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좋아한다.
나는 추위는 물론 더위에도 매우 취약한 체질이지만, 여름이 너무 좋다.
언제부터 여름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의 모든 좋은 기억들은 주로 여름에 머물러 있다.
경쾌한 음악, 달콤한 향기, 인상적인 책, 마음을 울렸던 영화, 잊지 못할 여행.
기분 좋은 특정한 기억 들을 떠올리면 추억은 작년, 재작년, 몇 년 전.. 줄곧 어느 해의 한가운데, 어느 여름으로 향하곤 한다.
여름을 좋아하는 까닭은..
어쩌면 뜨거운 날씨 탓에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지 않아서 일까. 긴장감을 내려놓고 느긋한 상태가 된다.
모든 사물을 좀 더 낭만적으로 바라보고 모든 현상을 좀 더 낙관적으로 이해하려는 마음 덕분에 일상에서의 행복감이 커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새벽 공기를 들이마실 때 가슴에 차오르는 청량함.
차가운 에어컨 바람맞으며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잔. 창문을 두드리는 세찬 빗줄기.
늦은 밤 더운 바람. 차가운 맥주잔에 맺힌 물방울. 사람들의 들뜬 숨소리.
낯선 곳으로 떠날 설레는 계획. 우연에 거는 기대감.
가벼운 옷차림으로 훌쩍 나선 한 밤중 드라이브. 기분 좋은 음악.
발등 위로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음을 간지럽히는 비 온 뒤 흙내와 풀향기. 말갛게 갠 하늘.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여름에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선명하게 느낀다.
그리고 여름에 만나는 모든 것들은 진한 생명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만 같다.
눈부신 태양, 짙고 푸른 나뭇잎, 휘몰아치는 비바람,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우렁찬 매미 소리. 여름의 만물은 농익은 생명력으로 저마다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심지어 여름에 만나는 개미는 더 크고 통통하고 까맣고 빠르다.
나도 그렇다. 여름의 나는 더 기운차고, 더 본능적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을 오롯이 감각하는데 충실한 인간이다.
여름의 나는 현재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