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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Aug 20. 2022

파랑 연대기 (2)

이토록 낭만적인 블루

패션 아이템  계층과 세대를 자유롭게 넘나들기로는 티셔츠와 블루진 만한 것이 없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남성과 여성을 가르지 않고.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오늘날 티셔츠와 블루진은 모든 이들의 일상에 녹아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가 즐기고 사랑하는 티셔츠와 블루진은 보다 민주적이라 할 수도 있다. 남성 속옷과 선원들의 셔츠로 사용되던 저지(jersey)를 패션 소재로 끌어올린 샤넬에게 감사한다.

또한 광부들의 작업복으로 블루진을 고안해낸 리바이 슈트라우스, 그리고 블루진을 대중에게 유행시킨 할리우드 스타 말론 브란도와 제임스 딘에게 경의를 표한다!


왜 하필 블루인 가요?


블루진의 역사와 유행을 설명하던 수업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는 한 학생이 왜 '블루진'은 '블루'인 것이냐고 물었다. 대형 교양 강의의 묘미는 이런 것이다. 온갖 전공의 학생들이 모여 있기에 다양한 관점으로 현상을 바라보려 하고, 가끔 생각지 못한 신선한 질문으로 나를 당혹게 한다.

그때까지 난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다. 광부들의 작업복으로 쓰이던 데님 원단이 왜 유독 블루 염료만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그리하여 부끄럽지만 자세히 공부해서 다음 주에 답하겠노라고 했다.




인디고가 가져온 낭만과 우울

합성염료가 보급되기 이전, 옷감을 염색하기 위한 파란 염료는 청금석과 코발트 같은 광물에서 얻기도 했고 대청이나 쪽 등의 식물에서 얻기도 했다. 순우리말 쪽을 한자로 표현하면 람(), 영어에서는 인디고(indigo)라고 하며 고대 이집트부터 사용되며 알려져 있었다. 인디고의 어원은 '인도에서'라는 의미로 유럽인 기준의 표현이다. 인더스 강 유역에서 재배된 쪽은 일찍이 유럽과 아시아로 퍼져나갔다.

12세기에 이르러, 줄곧 하찮게 여기던 파란색을 사랑하게 된 유럽인들은 대청보다 염색 결과가 좋은 인디고에 반색했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더 질 좋고 값싼 인디고를 얻게 되어, 유럽에서는 점차 다양하고 폭넓은 파란색 옷을 즐겨 입게 되었다.


18세기 낭만주의(Romanticism)는 파란색이 유럽의 산업 전반과 일상으로 폭넓게 퍼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낭만주의 예술가들은 대상을 분석하는 대신 감상과 통찰로 느끼고자 했다. 화가들은 끝없이 펼쳐진 하늘, 깊이를 모르는 바다에 대한 몽상과 이상을 파란색으로 표현했다. 시인들은 멜랑콜리한 파란색을 찬미했고, 음악가는 우수에 찬 영혼의 상태를 연주하며 사람의 감정에 순수하게 다가갔다.


1774년 출간된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많은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해 큰 인기를 끌었다. 소설 속 주인 공 베르테르는 부르주아의 사회 규범에 순응하는 인물이 아니다. 다분히 반항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그는 기혼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급기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죽음을 택했다. 죄악이나 금기로 여겨지던 자살을 괴테는 개인의 자유 의지로 택할 수 있는 표현과 사회 규범에 대한 반항으로 묘사했다. 젊은 독자들은 베르테르의 태도에 열광하며 베르테르 열병(Werther fever)을 앓았다.

소설의 대중적 흥행과 더불어 남성들은 베르테르처럼 노란 조끼에 위에 파란색 프록코트(frock coat)*를 입었고, 여성들은 로테(Chalrotte)처럼 파랑과 하양이 섞인 드레스를 입었다. 이들은 자신이 베르테르와 로테인 양 우울한 감정 속에서 사랑을 갈구하며 고뇌했다.

