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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Apr 10. 2022

바지 입는 여자 (1)

당돌한 여자들의 출현

어느 날 수업시간에  20세기 시대상과 문화, 그리고 문화에 영향을 받은 유행 의상을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당대 최신 유행에 민감했던 젊은이들의 실제 모습을 시각자료로 보여 주었는데, 한 학생이 이렇게 반문했다.


옛날 여자들은 거의 전부 치마를 입었네요?


1950년대 밑단이 넓은 우아한 스커트, 1960년대 모즈룩의 미니스커트, 1970년대 디스코 열풍과 반짝이는 시퀸 스커트 또는 사이키델릭 한 히피풍의 롱 스커트. 내가 제시한 수업자료를 보면 그렇게 이해할만하다.

20세기 여자들에게 바지가 금지된 것은 아니었지만, 1980년대 여피족(Yuppie)과 빅 룩(Big look)이 상륙하기 전까지 '잘 갖춰 입어야 할 때', 여성들이 주로 스커트를 입었던 것은 사실이다.  




치마의 한계

서양 복식의 역사에서 여성복의 바지가 겉면으로 떠오른 시기는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Age)이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던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직전까지의 이 시기에는 산업혁명의 수혜로 경제적 번영을 이룬 부르주아들이 정교한 예술과 문화를 꽃피웠다. 후기 빅토리안 시대부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를 서유럽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아름다운 호시절 즉 '벨 에포크(La Belle Epoque)'라고 한다.


이 시대 서구 열강 국가의 여성들은 제국의 풍요를 누리며 집안 장식을 꾸미고, 차 문화와 파티문화를 즐기며, 일상의 모든 것들을 예쁘고 보기 좋게 가꿨다. 그리고 자신의 몸도 더욱 정교하게 옥죄어 다듬었다. 금속 아일렛으로 보다 타이트하게 조일 수 있는 코르셋을 입음으로써.

스커트의 폭과 네크라인은 조금 길어지거나 유행의 흐름을 타고 조금씩 변해갔다. 보트넥에서 하이칼라로, 크리놀린에서 벗슬로. 그러나 언제나 변치 않는 한 가지가 있었으니, 이는 바로 코르셋으로 조인 타이트한 허리와 치렁치렁 무거운 스커트였다.


최초의 여자 바지

미국 여성들의 참정권 운동이 일어나던 1850년 경, 신체를 압박하고 행동을 제약하는 여성들의 복식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인식도 함께 생겨났다. 이 무렵 엘리자베스 스미스 밀러(Elizabeth Smith Miller)라는 여성이 최초로 바지를 입고 외출했다. 엘리자베스 스미스 밀러는 미국 노예 해방 자선운동가인 아버지와 어머니 딸이자, 노예제 폐지론자 아내였다. 그리고 그녀 자신도 여성 인권 운동가였으며 빅토리아 시대 복장 개혁(the rational dress movement)에 앞장선 깨어있는 지식인이었다.

(결혼 전의 성 Smith와 남편의 성 Miller를 함께 표기하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엘리자베스 스미스 밀러가 1851년 선보인 최초의 여성 외출복 바지는 짧은 스커트 밑에 덧입은 터키식 바지(Turkish Pantaloon) 형태였다.


정원에서 일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던 나는, 길고 거추장스러운 스커트에 불만이 컸다. 그리고 더 이상 이 족쇄를 참지 말아야 한다는 결정에 이르렀다.


왼쪽 사진은 1852년의 엘리자베스의 모습. 최초의 바지 외출복을 입은 여성으로 기록되고 있다. (출처: loc.gov)



당돌한 여성들의 바지, 블루머

엘리자베스 스미스 밀러의 친구이자 이웃인 아멜리아 블루머(Amelia Bloomer)도 새로운 '자유의 옷(freedom dress)' 입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아멜리아 블루머는 여성신문 'The Lily'의 발행인이었고, 언론을 통해 여성들에게 바지가 주는 자유를 알렸다. 바지를 입으면 여성들도 '자전거'라는 당대의 혁신적인 이동수단을 즐길 수 있고, 남성들과 동등하게 활동할 수 있음을 강조하여 많은 여성들로부터 큰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

빅토리아 시대 당돌한 여성들의 바지는 아멜리아 블루머의 이름을 따서 '블루머'라 불렸다. 그리고 블루머는 행동의 자유로부터 인간의 권리를 되찾아갈 수 있다는 믿음 속에 조용히 확산되었다.


그러나 그 시절, 세상은 바지 입는 여자들에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블루머 착용을 포함해 남성들의 영역이었던 흡연, 음주와 같은 것을 탐하는 소위 '여성들의 일탈 행동'을 블루머리즘(Bloomerism)으로 지칭했다.

