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성과 심미성 사이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나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바지 클럽'을 만들었다.
피아노 학원과 걸스카우트에서 만나 친해진 우리 네 명은, 반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함께 만나서 놀 명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바지 클럽이라는 이름은 나의 아이디어였지만,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바지만 입기를 고집하는 아이들은 아니었다. 어떤 날은 밑단이 넓은 스커트와 리본 장식, 레이스 달린 양말을 신기도 했고, 순정만화를 좋아하는 또래 여자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우리 네 명은 내 방에 모여 정식으로 '바지 클럽'의 발대식을 갖었다. 포도주스를 나눠 마시며 '여자들의 영원한 우정을 지키자'며 피의 맹세를 했다. 어디 가서 재현하기 매우 부끄럽지만, 우리 모임의 단가도 있었고, 구호도 있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종종 통화하고 만나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친구로 지내고 있으니, 발대식의 염원대로 영원한 우정으로 이어질 것 같다.)
아무튼 바지 클럽의 멤버였던 우리 넷은, 뭔가 분주히 활동하기를 갈망하고 호기심이 많은 여자 아이들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를 암호명으로 불렀고, 매일 같이 만나 놀면서도 팬시한 편지지에 정성스러운 글을 써서 자주 주고받았다. 그리고 어느 해 겨울엔 각자 역할을 분담해 매거진을 만들었다. 단 일회성에 그쳤지만 말이다. 나의 암호명은 갤럭시(Galaxy). 매거진에서 나는 카툰 그리기와 옷 입기에 대한 그림과 글을 쓰는 것을 담당했다. 우리는 20년 뒤 모습으로 드레스코드를 정하고 분식집에서 만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라디오 방송 흉내를 내며 디제이와 게스트 역할을 분담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하고, 입원 중이신 친구 어머니에게 위로차 가져다 드리기도 했다.
우리의 공통점은 모두 각자의 형제 중 막내라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기대감 측면에서는 손위 형제보다는 부담이 덜 했고, 중산층 이상의 가정이어서 부모님으로부터 넉넉히 용돈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용돈으로 함께 수영장, 스케이트장을 참 많이 쏘다니며 놀았고, 여의도 광장에 자전거를 타러 가기도 했다. 학급에서는 반장 또는 부반장을 맡거나, 인기투표든 시험이든 경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었다.
어느 날 고등학생이었던 언니가 나의 바지 클럽에 대해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너네 뭐냐? 너네 페미니스트야? 왜 이름이 바지 클럽인데?'
나는 페미니스트가 뭔지도 모르는 어린이였고, 그냥 가져다 붙인 이름이었다. 바지가 좋아서.
실용성과 심미성 사이
1851년, 자전거라는 혁명적 이동수단을 즐기고 활동 반경을 넓히려던 여성들이 블루머라는 바지를 처음 입기 시작한 이래로, 여자들의 바지가 거리에서 용인되기까지는 10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전면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성들은 바지를 입기도 했다. 탄광, 군수품 공장 등 노동 강도가 높은 일터에서 남자들을 도와 허드렛일을 하는 노동 계층의 여성들은 바지를 입었다. 또한 19세기 상류층 여성들은 휴양지와 같은 격리된 공간에서 바지 차림으로 스포츠를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일상에서, 직장에서, 또는 잘 차려입어야 하는 공적 공간에서 대부분의 여성은 오랫동안 바지가 아닌 치마를 선택했다. 즉, 여성들의 바지는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의 활동성을 위한, 철저히 실용적 목적의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그럼 여자들은 언제부터 바지를 즐겨 입게 되었을까?
사회학자 다이애너 크래인(Diana Crane)은 195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여성들의 바지 착용이 일상 속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 바지 입은 여성들의 노동력이 사회에 일조를 한 이후에야 '바지 입은 여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차츰 없어졌다.
일례로 1956년 영화 '사브리나(Sabrina)'에 오드리 헵번이 입고 등장했던 지방시(Givenchy)의 발목이 드러나는 타이트한 바지는 '사브리나 팬츠'로 불리며 대중에게 크게 유행했고, 당시 패션 매거진에도 자주 등장한다.
바지는 남자의 전유물인가
여자가 바지를 입으면 잡아가기라도 했나?
놀랍지만 사실이다. 1938년 미국 L.A. 에서는 한 여성이 바지 차림으로 법원에 증인으로 나섰다가 구속되었다. 유치원 교사인 헬렌 헐릭(Helen Hulick)은 강도 용의자에 대한 증언을 하기 위해 법원에 갔다. 당시 판사는 그녀의 바지 차림 때문에 집중을 할 수 없다며, 드레스로 갈아입고 법원에 다시 출석하기를 명령했다.
나는 드레스를 입으라는 명령을 거부하겠습니다. 나는 바지 차림으로 돌아올 것이고 판사가 나를 감옥에 가둔다면, 그것이 여성들을 '바지-반대 주의(anti-slackism)'로부터 해방시키는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헬렌 헐릭은 5일 뒤 다시 바지 차림으로 법원에 출석했다. 판사는 법의 질서와 집행을 방해한다고 격노했고, 헬렌 헐릭은 법정모독죄로 구속되었다.
