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치코트, 피코트, 보머 재킷 이야기
2022년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했을 때, 나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21세기에 이런 비이성적인 일이 벌어진다는 것에 놀라웠고, 많은 민간인이 희생당하는 비극이 벌어져도 나토 및 국제사회가 보여주는 애매한 태도에 다시 한번 놀랐다. 신의 따위는 비둘기에게나 던져 버리고, 눈앞의 이익을 좇아 말을 바꾸는 국제 정치란 것에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타인의 비극을 스펙터클로 소비하며 방관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인 것인가. 무척 절망스러웠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올리브 그린 티셔츠 화제, 올 가을 밀리터리 패션 유행 예감!
아. 제발!! 이런 경박한 뉴스 헤드라인은 안 나왔으면 했는데, 주요 미디어의 패션 파트는 여지없이 또 가볍기 이를 데 없는 태도를 보였다. 패션 뉴스의 전체 내용이 전쟁을 옹호하거나 희화화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럴지라도 누군가의 희생과 고통을 상업과 연결해 가볍게 다루는 것이 윤리적이지 않다는 생각에, 나는 무척 실망했다. '도대체 왜 패션 바닥은 이런 걸까' 속상한 마음을 친한 업계 친구에게 토로했더니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1.2차 세계대전 때 군복에서 나온 밀리터리 트렌드 자주 써먹잖아. 그렇다고 당대 사람들의 희생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죄책감이라도 가져야 하나? 패션은 그냥 패션이야. 어렵고 심각하면 소비자가 싫어해."
인류에게 전쟁은 일상이었다.
문명사학자이자 윌 듀런트(Will Durant)에 따르면 유구한 인류의 역사 중 전쟁이 없던 해는 7.8%에 불과하다. 인류는 일주일 중 13시간만 쉬고 밤낮없이 계속 전쟁을 치른 셈이다.
인류는 생태적으로, 야생에서 살아남기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다른 동물보다 성장 속도가 느리고,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 같은 타고난 무기도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지능이 좀 높아서, 도구 제작을 통해 생존을 이어갔다.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종을 살상하던 인류는,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갖기 위해 무리 지어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높은 지능을 이용해 전쟁에 온갖 구실을 갖다 붙여 합리화하고 사람들을 선동한다.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더 약은 무리는 전쟁을 이용해 이익을 취한다. 공포심을 자극해 주종관계를 만들고, 무기를 팔고, 영웅담을 판다. 전쟁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사람들은 전쟁의 서사와 스펙터클을 소비하고, 전쟁이 빈번한 시기라면 군에 대해 큰 관심을 갖는다. 민족과 국가를 위해 몸 바쳐 싸운 용맹한 전쟁 용사들의 제복은 근사해 보일 뿐만 아니라, 전투복은 옷은 당대 기능과 효율 측면에서 최신의 기술을 반영한다. 때문에 많은 군복 아이템들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일반인에게 유행처럼 번진다. 편하고 멋지니까!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베레모, 카디건, 트렌치코트, 더플코트, 보머 재킷, 야상 재킷, 세일러 복, 피코트 등 수많은 패션 아이템이 군복에서 유래되었다.