젊은이들은 베르테르의 비극적 삶과 자신을 동일시해 그의 옷차림을 따라 하고, 급기야 소설의 결말을 모방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가 발생할 정도로 소설의 파급력은 컸다. 책이 출간된 이듬해 독일 일부 지역에서는 베르테르 스타일의 의상을 금지하였으며, 독일을 비롯한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에서는 한 동안 금서가 되었다.


처음 로테와 함께 춤출 때 입었던 수수한 푸른색 연미복을 그만 입기로 결심하기까지는 쉽지 않았다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연미복이 너무 볼품 없어졌네. 사실은 칼라와 소맷부리까지 지난번에 입던 것과 똑같이 새로 연미복을 맞추고, 거기에 곁들여 노란 조끼와 바지도 새로 짓게 하였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에서


왼쪽부터 베르테르 스타일을 입은 괴테(1787), 소설책 표지의 베르테르 일러스트(가운데 1962/ 오른쪽 1989)




근대 시민의 색

낭만주의자들에게 파란색은 저 멀리 이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동시에 인간의 감정을 내면으로 침잠하게 한다. 한편 종교와 사회의 구체제적 관행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파랑은 고결하며 겸허한 덕성의 색이다. 그렇기 때문에 18세기 유럽인들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근대 시민이 갖춰야 할 교양과 도덕의 상징으로 파란 의상을 선택했다.


그리고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파란색은 '자유'라는 또 다른 상징 가치를 획득한다. 혁명 이전에 왕실을 지키던 근위대(Régiment des Gardes françaises)는 선명한 로열블루 제복을 입고 있었다. 이들은 1789년 혁명적 대의를 위해 시민의 편에서 바스티유 습격을 이끌었고, 그 결과 왕실에 의해 해산되었다. 그 후 왕실 근위대는 파란 제복 차림 그대로 혁명군에 흡수되어 시민을 위한 국가방위군(Garde Nationale)으로 활약했다. '왕의 파랑(bleu roi)'이라 불리던 제복의 색은 공화정 시대에 '민중의 파랑(bleu natioanal)'이 되어 혁명 이념을 상징하게 되었다.


신성함, 고귀함, 종교적 엄숙함 그리고 혁명 정신까지. 파란색은 그 스펙트럼만큼이나 다양한 긍정적 의미들을 더해갔다. 그렇기에 시민계급은 파란색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대 시민사회 성립 이래 남성복은 장식을 배제하고 간결한 쪽으로 평준화되어 갔는데, 청빈함과 근면함이라는 시민의 덕목을 표현하기에 파란색 만한 것이 없었다. 차분하고 깊은 마린 블루(marine blue)는 신사복과 제복의 표본이 되었고, 현재까지 색의 상징성이 이어지고 있다. 경찰이나 군인처럼 윤리의식이 중요한 직업군의 제복에 파란색이 쓰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프랑스 혁명기의 국가방위군 제복(왼쪽 1790)과 근대 시민의 남성복(오른쪽 19세기 후반)




보통 사람들의 블루

파란색이 보다 넓은 계층으로 확산된 계기는 인디고로 염색한 블루진 덕분이다.

블루진의 대명사인 리바이스(Levi's)는 공식적으로 블루진의 탄생을 1873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패션에서 '최초'라는 것은 때때로 명확하게 가릴 수 없어 크게 의미가 없다. 패션 아이템은 대개 '발명'이 아니라 '변형과 재창조'로 더 나은 것을 발견해 대중화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리바이 슈트라우스(Levi Strauss)는 골드러시의 상업 중심지였던 샌프란시스코에서 1853년 직물 도매업을 시작했다. 슈트라우스의 고객 중에는 제이콥 데이비스(Jacob Davis)라는 재단사가 있었는데 그는 리넨 캔버스(linen canvas)와 데님(denim) 원단으로 인근 노동자의 말 담요, 마차 덮개, 또는 오버롤(overalls)이라 불리는 작업복을 만들어 판매했다. 어느 날 데이비스에게 한 고객이 벌목과 같은 격렬한 노동에 적합한 튼튼한 작업복을 제작해달라고 요청했다. 데이비스는 슈트라우스에게 납품받은 튼튼한 원단으로 작업복 바지를 만들고, 봉제 부위를 더욱 견고하게 보강하기 위해 리벳(rivet)을 부착했다. 솔기와 포켓 입구를 구리 리벳으로 보강한 작업복 바지는 봉제가 터지거나 찢어지지 않아 광산, 철도, 벌목 노동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리벳으로 보강된 작업복의 상품가능성을 간파하고, 리벳의 특허출원을 위해 슈트라우스에게 재정적 지원을 요청했다. 1873년 리바이 슈트라우스와 제이콥 데이비스는 공동으로 특허를 획득했고 블루진을 생산했다.


