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 패션과 글램 패션
나는 디자인할 때 음악을 듣는다.
둠칫 두둠칫- 머리를 흔들기도 하고 삐걱거리는 팔을 휘젓기도 한다.
남편은 나에게 음악 들으면서 어떻게 집중하느냐고 하지만, 나의 일은 고도의 정밀함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심상을 표현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가능하다.라고 합리화를 해본다.
다시 생각해보면 남편의 의문은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엄마에게 들었던 잔소리와 비슷하다. '아이고~ 라디오 들으면서 공부가 참~ 잘도 되겠다!'. 그때는 엄마 말이 옳았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내가 미적분을 제대로 해냈을 리 없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음악이 몰입을 확실히 돕는다.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증폭시키면서 어떤 분위속으로 깊숙이 끌어들인다. 우리가 헨델의 '나를 울게 하소서'의 가사 의미를 알아듣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듯.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음악이 가진 정서에 공감하면서, 흥이 나기도 하고 전율하거나 울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음악의 힘은 강력하다. 소리 자극은 매우 직접적으로 감각기관을 자극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음악은 다른 어떤 문화 장르보다 매우 강렬하고 인상적인 경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음악을 좋아한다.
패션 하는 사람들도 음악을 좋아한다. 내가 경험한 모든 디자인실에는 항상 음악이 흘렀다.
패션 디자이너는 음악에서 받은 영감을 디자인으로 풀거나, 자신의 디자인 의도를 음악 형식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표현하고 싶은 톤 앤 매너를 보충하려 할 때는 음악이 더없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디올 옴므와 생 로랑을 거쳐 지금은 셀린느를 이끄는 스타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은 록 뮤직을 사랑하는 대표적인 디자이너다. 에디 슬리먼은 록 뮤직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컬렉션을 꽤 자주 선보이고, 뮤지션을 런웨이 모델로 캐스팅하거나 음악으로 콘셉트를 설명한다.
또한 메종 키츠네(Maison Kitsune)는 음반 레이블로 시작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패션으로 확장한 경우고, 칸예 웨스트(Kanye West)나 퍼렐 윌리암스(Pharrell Williams)처럼 자신의 패션 브랜드를 론칭해 창작에 대한 욕구를 확장하는 뮤지션이 많다.
정서를 표현하고 공유하려는 문화 장르 중 음악과 패션은 다른 어떤 것들보다 서로 유착되어 있다. 그래서 음악은 패션을 유발하고 패션은 음악을 표현해왔다. 특히 강렬하고 독특한 메시지가 있는 음악일수록 패션의 힘을 힘을 빌어 스타일을 완성한다. 기존의 진부하고 상업적인 관행을 깨부수려는 급진적인 음악인 펑크와 글램이 그 예이다.
펑크 록과 펑크 패션
펑크는 펑크 록을 중심으로 전개된 청년 하위문화로서 1970년대에 시작되었다. 기존의 주류 상업 문화와 규범화된 록 음악에 대한 반발로 발생한 펑크록은 거칠고 단순한 사운드와 냉소적인 가사가 특징이었다.
펑크록 밴드가 외치던 'Do it yourself'의 아마추어 정신, 그리고 'No Future'의 허무주의적 공격성은 펑크 패션에도 고스란히 표현되었다. 찢고 파괴한 티셔츠, 옷에 새겨진 위협적인 문구, 검은 가죽의 바이커 재킷과 금속 스터드 장식, 요란한 헤어스타일. 우리가 펑크를 얘기할 때 연상작용처럼 따라붙는 패션 스타일의 전형이다.
이러한 펑크 패션의 기호를 만들어가며 대중에게 각인시킨 디자이너는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 Westwood)이다.
1970년대 초,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연인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은 런던에서 함께 부띠끄를 운영했다. 두 사람은 의상을 리폼하거나 제작해 판매했고, 펑크록 신의 첫 번째 그룹 중 하나인 뉴욕 돌즈의 무대 의상을 만들기도 했다. 부띠끄의 이름은 'Let it Rock'으로 시작해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를 거쳐 'SEX'로 정착했다.
이 들은 자신의 매장에 드나들던 단골 고객들과 음악 이미지에 맞는 멤버를 발굴하고 조합하여 펑크 밴드를 탄생시켰다. 펑크의 대중화에 공헌한 이 밴드의 이름은 섹시한 젊은 암살자를 뜻하는 '섹스 피스톨즈(The Sex Pistols)'이다.
말콤과 나는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것에 펑크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는 패션 디자이너라기보다 옷을 입는 방식으로 부패한 현상에 맞서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말콤 맥라렌은 섹스 피스톨즈를 스타일링하고 매니징 하면서 펑크 문화를 확산시켰다. 섹스 피스톨즈는 품격 있는 어른들과 완전히 차별된 파격적인 패션과 태도를 취했다. 제멋대로 찢고 파괴한 혐오스러운 의상을 입고, 무대 위에서 침을 뱉거나 욕설은 기본이며 먹은 음식을 토하기까지 했다. 제도권을 향한 적개심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상상 밖의 해프닝을 통해 허무주의와 무정부주의를 극적으로 표현했다.
펑크 문화가 영국을 중심으로 확산된 것은 당시 영국의 경제 상황 때문이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로 좌절을 느끼던 젊은 세대들의 정서는 펑크의 '허무와 절망' 그 자체였다.
