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는 전혀 다른 날들의 시작
사실 우리 가족이 홍콩 여행을 떠났던 2월 내내, 내가 다니던 회사는 아무도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카더라" 소문이 무성한 인사이동과 조직개편이 예정되어 있어 분위기가 몹시 뒤숭숭했다. 나는 원래 있던 부서에서 1년 정도 일을 했고, 우리 회사는 보통 3년 정도 한 부서에 있으면 다른 부서로 이동하는 '순환' 근무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인사이동에서 나는 아마 다른 부서로 옮기게 될 것이라고, 회사의 최고 인사권자인 전무님과 1년간 같이 일해왔던 부장님, 팀장님이 귀띔을 해주었다. 새로 옮길 예정인 부서는 기존에 내가 해왔던 일과는 아예 다른 직무인 전략과 기획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였다. 그리고 장염을 앓게 되었던 홍콩 여행 중, 나는 예상했던 대로 '전략기획부'라는 부서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그건 사실 이 회사에서 나에게 지금 하는 일보다 기대하는 바가 크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입 밖으로 '이젠 좀 더 중요한 일을 해야지.'하고 나에게 독려 아닌 독려를 하는 상사들도 더러 있었다. 나도 이제 2년 후면 다시 또 승진 대상이었기 때문에, 어느 부서로 옮기든 새 부서에서는 더욱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일이란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이 고민은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을 듯하다. 본격적으로 취직해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뚜렷하게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냥 다른 친구들을 따라 회계 공부를 시작했고 그리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은 수험기간을 거쳐 회계사가 되었을 뿐이었다. 약 3년간 회계법인에서 일할 때에는 '전문가'로서 일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만큼의 지식과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압박감을 많이 느끼면서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다. 바쁜 시기에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출근하고 밤샘 작업도 많이 했던 시기였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것 같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 방황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내가 이 일을 좀 더 잘하게 된다면, 자신감이 생긴다면, 애착을 갖게 된다면 마음속의 '일'에 대한 공간이 꽉 찰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노력했지만, 결국 바쁜 시기가 지나면 나에게 남아있는 것이 없는 공허함이 반복되었다.
일에 대해 고민하던 끝에 일을 통한 자아실현도 좋고 세상에 기여하는 것도 좋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이런 것들은 일이 아니라 다른 수단으로 이루어야 하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돈 버는 수단인 일에 있어서 좀 더 마음 편히, 좀 더 긴장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했다. 그러던 중 회계법인보다 영업 부담도 적고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는 지금 회사로 이직하게 된 것이다.
올해로 벌써 이직을 한 지 9년 차가 되었다. 이직 이후, 나름대로 나와 회사 일을 분리하여 생각해서 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되,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는 자세로 일했다. 솔직히 내 나름으로는 회사원의 생애순환주기가 있다면, '안정기'에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중요한 부서로 이동을 하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아주 오랜만에 업무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듯하다. 그럼에도, 무디고 무딘 나는 그 부담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내가 일하는 원동력으로 삼고자 하고 있었다.
또, 올해 6~7월에 회사에서 매년 1명씩 선발하여 지원해 주는 해외연수도 신청하고자, 영어 공부도 병행을 해야 했다. 아주 오랜만에 영어 자격증 인터넷 강의를 신청하고 영어 책도 샀다. 또 새로 옮긴 부서에 나랑 같은 시기에 해외 연수를 원하는 또래 직원이 있어서 경쟁 아닌 경쟁을 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 직원 하고는 어떻게 얘기를 나눠야 할지 앞으로 내 커리어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회사 일로 고민을 많이 했던 시기였던 듯하다.
마침 7살이 된 아이의 학원 스케줄도 좀 바꿔보려고 고민을 시작하던 차였다. 계속 다니던 영어학원은 3월까지만 다니고 4월부터는 주 1회 원어민 과외로 바꾸고, 집 근처 피아노 학원도 다니려고 오후 반차를 내고 상담도 다녀왔다. 그리고 근처 미술학원을 가보고 3월 셋째 주 저녁에 아이를 데리고 미술학원 상담도 예약해 놓았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새로운 봄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있었던 3월 초순 내내, 나는 컨디션이 몹시 좋지 않았다. 바뀐 부서로 오는 이삿날에도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팠고, 매일 두통도 이어졌다. 틈나는 대로 휴게실에 누워있어도 보고, 진통제도 먹고, 따뜻한 차로 몸을 녹여보기도 했다. 회사 앞 병원에 수액도 여러 차례 맞으러 다녔다. 그래도 회복이 되지 않는 느낌이어서 작년 같으면 바로 하루 휴가를 쓰고 누워서 쉬기라도 했을 텐데, 새로운 부서라 괜히 눈치도 보이고 일도 계속 바쁘고 신경 쓸 일이 많아 연차도 내지 못했다. 친구들에게도 공공연하게 홍콩에서의 장염 이후 몸살 기운이 계속되고 있고,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는다. 이것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인가 보다 하며 실없는 농담을 수없이 했다. 심지어 회사 전무님에게까지도 장염 때문에 살 빠졌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 때도 역시, 이 몸살 기운과 계속되는 편두통이 처음 겪는 어떤 병의 전조 증상일 줄은 몰랐다.
3월의 부서 이동으로, 내 업무 담당 임원도 바뀌게 되었다. 이전 본부장님이 본인과 같이 일했었던 실무자들을 모아 저녁을 사주는 날이었다. 이전 본부장님은 워낙 쿨하고 좋은 분이었고, 날 존중해 주고 아껴주며 함께 일했던 분이어서, 컨디션이 좋지 않더라도 그 저녁자리는 꼭 가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함께 맥주도 마시고 하이볼도 마시고 싶었지만, 역시 몸이 계속 좋지 않아 양해를 구하고 제로콜라를 마시며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약간 으슬으슬 몸살 기운이 계속 있었지만, 요 몇 주간 그래왔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본부장님은 1시간 만에 카드를 주고 쿨하게 떠났고, 남은 사람들은 약간의 담소를 나누다가 2차 장소로 이동하고 나는 일찌감치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아이는 이미 잠이 든 시간. 지하철 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로 집에 가곤 했지만, 그날따라 걷고 싶은 기분이 들어 집까지 걸어갔다. 3월 중순이었지만 밤은 쌀쌀했고 몸살 기운은 조금 더 심해지고 있는 듯했다. 집에 들어서니, 남편은 여느 때와 같이 날 기다리며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긴장이 풀렸는지, 옷을 갈아입고 씻고 나와 소파에 모로 눕자 몸이 떨리고 오한이 들었다. 보통 이런 날엔 온수매트를 켜고 푹 잘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곤 했다. 미처 내가 하지 못한 집안일들이 떠오르긴 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아무래도 그냥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나 잘게. 내일 봐” 하고 손 인사를 하고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남편도 특별한 말은 하지 않고 인사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분명 평소와 다를 바 없었던 저녁이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평소와는 전혀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