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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Aug 14. 2021

결핍과 욕망 사이 (1)

옷 입을 자유

지구 상에서 옷을 입는 생명체는 인간뿐이다.

집을 짓는 동물은 많지만 옷을 입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고, 옷은 인간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수품으로 꼽힌다.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을 인간답게 했던 옷은 내가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시각언어로 기능해왔다. 인간은 옷으로 자신을 꾸미고 과시하고 표현하려 한다.


타인과 동질감을 느끼며 소속의 안정을 취하거나, 때로는 남과 다르게 하여 돋보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패션은 언제나 이러한 인간들의 모방 심리와 차별화의 욕구를 적절히 줄타기하며 유행을 창조한다. 다시 말해 패션 산업은 사람들이 결핍을 느끼는 지점을 읽어내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 그것을 욕망하도록 자극하며 성장해왔다. 그리고 유행 패션은 탄생과 확산, 쇠퇴와 소멸의 주기를 반복하며 지속적으로 바뀐다. 이것이 패션의 속성이다.


그런데 유행 패션의 주기를 인위적으로 통제하고, 개개인의 차별화 욕구를 철저히 억압하거나 획일적인 복장을 강요하면 어떻게 될까?




전쟁기의 패션

패션은 전쟁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국가위기에 가장 먼저 절약의 대상이 되는 것은 패션과 같은 사치품이기 때문이다. 세계 제2차 대전 시기, 많은 국가들은 패션을 규제했다. 국민들의 자발적 절약을 호소하거나, 법령을 제정해 패션산업을 통제했다.


전쟁에 참여했던 서구 많은 국가들은 직물 배급제를 도입했고, 영국은 1941년 '유틸리티 클로스(Utility clothes, Utility Suit)'이라는 제도를 시행했다. 유틸리티 클로스는 문자 그대로 '실용복'이다. 영국 정부는 전쟁기의 물자 부족을 이유로 의복의 제조와 유통, 소비를 제한했다. 패션 제조업자는 1년에 50개 이하의 모델을 생산할 수 있었는데 이는 옷감을 절약할 수 있는 간소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이어야 했다. 스커트의 길이와 폭, 주름과 단추의 개수 등을 철저하게 규제함으로써 원단 소요량을 제한하고 장식을 배제했다. 그리고 국민은 국가로부터 배급받은 쿠폰으로만 옷을 구매할 수 있었다.

미국의 '빅토리 슈트(Victory Suit)', 독일의 '일반복(Everyman's Clothing)'도 같은 맥락으로 시행되었던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의복 규제 시스템이었다.


패션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우월함을 드러내고, 남다른 탁월한 심미안을 과시하려 하는 것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해온 인간의 오랜 본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본성을 인위적으로 억제한 결과, 패션은 다양성을 잃고 획일화되었다. 민간인의 일상복들이 군복을 닮아 변화한 것이다.


배급 쿠폰 18장 가격의 유틸리티 클로스. 1943 © IWM (출처: iwm.org.uk)
신규 지원자들을 인솔하는 미 여군. 평상복과 군복의 스타일에 별반 차이가 없다. 1943 (퍼블릭 도메인)




애국하는 패션

패션은 인간 내면의 정서와 가치를 드러내기 때문에 종종 피아식별의 도구가 된다. 특정 상황에서는 옷을 통해 옷 입은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다. 특히 국가가 위기에 빠졌거나, 사회가 크게 분열되어 첨예하게 대립할 때 패션은 착용자의 노선을 강하게 드러낸다. 어떤 옷을 입었는가에 따라 어떤 사상을, 어떤 세력을 지지하는지 예측 가능하다.


패션의 이러한 속성은 선동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전쟁과 같은 시기에는 패션을 통해 국가 이념에 동조하기를 강요한다. 어떤 옷을 입었느냐로 그가 애국자인가 반역자인가를 판가름한다.

소비를 부추기는 것이 숙명인 패션 잡지도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옷으로 애국하기' 운동을 거들었다. 1942년 런던 보그(Vogue) 지는 ‘옷 치장은 시대에 뒤떨어진 행위’라고 규탄하며 물자절약을 강조했다.


일제 치하에 있던 우리 민족에게도 이러한 논리가 적용되었다. 일제는 1942년 '표준 복장'을 제정해 부녀자들을 방공훈련에 동원하고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일하기 편한 옷을 입게 했다. 조선의 여성들도 '표준 복장' 시행령에 따라 한복 치마를 벗고 일하기 편한 일바지, 일명 몸뻬(もんぺ)를 착용하도록 강요받았다.

