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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Oct 14. 2021

럭셔리한 럭셔리 (1)

명품을 대하는 자세

명품(名品)의 사전적 의미는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을 뜻하지만, 1990년대 중반 해외 유명 패션 브랜드를 국내 소개하던 마케터들에 의해 럭셔리 브랜드를 지칭하는 단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장인이 만든 걸작품이라는 뜻의 명품이든, 호화롭고 고급스러운 사치품이라는 뜻의 럭셔리든. 어쨌거나 필요한 기능 이상의 가치를 지닌 아름다운 물건은 평범한 일상 저 너머에 있는 것만 같다.




그들만의 럭셔리

나의 부모님은 전형적인 중산층의, 특별할 것 없는 소비성향을 지니셨다. 내가 그러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는 동안, 과거 학생으로서의 나는 소위 '럭셔리'라 불리는 하이패션을 쉽게 접하거나 소비할 수 있는 주체는 아니었다. 그러나 패션전공 서적을 통해 현대 패션사와 디자이너의 철학에 눈을 뜰수록 럭셔리 패션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은 갈망이 커졌다. 이를테면 샤넬의 전설과도 같은 혁신성, 크리스찬 디올의 놀라운 발상, 입 생 로랑의 독자적 여성상 등을 만져보고 입어보고 싶은 욕구 말이다.

학생 신분으로 그런 럭셔리 브랜드 매장에 들어가는 일은 꽤나 큰 준비가 필요했다. 가진 옷 중 제일 비싸 보이는 옷을 고르고 골라서 입고, 엄마 장롱에서 니나리찌, 지방시 같은 해외 브랜드 스카프를 꺼내 목에 두르곤 했다.(실은 이름만 빌려온 라이선스 브랜드 인지도 모른 채) 럭셔리 브랜드의 청담동 플래그십 스토어나 갤러리아 백화점의 매장에 들어설 때면, 혹시 안내직원이 막아서면 어쩌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매장 안애서도 잔뜩 주눅이 들어서 옷을 만져도 될까 쭈뼛쭈뼛 눈치를 보고, 입어보겠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

벌써 20여 년 전 이야기지만 나는 그랬었다. 보통의 대학생이었던 나는 럭셔리라는 단어가 지닌 '호화로운 사치'의 의미에 압도되어 다른 의미를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그때 나에게 럭셔리란 대중이 접근하기 어려운 값비싼 브랜드. 아무튼 럭셔리 패션은 내 것이 아니었다.




명품 가방은 나를 구원해줄 것인가

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꽤 유명한 국내 하이패션 브랜드에 디자이너로 취직을 했다. 그 회사의 오너 성격은 까다롭고 불같기로 유명했다. 옷 만지는 사람은 손에 물기 묻히면 안 된다며 디자인실에서는 물도 못 마시게 하고, 아카이브에서 옷을 꺼낼 때 옷걸이 손잡이를 잡지 않고 옷에 손을 댔다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이 회사의 옷은 항상 애지중지 귀하게 다루어지는데, 디자이너들은 종종 험한 말을 들었다. 오너가 기분이 나빠 식사를 하지 않으면 디자이너는 그 누구도 감히 밥을 먹을 수 없는, 이상하고도 지랄 맞은 도제식 시스템이었다.

패턴사, 재봉사와 같은 테크니션은 법정 근무시간을 철저하게 지켰다. 12시 점심시간이 되면, 1분만 더 지속하면 마무리될 일도 그대로 멈추고 손을 놓았다. 그러나 디자이너는 오너, 혹은 그 브랜드와 혼연일체가 되도록 강요받았다.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새벽 1-2시에 퇴근하는 건 일상이었고, 패션쇼 준비 막바지에는 며칠 밤을 새기도 했다.

참 이상하게도 돈 쓸 시간이 없는 것은 분명한데, 통장은 늘 텅 비어 있었다. 내 월급은 하루에 3-4만 원씩 고스란히 택시 기사님에게로 갔으니까.


내가 만드는 옷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 디자이너라니. 내 삶은 무척 곤궁했지만, 우리 브랜드 옷은 백화점 명품관에 위풍당당하게 걸려 있었다. 나는 왠지 억울한 마음에 이를 악 물고 돈을 모았다. 두 번 만날 친구를 한 번만 만나고, 식당에서 음식을 고를 때 조금 더 싼 걸 고른다던가, 주말 아침에는 회사에 태워 다 달라고 엄마에게 졸라서 택시비를 아꼈다. 몇 달 동안 모은 백오십만 원가량의 눈물 젖은 비자금 사용 계획은 무척 뚜렷했다. 나는 패션지에서 봤던 대나무 손잡이가 달린 까만 스웨이드의 구찌 백을 사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 가방을 걸치면 내가 엄청 세련되고 능력 있는 패. 션. 피. 플.처럼 보이겠지. 하며 밤마다 명품가방으로 이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구원받는 상상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50대 초반의 오너가 그 가방을 메고 두둥! 회사에 등장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그 가방은 나 같은 20대의 사회 초년생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내 주변에 심심찮게 있던 금수저 아이들은 구찌나 프라다 따위는 어렵지 않게 소비했다.

그런데 극도로 평범한 내가 있어 보이고 싶어서, 궁핍한 일상을 쥐어짜 내어 아득바득 명품가방을 사는 게. 과연 의미 있을까? 그게 나를 멋지게 변화시킬까?

아니, 나는 오히려 스스로를 더 가엾게 여기거나 어쩌면 자기혐오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럭셔리 브랜드의 가방은 수년 뒤 사회적 성공을 성취한 다음에, 사는 것이 맞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무렵 나에게 럭셔리란 있는 사람들, 혹은 있어 보이려는 사람들이 소비하는 것. 그래서 마치 전리품처럼 소유하며 능력을 과시할 수 있는 것이었다.  


