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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Aug 11. 2022

파랑 연대기 (1)

우리 모두가 사랑한 블루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파란색을 참 좋아한다.

시원하고 청량한 파랑, 고요하고 평화로운 파랑, 젊은 에너지의 파랑, 깊고 조용한 파랑, 낭만적이고 우수에 찬 파랑. 풍부한 스펙트럼을 지닌 파란색은 그만큼 다양한 뉘앙스를 풍긴다.

파란색을 고르면 대개 실패가 없다.


파란색은 무척 믿음직스럽고 인간의 마음에 긍정적인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때문에 많은 기관이나 단체에서 상징색으로 사용하고 있고, 유럽연합(EU)이나 국제연합(UN) 등의 국제기구는 화합과 평화의 상징으로 파랑을 내세운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럽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파란색이다. 쿠베르탱이 창안한 올림픽 오륜기(Olympic rings) 중에서 유럽 대륙을 파란색으로 표현한 것도 이러한 취향이 작용했다. 오륜기는 철저하게 유럽인 관점으로 대륙의 상징색을 정했다. 아프리카는 검정, 아시아는 노랑, 아메리카 대륙은 붉은 피부의 원주민을 상징하는 빨강으로 인종차별적 시각이 들어있다. 유럽 대륙은 깃발의 바탕색으로 쓰일 흰색을 제외하고 가장 선호하는 파랑, 오세아니아는 기본색 중 남아있는 초록을 적용했다. 오륜기가 편견과 차별의 요소가 있다는 논란이 발생하자, IOC는 색상으로 특정 대륙을 상징하던 해석을 공식적으로 폐기했다. 그리곤 세계 모든 국기에 보편적으로 쓰이는 국기 색의 조합일 뿐이라는 정의를 대신 내놓았다.

어쨌든 파란색은 오늘날 지구촌 어디에서나 환영받고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고대 유럽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야만에서 신성으로

고대부터 한자 문화권에서는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의 다섯 가지 색으로 음양오행을 설명하며 색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했다. 오방색(五方色)중 청색으로 상징되는 사신은 동쪽의 청룡이다. 청색은 사계절 중에서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해당하여 생명의 탄생과 약동하는 힘을 의미한다.


그에 비해 고대 서구에서는 파란색이 오랫동안 그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고대인들에게 파란색은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색이지만 만들기 복잡하고 어려운 색이었다. 또한 파란색은 경치 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지고, 자신을 드러내 주목을 받지 못하는 온건한 색이다. 그래서 다른 색상들이 사회적 상징을 획득하며 가치를 만들어갈 때 파란색은 상대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 중요치 않은 것, 심지어는 미개한 이방인의 색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스인에게 파란색은 다른 색을 눈에 띄게 하는 배경색에 불과했고, 로마인들은 파란색을 켈트족이나 게르만족 등 이방인의 야만적인 색이라 여기며 경시했다.


유럽 사회에서 파란색이 가치를 획득한 것은 12세기 무렵이다.

기독교 미술에서 성모 마리아의 의상이 파란색으로 표현되어 파랑은 믿음직스럽고 성스러운 색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마리아의 의상은 자색, 황금색, 흰색, 빨간색 등으로 전형이 없이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어째서 12세기에 이르러, 파란색이 마리아를 상징하며 귀한 대접을 받게 된 것인지 그 이유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명확한 사실은 인간은 희소가치가 있는 것에 고귀한 의미를 부여한다. 중세 예술가들은 빛의 신, 하늘에 계신 분 등을 표현하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성모 마리아 의상을 파란색으로 장식했고, 파란색의 인기는 높아졌다. 그리고 이러한 신성함은 페르시아에서 채취한 값비싼 광석에서 얻은 코발트블루(Cobalt blue)와 울트라 마린(Ultramarine)으로 채웠다.


