니라서 왼쪽의 응급실 주삿바늘은 참을만했다. 그러나 '동맥검사'는 정말로 내 손목을 아주 뾰족하고 굵은 송곳으로 깊숙이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병원에서 해 주는 조치는 웬만하면 잘 참는 편인 나였지만,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와 함께 통증을 호소했다.
"으.. 선생님, 너무 아픈데요."
동맥이 신경과 가까운 곳에 있어서 어쩔 수 없다는 대답과 함께, 난 이 통증이 얼른 끝나길 바라며 기다리는 수 밖에는 없었다.
그러고도 오후 내내 뇌 CT와 MRI를 찍고, 어지러움 검사 같은 것도 받았다. 병원에서는 검사를 받을 때마다 나를 휠체어에 태워서 검사를 하는 곳까지 이동시켜 주었다. 뇌 CT와 MRI는 일반적인 건강검진 때도 종종 선택해서 받았던 검사라서 익숙했는데, 어지러움 검사라는 것도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고글 같은 안경을 착용하고, 검사관의 지시에 따라 그 안에 보이는 빨간 불빛을 보거나 눈을 감거나 하며 몸의 자세를 바꾸는 검사였다. 이미 몸을 가누기 어려운 나는 검사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 어려워서 검사를 받는 내내 힘이 들었다. 나의 이모뻘 되는 듯한 여자 검사관도 내 상태가 당황스러운 것 같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렇게 각종 검사를 모두 받고 나서도 응급실 침대에 한참을 누워 있었다. 누운 채로 자다 깨다 하니, 어떤 순간에는 몸이 좀 괜찮아진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결국 그날 늦은 오후, S병원 응급실에서 진행한 검사에서는 모두 이상이 없었고 계속되는 손발의 저림은 과호흡 때문이라고 알려주었다. S병원에서는 더 해 줄 수 있는 게 없지만, 원한다면 조금 더 누워 있다 갈 수 있다고 했다. 남편은 조금 고민하는 듯하더니, 그럼 집에 가서 쉬는 게 더 낫지 않겠냐며 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나도 춥고 낯선 곳에 누워 있느니, 집에서 쉬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보았다.
응급실로 왔을 때와 다를 바 없이 비틀거리며 남편의 부축을 받아 다시 차에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서도 여전히 나는 제대로 서지 못하고 간신히 엘리베이터 안에 설치된 바에 의지해 서 있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남은 오후 내내 누워서 잠을 잤다. 자다 깨다 했지만 누워 있으니 좀 괜찮아지는 것도 같았다. 옆에서 걱정하는 남편과 엄마에게도 누워서 눈을 감은 채로, 이러고 있으니 좀 괜찮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보통이 아니었던 하루가 아무 탈 없이 끝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