1994년 구찌 뱀부 호보 백의 광고 이미지. 가방을 들기 위해서는 잘 차려입어야 할 것만 같다. (출처: bagholic101.c0m)
2021년 구찌의 GG 스몰 뱀부 숄더백. MZ 세대를 겨냥해 막 들어도 될 것처럼 스타일링해 놓았다.  (출처: gucci.com)




프랑스에서 만난 럭셔리

철 모르던 초등학교 시절 구상했던 내 장래 계획은 요원해 보였다. 대학 졸업 후 3년간 월급을 모아 프랑스 유학을 가려던 나의 오랜 계획 말이다.

그래서 혼자 힘으로 공부해보려던 계획을 수정해 부모님께 도움을 청했다. 나는 부모님께 내가 얼마나 재능 있고 가능성이 있는지 어필하며 딱 서른 살까지만 최소한의 프랑스 유학비용을 투자해달라고 졸라댔다. 중산층의 보통 인생관을 지녔던 나의 부모님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

‘패션을 하더니 네가 허세가 심해졌구나’

말하시며 그냥 평범하게 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가 아니라면 어디라도. 장학생을 뽑는 유럽 대학 아무 곳에나 들어가야겠다며, 유학원과 대사관을 다니며 정보를 수집했다. 회사에서 기를 쪽 빨리고 밤늦게 집에 와서는, 좀비처럼 입학 지원용 포트폴리오를 만드느라 살이 쪽쪽 빠졌다.


밤새 재봉틀 돌리는 소리가 시끄러웠던지, 아니면 통곡소리가 신경 쓰였던지, 어느 날 부모님은 유학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마음을 바꾸셨다. 그렇게 나는 부모님의 노후자금을 털어 럭셔리 패션의 본고장 파리로 떠났다. 환율이 정점을 치던 IMF 시대에.


프랑스에서 만난 멋쟁이들의 옷차림은 한국 패션피플과는 많이 달랐다. 한국에서는 뭔가 있어 보이려고 반질반질 윤이나는 것들로 힘을 주는 게 멋 내기 공식이었다면, 파리지엔들은 일부러 삐뚜름하게 헝클어트리고 힘을 뺀 모습을 쿨하다고 평했다.

프랑스 패션스쿨에서 보았던 한 남학생은 뒤 허리선의 실루엣이 오묘한 코트를 입고 다녀 눈에 띄었다. 어느 날 크로키 수업시간에 늦게 들어온 그는 마땅한 자리가 없자 입고 있던 코트를 주저 없이 바닥에 깔고 드러누워 드로잉을 했다. 뒤집어진 코트의 라벨을 들여다보니 입 생 로랑이었고, 물어보니 어머니가 물려준 옷이라고 했다.

한국에선 부모세대에게 옷을 물려받는 것도 드문 일인데 남자아이가 엄마 옷을 입는다니. 나에게는 놀랄 일이었다.

또 어떤 아이는 꼼 데 갸르송 니트 소매에 구멍을 뚫어 손가락을 끼우고 멀쩡한 루이뷔통 슬리퍼를 박스 테이프로 칭칭 감아 신고 다녔다. 너무 새 것처럼 보이는 것보다 그게 더 멋있다고 생각한다며.

내 한 달 생활비보다 비싼 옷을 그렇게 함부로 다루다니 나는 충격에 빠졌다. 그들과 나의 차이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었다. 옷에 대한 태도였다.

그곳에선 꼭 유명 브랜드의 옷차림이라서 주목받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독특한 무드가 만들어내는 무언가*를 지닌 사람에게 주목했다. 지금은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의 디렉터가 된 한 여자아이는 멋진 옷차림으로 교수님들의 칭찬을 많이 받았는데 대체로 벼룩시장에서 산 옷들을 자기 식대로 입었다. 풍덩하게 큰 사이즈의 남성복 재킷에 얇은 소재의 드레스를 잘라 입거나 구멍 낸 스타킹을 신었다. 그녀만의 어떤 톤이 있었다.

이들에게 럭셔리는 비싸고 좋은 물건이라 귀하게 취급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일상에서 자기 스타일을 끌어올리는 수단이었다. 이들은 적어도 옷을 사람 위에 두지는 않는 것 같았다.


에르메스가 제인 버킨에게 헌정한 버킨 백. 제인 버킨은 수천만 원짜리 가방에 스티커를 붙이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팽개쳐 놓는다. (출처: glamour.com)




얼마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럭셔리 브랜드가 뭐라 생각하냐고 물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에르메스나 샤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해외 럭셔리 패션 브랜드를 언급했다. 그리고 브랜드의 철학, 장인정신, 역사성, 희소가치  나름의 이유를 논리 있게 대답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많은 학생들이 슈프림, 나이키(컬래버레이션), 애플, 테슬라  예상을 벗어나는 브랜드를 언급했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가격이나 역사성은  이상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이들에게는  일상의 가치를 높여주고, 내가 만족하고, 나를 기쁘게 하는  좋은 물건이 럭셔리인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럭셔리라는 단어에 압도되거나 주눅 들지 않고, 자기 삶과 스타일을 가꾸는 수단 중 하나로 대하는 듯했다. 자기 삶을 중심에 놓고 물건을 선택하려는 자세를 보니 대견하고 예뻐 보였다.

그리고 안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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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느 쎄 꾸아 (Je ne sais quoi) 알 수 없는 어떤 것.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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