노동자들의 작업복 바지가 어째서 파란색이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사회학자 미셸 파스투로는 파란색이 상징하는 가치가 당시 미국 자본주의 사회에 부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19세기 미국은 신교도적 가치관을 추구하고 있었기에, 눈에 띄지 않고 절제된 것을 선호했다. 그렇기에 온건한 파란색은 소박한 보통 사람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고 인디고는 두꺼운 면직물에 잘 스며들어 찬물로도 쉽게 염색이 된다. 그러나 데님 원단은 너무 두꺼웠기 때문에 완벽하게 염색이 되지 않았고, 입을수록 색이 바래는 현상이 발생했다. 물 빠진 파란색은 자연스럽고 검소한 이미지를 주어 더욱 인기가 있었다. 블루 칼라(blue color)는 그렇게 노동자를 대변하는 색이 되었다.


노동자들의 블루진은 할리우드 스타들을 통해 젊음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1950년대 영화 '위험한 질주(The wild one)'에서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가 선보인 Levi's 501, 영화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의 제임스 딘(James Dean)이 착용한 Lee 101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영화 속 주인공들이 서툴고 거칠게 세상에 맞서는 모습에 열광했다. 10대들은 할리우드 배우들처럼 블루진을 즐겨 입었고, 이제 블루진은 기성 체제에 순응하는 않는 젊음의 열정과 순수를 상징하게 되었다.


노동자의 작업복이었던 블루진은(왼쪽 1890년대 광고) 10대들의 일상복이 되었다.(가운데.오른쪽 1950년대)




최고 권위를 대변하던 왕가의 파란색은 세월이 흘러 노동자와 보통사람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리고 파랑은 서툴고 순수한 젊음을, 이상을 좇는 낭만을 표현한다. 이토록 눈부시지만 겸허하고, 열정적인 동시에 차가운 색이 또 있을까!


어쩌면 눈치챘겠지만, 멜랑콜리라는 질병을 앓고 있는 나는 블루 마니아이다. 그렇지만 파란색 물건이나 파란 옷으로 내 공간을 모두 채우는 것은 경계한다. 어떤 것은 다른 것들 사이에 섞여 있어야 그 가치가 더욱 빛나기 때문이다. 파란색은 다른 색 사이에서 숨통을 터준다. 검정 바지와 함께 입은 하늘색 셔츠, 흰 바지 위의 마린 블루 스트라이프 티셔츠, 실버 노트북에 붙은 울트라 마린 스티커처럼. 파란색은 시끄럽지 않은 방식으로 마음속에 한 줄기 기분 좋은 바람을 일으킨다. 무거운 현실 세계에게 나를 들어 올린다. 파랑새에 이끌리듯 파란색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다 보면 어쩐지 더 아름다운 세상에 도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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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록코트(frock coat) : 노동자 계층의 작업복인 헐렁한 프록(frock, 프랑스어 frac)에서 유래되어 신사들이 말을 탈 때 입으면서 18세기 중엽 라이딩 코트(riding coat, 프랑스어 르댕고뜨 redingote)로 자리 잡았다. 프록코트는 스포츠 웨어에서 조금 더 정교하게 재단된 것으로 1770년대 이후 인포멀한 평상복으로 크게 유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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