육군, 트렌치코트
트렌치코트는 영국군의 레인코트였던 타이로켄(Tielocken)이라는 상품이 그 원형이다. 토마스 버버리(Thomas Burberry)가 설립한 버버리 사는 단추 없이 허리끈으로 여미는 타이로켄을 영국 장교의 외투로 제작했다. 타이로켄에 단추 여밈, 소매 조임 끈, 그리고 전투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장식을 추가하여 우리가 익숙 모양새를 갖추어갔다. 버버리는 방수성과 통풍성이 좋은 튼튼한 개버딘 소재(garbadine)로 레인코트를 제작해 1차 세계대전에 영국 육군에 정식으로 납품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은 지독한 참호전이 길게 이어졌고, 영국군들의 레인코트는 참호(trench)에 적합했기에 트렌치 코트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당시 군인들은 참호 속에서 연일 쏟아지는 적군의 포탄뿐만 아니라 배수가 안 되는 고인 빗물에 몇 달씩 발을 담그고 추위와 싸워야 하는 끔찍한 전투를 이어갔다. 트렌치코트는 이러한 여건을 고려한 제복이다. 어깨에는 계급장을 부착할 수 있는 견장이 있고, 허리 벨트에는 수류탄을 수납할 수 있는 D링이 달려 있다. 또한 어깨에 덧대어진 플랩(flap)은 총을 어깨에 걸치기 편하도록 해서 건 플랩(gun flap)이라 불린다. 소매의 끈은 작업 시 소매를 걷어 고정하거나, 바람이 들지 않게 조이는 역할을 했다.
전쟁 후, 영국군이 비축해 두었던 트렌치코트 재고 물량은 민간에 판매되며 퍼져나갔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트렌치코트는 최신 기능성 소재와 실용적인 디자인이 접목된 군용 레인코트일 뿐이었다. 트렌치코트가 기능성과 실용성 위에 '멋과 낭만'이라는 무드를 덧붙이며 크게 유행하게 된 것은 1942년 제작된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의 흥행 덕분이다. 1930-40년대에 우울한 일상을 달래주던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는 할리우드 영화였는데, 전쟁 속 사랑을 그린 '카사블랑카'가 세계적으로 크게 흥행했다. 당대 최고의 스타 험프리 보가트(Humphrey Bogart)가 트렌치코트를 입고 '당신의 눈에 건배!'라는 대사를 읊조려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사실 영국군만 트렌치코트를 입었던 것은 아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전을 치렀던 프랑스, 벨기에, 독일 등의 군인들도 참호전에 용이한 전투용 외투 또는 레인코트를 입고 싸웠다. 그러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직업군인으로만 이루어진 정규군을 파병한 영국은 독일과의 참호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며 나치의 진격을 막아냈고, 버버리는 트렌치코트의 대명사가 되었다.
해군, 피코트
대부분의 국가에서 전통적으로 해군 수병의 제복은 타 군복보다 더 눈에 띈다. 밝은 색의 상하의, 세일러 칼라와 챙(brim)이 없는 모자, 스트라이프 장식이나 스트라이프 원단 내의 등을 많이 사용한다. 시인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만화 캐릭터인 세일러 맨 뽀빠이(Popeye)의 복장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해군 수병 제복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두툼한 울 원단으로 만든 짧은 겨울 외투 즉 피코트(Peacoat)이다.
3세기 이상 전해져 온, 해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피코트는 갑판을 뜻하는 리퍼(reefer) 코트라 고도한다. 피코트는 장교들이 입던 브리지 코트(bridge coat)와 길이만 다를 뿐 형태가 유사하다. 따라서 하급 간부와 병사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엉덩이 길이로 짧게 변형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피코트의 어원이 어디서 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두 가지 설을 유력하게 본다. 첫 번째는 18세기 네덜란드 해군이 입던 방한 코트의 모직 소재명 '파이(pij)'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두 번째 설은 한쪽면에 기모가 있는 두꺼운 파일럿(pilot) 소재로 만들어, 소재의 앞 글자를 따 P-코트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두 가지 모두 방한용 소재로 만들다는 것은 일치한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 바다 위에서 싸워야 하는 미국과 유럽의 해군들은 19세기부터 피코트를 착용했다. 앞 섶에 두 줄의 단추가 있는 더블브레스트 구조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여밈을 바꿀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유난히 큰 옷 깃도 바람을 막기 위한 것인데, 옷깃을 세우고 꼬임 줄이나 플랩을 단추에 고정할 수 있다.