울트라 마린으로 채색된 성모 마리아의 의상. 왼쪽부터 14C, 15C, 17C (퍼블릭 도메인)




바다 저편의 블루

코발트라는 광물에서 얻은 코발트블루는 유리와 도자기에 파란색을 내기 위해 주로 쓰였고, 이슬람 모스크의 타일 장식에 하늘을 상징하는 색으로 쓰였다. 코발트는 페르시아 광산으로부터 유럽으로 전파되어 중세 건축물의 스테인드 글라스에 사용되었다. 특히 12~13세기에 건축된 프랑스의 샤르트르 대성당(Notre Dame De Chartres)은 아름답고 정교한 스테인드 글라스로 유명한데, 눈부시게 맑고 푸른 색채는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독특하여 '샤르트르 블루(le bleu de Chartres)'라고 부른다. 이 샤르트르 블루가 바로 코발트를 원료로 배합된 색이다.


페르시아에서 건너온 또 다른 파란색 울트라 마린의 값은 매우 비쌌다. 코발트도 다른 안료에 비해서 귀한 것이었지만, 청금석(靑金石, Lapis lazuli)이라는 준보석에서 추출한 울트라 마린(Ultramarine)은 금을 제외하고 가장 비싼 안료였다. 그리하여 울트라 마린은 성모 마리아와 같은 성스럽고 고귀한 대상을 표현하는 미술 재료로 쓰였고, 광물성 안료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색되지 않는 아름다운 광채를 뿜어낸다.


울트라 마린(Ultramarine)의 이름은 바다의 색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바다 저편에'를 뜻한다. 유럽인들 기준으로 생각하자면 청금석은 바다 건너 멀리서 온 귀한 것이다. 청금석은 칠레, 잠비아, 시베리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만 채취되는데 그중 아프가니스탄 광산에서 나온 것을 최상품으로 친다.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코발트를 원료로 한 '샤르트르 블루'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퍼블릭 도메인)




신의 이름으로

최상급의 울트라 마린 산지답게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bamiyaan) 지역에는 울트라 마린을 사용한 최초의 유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거대한 두 개의 석가모니 조각상이었다.

불교가 중앙아시아에 전파된 6-7세기경 만들어진 이 바미얀 석불은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양식이 나타나는데, 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섬세한 주름옷의 안쪽을 모두 울트라 마린으로 채색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옷의 안쪽이라고 해도 석상의 크기가 38m, 55m로 거대하기 때문에 그 면적은 상당히 넓다. 바미얀은 채금석 산지이기에 바다 건너 구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쉽게 얻을 수 있었지만, 그곳에서도 청금석은 여전히 귀한 준보석이었다. 당대 불교인들 역시 값비싼 울트라 마린을 다량으로 사용함으로써 불심을 표현한 것이다. 유럽인들이 울트라 마린을 마리아에게 헌정했듯이.


애석하게도 최초의 울트라 마린이 사용된 조형 예술을 더 이상 연구할 수도, 확인할 수도 없다. 아프가니스탄에 집권한 탈레반은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01년 석상을 모두 폭파했다. 불경한 석불이 이슬람을 모독한다는 이유였다.

극단적 성향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그것이 다른 어떤 종교의 예술작품이었다 해도 이슬람이 아니라면 파괴했지도 모른다. 파란색으로 표현되는 힌두의 크리슈나(Krishna)였어도 불행을 피하지 못했을 수 있고, 파란 옷을 입은 기독교의 성모 마리아였으면 더 위험했을 것이다. 이슬람교도들이 종교 이념을 잣대삼아 특정 대상을 신성시하거나 불경시하였지만, 파란색에 대한 가치평가는 여타 종교와 다르지 않았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파란색은 하늘, 거룩함, 경건함 등의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착용하는 부르카(Burka)도 파란색이다.


온몸을 뒤덮는 부르카는 이슬람 베일 의상 중 가장 폐쇄적이다. 부르카를 입은 여성은 눈 부위 망사의 작은 구멍으로 세상을 겨우 내다볼 뿐이다. 바깥세상 사람들은 그 안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고, 부르카를 입은 채로는 몸짓이나 표정을 통한 소통이 어렵다. 부르카의 색상은 황록색, 검은색, 금색, 하얀색 등이 있지만 가장 많이 착용하는 것은 파란색 계통이다. 하늘색은 부르카의 상징과도 같다.