패션의 도시 프랑스 파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파리에서는 1800년부터 여성의 '바지 착용 금지법'이 시행되었다. 1892년에는 승마할 때 여성의 바지 착용을 허용하고, 1909년에는 자전거를 탈 때에만 여성의 바지 착용을 허용하는 등 조금씩 개정을 거쳐 완화했다. 그러나 경찰의 허가 없이 바지 입은 여자는 체포대상이었다. 20세기에 서서히 법이 사문화(死文化)되어 유명무실 해지만, 관련 조항이 완전히 공식 폐기된 것은 2013년이다.
여자가 바지를 입으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차별법은 '바지는 남성들의 영역'이라 여기는 오랜 인식에서 발생했다. 그렇다면 치마 입는 남자는 처벌을 받았을까? 눈치챘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유니폼이 지정된 상황에서 바지를 공식 복장으로 규정하거나, 직장에서 반바지 착용을 금지하는 사례는 종종 있다. 그러나 남성이 치마를 입으면 안 된다는 규정은 찾기 힘들다. 근세 이후 서구사회에서 남자가 치마를 입는다면 때때로 곱지 않은 시선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었겠지만, 법적인 제재는 거의 없었다. 치마, 즉 허리를 천으로 둘러 입는 옷은 인류 최초의 의복 형태로 '옷의 원형'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바지가 등장하기 이전에 치마가 있었고, 치마는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여자들의 턱시도 슈트, 르 스모킹
1960년대 이르러, 베이비 붐 세대가 문화를 주도함으로써 젊고 역동적인 분위기 속에 사회적 약자 및 소수를 위한 움직임들이 생겨났다. 성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폭넓은 담론이 형성되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제2세대 페미니즘의 물결이 거세졌다.
그럼 이제 여성복에 바지가 대세가 되었을까?
이 시기에 여성을 위한 바지 패션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공적 영역 혹은 가장 돋보여야 하는 순간에 갖춰 입는 옷차림은 여전히 치마였다. 바지는 남자들의 영역이라고 여기는 오랜 관습 탓이었다.
이러한 관습에 의문을 제기한 하이패션 디자이너는 당대 가장 주목받던 젊은 쿠튀리에(Couturier) 입 생 로랑(Yve Saint Laurent)이었다. 입 생 로랑은 1966년, 남자들의 턱시도를 연상시키는 여성의 이브닝 웨어 르 스모킹(Le Smoking)*을 발표해 논란을 일으켰다. 르 스모킹은 프랑스어로 턱시도를 뜻하는데, 세련되고 정교하게 재단된 여성용 바지 정장은 '바지가 여성의 매력을 감소시킨다'는 통념을 깨기에 충분했다. 르 스모킹은 우아하고 동시에 파워풀한 여성의 이미지를 재건했다.
입 생 로랑 이전에도 여성을 위한 바지 스타일을 제안한 디자이너들은 종종 있었다. 이를테면 샤넬은 1920-30년대 상류 계급을 위한 여성들을 위해 바지 스타일을 선보이고, 자신도 바지를 즐겨 입었지만 대중화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당시 트렌드 리더인 여성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가슴을 밋밋하게, 허리를 일자로 표현하는 실루엣을 선호했다. 즉 여성의 몸을 남성화하는 방향으로써 새로운 패션 스타일을 추구했는데, 이러한 흐름에 일반 대중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샤넬의 바지도 당대 정서상으로는 여성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것이었다. (마치 소년과 같은 신체 실루엣을 표현하여 '가르손느 La Garçonne' 스타일이라고 한다.)
입 생 로랑의 르 스모킹이 패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르 스모킹은 미성숙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아닌,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매력이 넘치는 여성을 표현한다. 그리고 르 스모킹을 입은 여성은 자신감 넘치며 당당하다. 입 생 로랑은 바지를 입은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후 입 생 로랑은 컬렉션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러한 스타일을 제안했고, 바지 슈트는 점차 스커트와 드레스를 대체하게 되었다.
프로는 바지를 입는다?
우리는 현재 바지든 치마든 제 뜻대로 옷 입을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입 생 로랑의 르 스모킹이 물꼬를 튼 이후로, 여성들은 캐주얼한 차림이든 오피셜 한 차림이든 바지를 즐겨 입고 있다. 어떤 옷차림을 선택했느냐가 나의 성 정체성을 흔들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정말 매 순간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있는 걸까. 가슴에 손을 얹어본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어느 시점 이후로 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치마를 거의 입지 않는다.
내 종아리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드러내고 싶지 않은 탓도 있고, 바지가 더 편한 이유도 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전문성을 드러내야 할 때는 치마보다 팬츠 차림에 더 손이 간다. 회사에서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던가, 중요한 미팅을 할 때. 그에 반해 치마를 선택하는 순간은 주로 한 여름 집 근처에서 반려견을 산책시킬 때, 집에서 편하게 쉬고 있을 때, 마트에 장 보러 갈 때이다.
돌고 돌아서, 나는 '바지 입는 여자'에 대한 또 다른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내 의식 깊숙한 곳에 100년 전, 200년 전 사람들이 그랬듯이 어떤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의심해본다. 바지는 바깥일 하는 사람들의 영역이라는 전 근대적인 생각 말이다. 그래서 나의 전문성을 제대로 어필하려면, 수동적으로 보이지 않으려면, 남자들에게 밀리지 않고 제대로 평가받고 사회생활하려면 팬츠 슈트가 더 적합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르 스모킹(Le Smoking) :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울 때 담배냄새가 옷에 배지 않도록 입던 남자들의 디너 재킷을 일컫는다. 영어 단어 스모킹에 프랑스어의 남성형 관사가 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