남자처럼 바지를 입고 외출하는 여성들은 조롱과 비판의 대상이었다. 블루머를 입고 거리를 걷는 여성들은 남자들의 고함소리, 구경거리처럼 따라다니며 비아냥대는 소년들, 감히 무례하게 바지를 입는다는 비판적 여론에 직면했다. 메리 리버모어(Mary Livermore)라는  여성 운동가는 블루머의 착용을 '매일 십자가에 못 박히는 심정'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런 당돌한 여자의 가족들 또한 다양한 압박을 겪어야 했다. 블루머를 입는 아내나 딸을 둔 정치인은 반대 이념에 부딪혀 불이익을 당했다.

그리하여 블루머는 미국의 급진적 여성 운동가들의 짧은 해프닝처럼 십여 년 만에 사라졌다.


'블루머리즘'은 타락한 여자들의 일탈 행위로 묘사되었다. 1851년 영국 주간지 Punch의 풍자화 (출처: digitalcollections.nypl.org)


몸 움직일 자유

당돌한 여자들의 블루머는 이내 사라졌지만, 19세기 말 세계적으로 보급된 자전거의 인기에 힘입어 여성복은 보다 편하고 합리적인 개량으로 자연스럽게 이행되었다. 그리고 블루머가 부활했다. 자전거 타기라는 취미가 거추장스러운 복식 형태를 도태시킨 것이다.

미국의 교육자 프랜시스 윌라드(Frances Elizabeth Caroline Willard)는 자전거를 일컬어 '지금껏 이 행성에서 고안된 이동수단 중 놀랍도록 기발하고 고무적인 것'이라고 말하며 53세의 나이에 자전거 타기를 배웠다. 프랜시스는 자전거 조종하기를 이렇게 인생에 비유했다.


자전거와 같은 짐승을 완벽하게 조종하는 것에 성공한 여성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인생을 통달할 수 있다.



1897년경 블루머를 착용한 프랑스 사이클 선수 마리 튀알(Marie Tual)의 모습 (출처: wikimedia.org 퍼블릭 도메인)


자전거, 불경한 여자들의 취미

자전거는 건전한 야외활동임에 분명했지만, 사회적 시선은 자전거 타는 여자들을 여전히 불편하게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자전거를 탈 때 다리를 벌려 앉는 자세를 정숙하지 못하다고 손가락질하고, 일부 의사들은 자전거 안장이 불임을 초래한다고 잘못된 지식을 기반으로 불필요한 걱정을 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가진 특권을 나누기 싫어하는 남성들은 자전거 탄 여성, 즉 바지 입는 여자들을 해로운 존재로 생각했다. 1897년 캐임브리지 대학에서 여성의 학위 취득을 격렬히 반대하던 남학생들의 시위 사진을 보면, 이들이 '바지 입는 여자'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캐임브리지 대학은 여러 개의 컬리지로 구성되어있었다. 비록 남자보다 상대적으로 매우 늦게 허용되었지만 여자들은 남학생과 동등하게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그러나 학위만은 취득할 수 없었다. 마지막 보루인 학위를 여성에게 수여하지 않음으로써, 정식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1897년 여자들에게 학위를 줄 것인가라는 대학의 전체 투표를 앞두고, 수많은 남학생들은 반발했다. 바지를 입은 채 자전거 타는 인형의 목을 매달아 교수형에 처하는 방식으로, 여자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며 거리 시위를 벌였다.


1897년 바지 입은 여자 인형을 교수형에 처하는 퍼포먼스로 여자들의 학위 수여를 반대하는 케임브리지의 시위대 (출처: bbc.com Ⓒ getty images)

 

캐임브리지의 1897년 투표는 부결되었고, 1921년에도 한차례 더 부결되었다. 남자보다 지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간주되었던 여자가, 감히 남자와 같은 학위를 갖는다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쉽게 용납되지 않았다. 바지 입은 여자 인형이 교수형에 처해진 그 해로부터 50여 년이 지나서야, 여자들은 캐임브리지의 구성원으로서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인 캐임브리지 대학에서조차 불과 백여 년 전까지 이런 일들이 있었다니. 놀랄만한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전혀 놀랍지도 않다. 많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 층이 타인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것을 극렬히, 게다가 상스럽게 반대하는 웃긴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수 없이 반복되고 있으니까.


캐임브리지의 남학생들이 반대했던 것은 여학생들에게 부여되는 학위 자체가 아니다. 여자들에게 동등하게 부여된 기회가 가져올 남녀의 경쟁,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들의 특권이 침해될까 봐 두려웠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대 일부 의사들이 걱정했던 것은 자전거 타는 여자들의 생식능력 저하가 아니다. 집안에서 고분고분하게 엄마로서 주부로서 기능해야 마땅한 여자들이 활동 반경을 넓혀 나아가 가부장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물리적 제약은 정신적 자율성을 제한한다.

과거에 인간은 사회 통념 때문에 옷 속에 갇혀 살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문화와 종교의 영향으로 옷 입을 자유가 불충분한 사회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외 대부분의 현대인은 내 의지에 따라 옷을 입고, 활동하고, 나를 표현할 수 있다.

빌리 아일리시가 했던 말처럼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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