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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Apr 03. 2021

행복을 파는 백화점

시대의 욕망을 수집해 놓은 곳

패피라면 마땅히 SNS에 방문 인증샷 하나쯤 올려야 하는 곳. 요즘 가장 핫한 '더현대서울'에 다녀왔다. 

나는 이제 스스로를 패션 피플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유행 현상을 분석하고 디자인을 교육하는 사람으로서 인싸들이 열광하는 것을 모른 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더현대서울은 오늘날의 거대 백화점들이 매장을 구성하는 문법을 따르고 있었다. MZ세대를 사로잡을 인디 감성의 테넌트를 발굴해 입점시켰고, 한남동 연남동 성수동발 화제의 F&B가 즐비하다. '인스타그래머블한(Instabramable)' 인테리어와 VMD에 한껏 힘을 주었다. 

이러한 큰 흐름 가운데 유독 이곳이 화제가 되는 이유는 자연친화적 휴식공간 때문이다. 이미 알려져 있듯, 더현대서울은 '리테일 테라피 공간'이라는 콘셉트로 소비자들이 휴식을 통해 힐링할 수 있도록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더현대서울이 자랑하는 '사운드 포레스트'는 자연채광 아래 가득한 나무와 꽃들, 거대한 폭포수 조형물이 멋들어지게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마음을 즐겁게 하는 이 실내정원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지금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

비록 스피커를 통해 재생되는 소리지만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서 울창한 초록 식물을 곁에 두고 수제 버거를 먹고 있자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지금 황사와 미세먼지로 엉망진창인 시궁창 같은 현실세계에서 도망쳐서 자연물을 훌륭하게 흉내 내어 만든 인공물들 속에서 위안을 받고 있구나.'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SF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이미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 그렇기에 우리가 욕망하는 것은 훼손되기 이전의 자연환경이 주는 안식이다. 인간의 욕망으로 파괴되가는 그 자연 말이다.


더현대서울의 거대한 실내정원 '사운드 포레스트'.  지금 우리에게 결핍된 그것. (사진출처: chosun.com)


르 봉 마르셰 백화점은 2018년 Leonard Erlich와 'Sous le Ciel' 콘셉트로 아름다운 인공하늘과 구름 모티브의 조형작품을 설치했다.




욕망을 수집해 놓은 백화점

백화점의 탄생은 소비의 행위를 문화로 탈바꿈시켰다. 1852년 파리에 문을 연 세계 최초의 백화점 르 봉 마르셰(Le Bon Marché)는 의식주와 관련된 각종 상품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라벨을 비교하며 상품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정찰제 도입, 자유로운 시착, 교환 및 환불 보장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 정책으로 편리한 쇼핑을 제공하며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르 봉 마르셰의 화려하고 세련된 실내장식과 잘 교육된 판매사원들의 고객 응대는 소비자가 대접받는 느낌이 들도록 했고,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소비행위는 곧 갑의 위치를 획득함을 의미한다. 또한 휴게공간을 설치해 쇼핑 도중 휴식이 가능하도록 했고, 연주회와 무도회를 개최하여 사교의 장으로서 기능하기도 했다. 백화점은 단순히 필요한 물품의 구매를 위한 공간이 아니며, 쇼핑은 부르주아의 여가활동이 되었다.


르 봉 마르셰의 초기 모습 (ⒸStephano Brancetti, 그림출처: franceinfo.fr)


진정한 상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은 
많이 파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비싸게 파는가 하는 것이다.

에밀 졸라의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Au Bonheur des Dames) 중에서


에밀 졸라(Émile François Zola)는 매력적인 상품들로 소비자의 구매욕구를 자극하는 르 봉 마르셰 백화점과 소비문화에 길들여져 가는 인간 심리를 면밀히 고찰하고 이를 소설로 남겼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Au Bonheur des Dames)⟫에서 백화점은 '소비사회'라는 신흥종교의 주축으로서 '현대의 대성당'으로 묘사되었다. 그의 생각은 백화점이 교묘하게 연출해놓은 덫 속에서 중산층이 소비라는 쾌락에 눈을 뜨며 불필요한 물건을 욕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 현상과 인간 심리를 냉철하게 파헤쳤던 자연주의 작가 에밀 졸라는 근대의 백화점이란 인간들의 욕망을 뒤섞어 놓은 곳이고, 소비욕구는 감염되기 쉬운 정신병처럼 그렸다. 에밀 졸라가 설정한 등장인물은 백화점의 전략에 굴복하여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결과 과소비를 일삼거나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 




소비하는 인간

프랑스의 근대 백화점과 부르주아 문화를 분석한 마이클 밀러(Micheal B. Miller)는 르 봉 마르셰가 소비자를 현혹하고 이성을 마비시키는 환경을 의도적으로 연출해 소비 욕구를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백화점의 각 층은 방향감을 잃도록 설계되어 있고, 매력적인 상품들은 곳곳에 가득 쌓여 고객들의 눈을 사로잡으며, 사치품은 쉽게 손에 닿을 수 있는 동선에 배치되어 있다. 소비자는 백화점의 강렬한 유혹에 이끌린 채 소비하며 욕망을 채워나간다.

현대사회에서 소비행위는 필요보다는 욕망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욕망하고 소비한다. 우리는 쇼핑의 유혹에 빠져들어 물질을 소유하려는 욕망뿐만 아니라, 정신적 쾌감과 감정의 평온을 얻기 위해서도 소비한다. 이를테면 '무소유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운치 좋은 사찰에서 운영하는 템플스테이 체험을 '결제'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디에서 뭘 입고, 뭘 먹고, 뭘 하고 노는가.라는 소비 스타일이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고 자아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하고, 타인의 가치를 평가하기도 한다.


니들이 뭘 찾는 건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행복을 판다. 는 콘셉트인 건가? 자이언티가 부른 노래는 너무 좋다.  (사진출처: thehyundaiseoul.com)




나 또한 그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소비자가 아니다. 많이 안다는 것이 현명함을 뜻하지 않듯이.

그래서 욕망을 자극하고 소비를 부추기는 마케팅임을 알아채지만 곧잘 유혹에 걸려들어 지갑을 열고 만다. 내가 소유한 물건이 나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쇼핑이 주는 쾌감과 좋은 물건을 소유할 때의 만족감도 내 삶의 행복을 구성하는 것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아마도 이렇게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소비하는 인간으로서 행복을 사들이며 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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