청년 하위문화는 기존의 주류 문화로부터 거리를 둔 집단에서 발생해 제도권에 대항하거나 고유한 정체성을 추구한다. 그리고 청년 하위문화는 시대상이 변모하고 세대가 바뀌면 대개 소멸된다. 또는 점차 영향력을 넓어져 주류로 편입되어 더 이상 하위문화로 불리지 않게 된다. 펑크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펑크는 코어를 감싸고 있는 표현방식만 시대 흐름에 맞게 변화하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펑크 패션은 하이패션을 포함해 폭넓은 영역에서 이어지고 있다.
하이패션에서 펑크가 이어진다는 것이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이다. 펑크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의 옷장 속에 녹아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패션 큐레이터 앤드류 볼튼(Andrew Bolton)은 펑크와 하이패션이 미적인 지향점은 다르지만 둘 다 수작업을 통해 나에게 맞는 하나뿐인 옷을 만든다는 점이 같다고 말했다. 매우 흥미로운 지적이다. 태생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패션계에서 펑크처럼 찢고 파괴하는 것은 무척 매력적인 표현 방식이다. 그래서 패션 디자이너들은 젊음과 반항, 거친 에너지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펑크를 차용한다.
글램 패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글램패션은 글램 록에서 파생되었다. 글램 록은 1970년대 초반 영국과 미국에서 유행한 록 음악의 한 장르인데, 당시 글램 록 뮤지션들은 매우 화려한 퍼포먼스와 독특한 비주얼을 보여주었다. 언론은 이들의 매력 넘치는 스타일을 글래머러스(glamorous)라고 표현했고, 글램(glam)은 이들이 대변하는 장르가 되었다.
글램의 어원은 아이슬란드 신화와 스코틀랜드 고어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달의 정령(elf)을 가리켰다. 그래서 조금은 비 일상적일지라도, 신비로운 아름다움으로 유혹하는 것을 '글래머러스'라고 표현했다.
잘 알 수 없는 것, 경계가 불분명한 것, 극단의 특징들이 한데 어우러진 혼종적인 것은 묘한 매력이 있다.
마치 엘프가 인간 세계와 신의 세계 그 사이 어딘가에 있듯이, 글램 록과 글램 패션도 어떤 경계를 가로지르는 매력이 있다.
글램 록은 저항 문화로서의 록 음악이 주류로 편입되어 '정통 록'이라는 평가를 받는 모순에 대항하려는 움직임이었다. 로큰롤, 하드록, 아트록, 신스팝을 결합한 형태로 고착화된 록 음악으로부터 거리를 둔 글램 록은 고유의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획일적 문화, 엘리트주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 정신은 글램 록 스타들의 패션 스타일에도 반영되었다. 이들은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하이힐과 진한 화장, 반짝이는 화려한 의상 등으로 성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글램 록 대표적인 스타일 아이콘은 데이비드 보위이다.
데이비드 보위 이외에도 티렉스(T-Rex), 뉴욕 돌스(New York Dolls), 록시 뮤직(Roxy Music) 등이 1970년대의 글램 록을 꽃피웠으며 퀸(Queen)과 엘튼 존(Elton John)의 패션 스타일을 글램으로 보기도 한다. 고착화된 규범과 전형에 반발하던 그들의 음악적 카테고리를 구분하고 줄 세우는 것 또한 모순일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현재의 글램패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데이비드 보위라 할 수 있다.
데이비드 보위는 패션을 통해 음악에 서사를 부여하는 사람이었다.
1972년 발표한 앨범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는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그는 음악적 콘셉트를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페르소나와 세계관을 창조하고 스타일링을 했다.
데이비드 보위가 연기하는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라는 캐릭터는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우주에서 왔다. 지기는 성(sex)이 분화되지 않은 모호한 존재이며, 음악을 들려주는 주체이자 모든 서사의 주인공이다.
음악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던 데이비드 보위의 모든 방식은 대중에게 매우 낯설었다.
그는 드레스를 입음으로써 진지한 형식주의와 전통적 남성 이미지를 뒤집고, 과장된 장식과 인위적인 메이크업을 통해 부르주아적 고급문화를 비틀었다. 데이비드 보위는 음악과 스타일로 고급 정통 문화/상업 대중문화, 남성/여성, 중심/주변으로 나뉘는 이분법적 사고를 마구 해체하고 패러디한 셈이다.
우리는 때로 알 수 없는 것에 강하게 이끌린다.
글램 패션은 낯설고 모호하지만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데이비드 보위는 패션계에 큰 영감을 주었고, 패션 디자이너들은 데카당스 한 무드를 표현할 때 종종 글램 스타일을 빌려온다. 음악으로서의 글램 록은 강렬히 등장했다가 불꽃처럼 이내 사라졌지만, 패션 스타일로서의 글램은 지속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지난 2016년 데이비드 보위가 사망했을 때, 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그를 추모하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패션이 열렬히 사랑했던, 자기 별로 돌아간 뮤지션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로큰롤이 더 이상 저항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 것에 반발해 등장한 펑크와 글램은 저항에 대한 저항, 대안에 대한 대안이었다. 펑크 록과 글램 록의 메시지는 퍼포먼스와 스타일링을 통해 더욱 강렬하게 전해졌다. 펑크가 자기 파괴의 직설적 방식으로 부조리한 사회를 고발한다면, 글램은 퇴폐적인 패러디 형식으로 사회 통념을 흔든다. 패션은 음악의 저항 정신을 공유하며 시간을 뛰어넘는 문화적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래서 펑크 패션과 글램 패션은 일시적 유행이나 단순한 태도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미학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