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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Nov 13. 2021

패션과 젠더 (1)

여성스러운 게 뭔데요?

내가 패션 강의를 막 시작했을 때, 패션을 문화 및 예술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교양수업을 맡아 강의한 적이 있다. 패션의 유행 현상 이면에 어떤 시대정신이 반영되었는지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는 과목이었다. 어느 날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시대상을 비교하며 유행 흐름이 어떻게 변했는지 설명하는 중이었다.


1930년대에는 세계 대공황과 세계 제2차 대전의 발발이 있었다. 경제 불황으로 실업문제가 심각해지며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다시 줄어들고, 심지어는 일하는 여성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1930년대의 시대 분위기는 여성들로 하여금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로 복귀해 헌신하기를 요구했고, 이러한 시대상은 패션에 반영되었다. 1920년대의 발랄하고 보이시했던 패션 스타일은 유연한 실루엣을 강조하는 ‘페미닌 한’ 스타일로 변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설명했는데, 한 학생이 중간 강의평가를 통해 문제제기를 했다.


페미닌 한 게 뭔데요? 인체 곡선을 강조하는 게 여성스러운 건가요? 
페미닌 하다.. 여성스럽다..라는 표현이 패션에서 자주 나오는데,  듣기 불편합니다.


'기혼여성을 해고하라'. '결혼하면 직업을 얻은 셈이다'  미혼여성에게 우선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시위. 1930년대 보스턴 (출처 : history.com)


1920년대 발랄하고 활동적인 이미지의 유행패션은 1930년대 전통적이고 우아한 모습으로 변했다. (좌 출처: smithsonianmag.com, 우 출처: vogue.co.uk)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왜냐하면 그동안 나는 스스로 페미니스트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가 뭐 별건가. 남녀 불평등을 묵인하지 않고 불합리한 제도에 저항하려는 마인드면 페미니스트지. 하는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직접적으로 성 불평등을 크게 겪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남자 형제 없이 자라서 아들. 딸 차별을 겪어보지 않았고, 여대를 나와서 남자들과 갈등 구조에 있었던 적이 없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디자이너가 일을 주도하는 패션 산업계에서 일을 했는데, 디자이너는 거의 여성이었다. 

커피 심부름이나, 복사 심부름, 청소 같은 허드렛일을 강요하거나 정서적 괴롭힘도 있지만, 어쨌든 가해자도 피해자도 여자들이었으니까 성 불평등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패션 하는 사람 중에는 남자건 여자건 아주 보수적이거나 강경한 사람은 드물었다. 늘 색다른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라서 비교적 유연한 사고를 가졌기에, 나는 성 불평등으로 고생한 기억이 없다.


자랑할 건 못되지만 패션 하는 사람들은 ‘보그 병신체’를 입에 달고 산다. 

업계 관행이기도 하고, 우리말로 전달되지 않는 어떤 뉘앙스 때문일 때도 있다. 실루엣이나 분위기를 설명할 때는 ‘페미닌 하다’, ‘매니시하다’, ‘걸리시하다’, ‘보이시하다’라는 표현을 무척 자주 사용한다. 물론 성의 차이에 기인한 표현만 쓰는 것은 아니다. 시크, 쿨, 스타일리시, 그로테스크, 엘레강스, 소피스티케이티드, 노블, 영, 힙, 로맨틱, 에스닉, 모던, 내추럴 등등. 이미지를 묘사하는 어휘는 주로 영어 단어를 사용한다.


‘페미닌’이라는 이런 표현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그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패션 하는 주변 지인들의 생각을 물었더니, 모두들 나처럼 눈이 동그래지면서 놀라워했다. 외국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그냥 스타일 표현일 뿐인데, 요즘 아이들이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나 역시 학생의 문제제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패션은 시대정신을 반영하며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을 따라 변한다는 사실이고, 당시 사람의 사고방식을 해석했을 뿐이다. 그런데 작은 표현 하나를 두고 내 의도 전체를 곡해하는 것 같아 내심 서운했다.


Fakir Musafar의 바디 플레이(Body Play) 1959 (출처: nytimes.com)




그 일을 계기로 오랫동안 생각했다. 

나의 성인지 감수성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나는 오랜 생각 끝에, 만약 누군가가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면 다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고 잘못된 것이라면 바로잡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학생들은 내 생각보다 젠더 이슈에 큰 관심을 가졌으며, 의도는 이해하더라도 그와 별개로 더 정제된 표현을 바랄지도 모른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왜 내 손가락 모양이 불쾌하다고 하는 거냐고. 불평해서는 안될 일이다. 특정 손가락 모양이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데 계속 고집한다면 그것 또한 폭력이 될 수 있으니까.


이제 나는 더 이상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 속에서 패션이 권위를 만들고 힘을 행사하는데 어떻게 쓰였는지 알고 있고, 그 힘의 주체는 언제나 지배계급, 그리고 여성보다는 남성들이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시대를 따라 여성, 혹은 남성에 향한 시선이 패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여기에 이야기하려 한다. 패션이 인간에게 부여한 힘 그리고 불합리한 현상들을 통해 패션의 다양한 의미를 돌아보고 생각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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