불상이 파괴된 바미얀에서 부르카 자락을 잡고 걷는 이슬람 여성의 사진을 보았다. 그 모습에서 파란 베일을 두른 마리아가 떠오르다니 참 이상한 일이다.


파란 부르카의 이슬람 여인들이 파괴된 고대 불상 유적지를 지나고 있다. 바미얀 불상은 울트라 마린을 사용한 가장 오래된 조형예술이었다. (출처: 911memorial.org)




고귀하거나 겸허하거나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색으로서 신성함을 획득한 블루는 유럽 왕족들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했다. 프랑스의 카페 왕조(Capétiens)는 왕가로서는 처음으로 파란색을 문장에 도입했다. 선명한 파란색에 황금색 백합 문양을 새긴 이 문장은 후에 발루아 가(La maison de Valois), 부르봉 가(Maison de Bourbon) 등 카페 왕가의 거의 모든 분가 문장으로 이어진다. 카페 왕조는 문장뿐만 아니라 의상에도 파란색을 적용했다. 12세기 필리프 2세(Philippe II)와 그의 손자 루이 9세(Louis IX)가 처음 파란색을 공식복으로 입기 시작했고, 이후 파란 옷은 유럽 전역의 왕가로 널리 퍼져갔다.


신성함과 고귀함이라는 가치를 획득한 파란색은 점차 귀족들에게 후광을 만들어 주었다.

하루 종일 들판에서 일하느라 피부가 검게 그을린 사람들은 하얀 피부의 귀족을 동경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귀족들의 창백한 피부로 비쳐보이는 푸르스름한 혈관을 보고 고상한 혈통의 '파란 피'가 흐른다고 생각했다. 귀족들은 고귀함을 드러내고자 파란색의 후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유럽의 귀족들은 '파란 살롱'을 중심으로 모임을 가졌고, 옷과 장신구, 인테리어에도 품격을 더하기 위해 파란색을 애용했다.


파란색은 상류층만의 특권이 아니었다. 중세시대 이후로는 신분에 따른 의복 색의 큰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낮은 신분의 농민들도 파란 옷을 입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질 낮은 원단과 염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어 탁하게 빛바랜 파랑을 착용했다. 새파란 귀족의 옷은 품격을 높이지만, 푸르스름한 농민의 옷은 넉넉지 않은 형편을 보여준다. 파란색은 모든 계층에게 허용되면서 또한 그 미묘한 차이로 계층을 가르는 이중성을 지녔다.


파란색의 다양한 뉘앙스는 사회적 신분의 높고 낮음 뿐만 아니라 도덕적 가치까지 상징을 확장한다.

강렬하고 밝은 파랑은 화려해 보이지만, 깊이 있고 차분한 파랑은 정중해 보인다. 그래서 종교개혁을 지지하던 이들은 겸허하고 엄숙한 파랑을 애호했다. 어두운 파란색은 금욕적이고 도덕적인 프로테스탄트의 색이 되었다.


지체 높으신 분들은 선명한 블루를 사랑하지. 21세기에도 여전히!




염색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는 선명한 색일수록 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술이 평준화되기 이전, 선명한 파란 옷은 고귀한 품격과 덕성을 표현하기에 제격이었다. 파랑은 최고 권위를 상징하며 오랫동안 '왕의 파란색(bleu de roi, bleu de roy)'으로 불렸고, 19세기 말 영국 왕실은 공식 색으로 로열 블루(royal blue)를 채택했다.


그러나 파랑의 모든 가치가 선명함으로만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선명하거나 흐릿하거나 파랑은 요란하지 않다. 파란색은 주변을 밝히며 풍경 속으로 섞여 들어간다. 하늘처럼 바다처럼 끝없이 공간을 확장시키고, 우리의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는 파랑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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