피코트에는 보통 두 쌍의 포켓이 있는데 가슴 아래 위치한 세로 주머니는 손을 녹이기 위한 머프(muff) 포켓이다. 하단부에 위치한 포켓은 장갑과 소지품을 수납하는 용도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원단을 절약하기 위해 머프 포켓의 위치를 아래쪽으로 이동하고, 하단부 포켓을 삭제하기도 했다.
피코트는 해군 제복이었기에 피코트는 바다를 상징하는 짙은 청색의 모직 원단과 닻의 모양을 새긴 단추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군, 보머 재킷
영화 레옹에서 마틸다가 입고 나왔던 카키 컬러의 그 점퍼. 우리가 흔히 항공 점퍼라고 부르는 보머 재킷(bomber jacket)은 스트리트 캐주얼 룩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폭격기를 조종하는 비행사들이 착용하던 제복인 보머 재킷은 플라이트 재킷(flight Jacket)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에서는 손목과 허릿단을 조여 보다 캐주얼한 형태를 띠면 'jacket'보다는 'jumper'라고 부르는 문화가 있어 항공 점퍼로 통용되고 있다.
보머 재킷은 항공전이 시작된 1차 세계대전부터 입기 시작했다. 당시 전투기는 조종석이 개방된 형태였기에 파일럿의 제복은 방풍과 방한에 초점을 둔 디자인으로 개발되었다. 가죽 소재로 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했고 양모 안감을 덧대어 보온성을 높였다. 손목과 상의 밑단은 밴드로 조인 이유도 바람을 막기 위함이다. 또한 상의 길이는 짧고, 몸통과 소매통은 넉넉하게 하여 조종석에 앉아서 움직이기 편하게 했다.
그러나 보머 재킷의 겉감으로 쓰인 가죽은 바람을 막는 데는 제격이지만 땀이 흡수되지 않고 무겁다는 단점이 있다.
이후 항공기술의 발전으로 전투기의 조종석에 창문이 달리게 되었고, 그에 맞춰 방풍 기능에 치중한 가죽보다 가볍고 따뜻한 소재의 재킷이 필요했다. 1950년대에 이르러 특수 가공된 나일론 겉감에 폴리에스터를 덧대어 일 년 내내 착용할 수 있는 모델이 개발되었고, 현재의 보머 재킷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당시 미 공군에 보머 재킷을 납품하던 알파 인더스트리(Alpha Industries)의 상품번호에서 유래되어 보머 재킷을 MA-1이라 부르기도 한다. 겉감의 색은 짙은 청색으로 시작되었으나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중 위장에 용이하도록 어두운 녹색 계열로 변경되었다. 안감은 밝고 선명한 주황색을 사용해 조난 시 재킷을 뒤집어 구조 요청에 활용하고 있다.
전쟁이 인간의 삶을 바꿔왔듯이, 전투에 이기기 위해 기술과 지혜를 집약했던 군복은 패션에 영향을 미쳐왔다. 전쟁은 수많은 유행 현상을 낳았고, 군복에서 유래한 옷들이 패션 클래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제 패션은 전쟁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많은 패션인들이 전쟁을 멈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발렌시아가, 스텔라 맥카트니 등은 런웨이 퍼포먼스를 통해 우크라이나 지지와 반전 의사를 보여줬다. 알렉산터 맥퀸, 비비안 웨스트우드, 메종 키츠네를 포함해 셀 수 없이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SNS를 통해 반전 입장을 표명했다. 파리와 이탈리아의 패션협회를 비롯한 LVMH, 커링, 샤넬, 에르메스, 리치몬트, 프라다 등 패션 그룹은 우크라이나 국민을 위한 기부에 동참하고 러시아 매장 철수 및 판매중지를 선언했다.
미카 아르가나라즈, 지지 하디드와 같은 유명 모델들도 패션위크를 통한 수익을 우크라이나 단체에 기부하며 동참을 유도했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선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
전쟁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무리는 늘 있지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비극을 멈추려 노력하는 선한 자들도 항상 있다. 패션을 통해서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을 지지하고 실천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