우리에겐 속옷이나 다름없던 바지를 입은 채, 일제에 부역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조선 여자들이 일본식 일바지 입기를 거부하자 일제는 몸뻬를 입지 않으면 외출 금지 수준에 달하는 규제를 했다. 몸빼를 착용하지 않은 모든 부녀자는 관공서, 학교, 상점을 비롯한 공공장소 출입은 물론 전차와 버스의 탑승을 금지 당했고, 식량 배급을 제한 당했다.

몸뻬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반역'과 '사치'의 의미뿐 아니라 퇴폐적이고 타락한 '창부'라는 프레임을 덧씌워 경찰 단속이 시행되었다.

일제 강점기 말 매일신보에 실린 선동 문구(© 김해경)와 몸뻬를 입고 군사훈련을 하는 동덕여자 고등보통학교 학생들(© 박건호). (출처: redian.org)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 강제 동원된 조선의 소녀들. 1944. © 시민의 소리 (출처: siminsori.com)




저항하는 패션

한 가지 스타일이 지배적일 때 가장 적극적으로 반발하며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계층은 언제나 10-20대의 젊은 세대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간소하고 실용적인 옷을 강요하던 사회분위기에 맞서 크게 맞선 세력은 주티(Zooties)라는 청년 하위문화 집단이었다.

주티는 주트 슈트(Zoot suit)를 입은 사람을 뜻하는데, 주트 슈트는 미국 재즈문화에서 시작되어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 유행한 크고 화려한 스타일이다. 과장된 어깨와 긴 길이의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double-brasted jacket), 풍성한 페그 탑 팬츠(peg-top pants), 브림이 넓은 모자, 화려한 넥타이, 긴 시계 줄 등. 주티들의 차림새는 zoot의 어원 그대로 '지나치게 화려한' '최신 유행의'스타일이었다.


물자 절약을 강요하며 복제령을 시행하던 전쟁기에 과장되고 화려한 의상을 입는다는 것은 국가 정책을 위반하는 행위였다. 미국 정부는 주트 슈트를 입는 것을 비애국적 행위로 정의하고 단속했다. 그러나 단속과 탄압에도 유행의 불길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아프리카계와 멕시코계, 이탈리아계 이민자들, 즉 '비주류'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젊은이들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주트 슈트를 착용함으로써 정부 정책에 대한 반발심을 드러냈다.


주트 슈트를 입은 비주류 청년들과 전쟁에 참여하는 백인 청년의 사회 갈등은 깊어졌다. 이들 간의 폭력 사태가 벌어지거나 사회적 문제가 생기면 정부와 경찰은 노골적으로 이민자들을 탄압하고 차별했다. 이에 분노한 이민자들은 1943년 5월 LA에서 폭동을 일으켰고 미국 여러 도시로 번져 일주일 이상 이어졌다. 언론은 이를 '주트 슈트 폭동(Zoot suit riot)'이라 명명했고, 비미활동위원회(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는 나치가 사주해 국가 체제를 전복하려 한 폭동이라는 오명을 씌우기도 했다.     

   

왼쪽: 주트 수트. 1940-42  © LACMA  (출처: smithsonianmag.com). 오른쪽: 1943년 LA의 주티들 (출처: wikipedia.org)
체포되어 이송되는 주티들. 대부분 이민자들이다. 1943 © Getty Images (출처: history.com)
파이프, 곤봉 등으로 무장한 채 주티들을 찾는 해군 해안 경비대와 군인들. 1943 © Getty Images (출처: history.com)




무엇을 입고 있느냐로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하는 모범 시민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을까?

전쟁 등 국가 위기 상황이 아닌 이상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불과 80년대 후반까지도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국산품 애용으로 애국심을 강조했다. 외제 필기구를 사용하지 않는지 불시에 필통 검사를 하고, 외제 옷은 물론 영단어 등 외국어가 새겨진 옷을 금지했다. 정책에 동참하면 깨어있는 모범 시민이고, 그렇지 않으면 계도가 필요한 우매한 자였다. 경제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두던 시대에는 개인의 취향은 중요치 않았고, 모두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욕망을 제거당했다.

어두운 과거를 지나 이제 우리는 무한 자유의 시대에 있다. 사회 집단마다 요구되는 드레스 코드와 문화. 정서적 허용치는 존재하지만, 사적 영역에서 개인이 입어야 할 것과 입지 말아야 할 것을 국가가 간섭하지는 않는다. 나를 꾸미고 드러내고 표현하는 '옷 입을 자유'를 마음껏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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