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국수지
10여 년 전 이탈리아로 여행을 갔었다.
이미 런던으로, 파리를 돌아 이탈리아로 들어간 패키지여행 같은 연수 일정이라 한국 음식이 매우 그리운 시간이었다.
5월,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 속에서 돌아다니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진한 멸치육수에 부추며, 숙주나물 가득 올려놓고, 얼음까지 동동 띄운 잔치국수가 그렇게 그리웠었다. 아침에 숙소 앞에 준비된 버스에 탑승하면서 기사에게 “그라찌에”가 아니라 “그라~지~예”라며,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인사를 하고 가이드에게 물었었다.
“가이드 상! 오늘 점심은 머 무요?”
성악을 전공하러 유학 왔다가 이탈리아에 눌러앉았다는 가이드는
“음~(매우 고민하는 표정과 뉘앙스가 필요하다) 오늘 점심은 토마토 비빔국수랑….”
그때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 아이고~ 시원한 물국수나 한 그릇 했으면 소원이 없겠네.” 하고는 웃었었다.
더운 날 시원한 잔치국수는 한국인에게 쏠 푸드(soul food)다. 그런 만큼 더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국수 잘하는 집 앞에 줄을 선다. 남편하고 둘이 사는 살림에 만들어 먹으려면 비용이며, 불 앞에 서 있어야 하는 수고로움 때문에 국숫집을 기웃거릴 때가 많지만, 그래도 만들어 먹을 때가 더 많다.
잔치국수는 멸치육수가 깔끔하게 비려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된장국을 끓일 때처럼 비리면 국수는 맛이 덜하다. 그래서 양파를 네 등분해서 넣고, 파도 뿌리째 넣어 다싯물을 내면 훨씬 깔끔하고 진한 육수가 만들어진다. 이때 육수는 좀 짭조름한 게 좋다. 나중에 국수를 먹을 때 얼음을 동동 띄우면 싱거워지니 그게 맞다. 육수는 적어도 3시간 전에는 준비해 둬야 충분히 식힐 수 있으니 여름 국수는 잔치국수도, 콩국수도 미리 계획을 세워야 먹을 수 있는 슬로 푸드(slow food)다.
육수가 준비되면, 이젠 국수에 올릴 나물을 준비해야 한다.
숙주, 부추, 애호박 정도는 올라가 줘야 제대로 된 잔치국수라 할 것이다.
먼저 숙주는 살짝 데치는 게 좋다. 너무 삶으면 식감이 떨어져 한 맛 덜하다. 끓는 물에 넣고 줄기가 투명해지려 할랑 말랑 할 때 체로 건져 찬물에 두세 번 헹군다. 그리고 여전히 냄새 속에 끓고 있는 그 물에 채를 썰어 둔 애호박을 1분이 안 될 정도로 살짝 넣었다 뺀다 싶을 만큼만 익힌 후 체로 건져 빠른 찬물 샤워를 시킨다. 그리고 마지막에 부추를 넣어 데치면 채소 준비는 끝이다.
일일이 물을 다시 끓이지 않고 한번 끓인 물로 세 가지 채소를 데쳐내야 에너지도 아끼고, 시간도 줄어든다.
음…. 애호박은 따로 무치지만, 부추와 숙주는 같이 섞어서 무치면 된다. 여름이면 부추가 자랄 대로 자라 중간에 세 등분 정도 칼집을 내줘야 국수에 들어갔을 때 덜 엉킨다. 나물을 무칠 때 굳이 간장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이미 국물에 한국의 맛이 충분히 우려나 있으므로 소금으로 무치면 색깔이 곱다. 볶은 소금을 넣고 참기름, 깨소금을 손바닥으로 갈아 넣어 짜지 않게 조물조물 무쳐내면 된다.
이젠 고명을 준비해야 한다. 잔치국수 고명은 달걀을 지단으로 준비하고, 콩국수 고명은 삶은 달걀을 준비한다. 국수마다 같은 달걀이라도 올리는 방법이 다르다.
먼저 달걀 2개를 흰자위와 노른자위를 구분해서 준비한다. 그리고 거품이 생기지 않게 저어 잘 풀어 두고 성능이 좋은 프라이팬을 깨끗하게 닦아 달군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는 아주 적게 둘러야 한다. 안 그럼 달걀튀김이 될 수도 있으니까. 기름이 좀 많다 싶으면 종이행주로 살살 닦아내면 된다. 달걀지단은 노른자위가 쉽다. 그러니 쉬운 것부터 시작하자. 지단쯤이야 뭐…. 다들 잘할 수 있지 않나? 그런데 흰자위는 좀 어렵다. 그런데 모양이 대충 나와도 익히기만 하고 나중에 썰 때 모양을 잡으면 그런대로 모양이 난다.
이젠 준비가 다 되었다.
아차…. 국수를 삶아야 한다.
국수는 엄지와 검지를 마주 잡을 만큼이 1인분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2인분을 삶아 본 적이 없다. 어째 좀 양이 부족해서 아주 조금 더 삶는데 꼭 그만큼이 나중에 남는다. 그래도 여전히 더 삶는 건 무슨 맘인지…. 물을 넉넉하게 넣어 팔팔 끓으면 국수를 풀어서 넣고 집게든 주걱이든 일단 저어주고 소금을 반 주먹쯤 집어넣는다. 국수마다 익는 시간이 다르다. 그러니 봉지에 표시된 시간을 맞춰 익히면 제일 맛있고, 탱탱하다. 국수가 끓어 넘치면 찬물을 부어서 한 번 더 끓이는 것 정도는 대한민국 사람들은 다 아는 상식이 아닐까 싶다. 삶아진 국수는 그대로 체에 받쳐 뜨거운 물과 강제 분리를 시켜야 한다. 그리고 찬물을 틀어 놓고 그 아래에서 빨래하듯 북북 비벼서 표면에 붙어 있는 밀가루를 벗겨 내야 한다. 이 과정을 대충 하면 국수에서 자꾸 밀가루 맛이 나서 영 별로다.
준비가 끝났다.
국수 그릇은 냉면 그릇 정도를 크기를 준비하고(넓적할수록 모양이 난다.) 국수를 그릇에 돌돌 말아 담고, 그 위에 숙주와 부추를 같이 무친 나물을 올리고, 애호박나물도 같이 올린다. 그리고 지단은 노란색과 흰색을 분리해서 예쁘게 올리고, 취향에 따라 마른 고춧가루, 통깨를 살살 뿌린다. 그릇 가장자리를 돌아가면 얼음조각을 서너 개 올리고 냉장고에 들어가 있던 육수를 나물이 닿을 듯 말 듯 한 높이까지 부어서 내면 음…. 이탈리아에서 그토록 먹고 싶던 시원한 잔치국수가 완성된다.
콩국수는 더 간단하다.
그렇지만 전날 저녁부터 콩을 불리는 작업을 해야 하니 맘은 절대 간단하지 않다. 흰콩도 좋고, 검은콩도 좋다. 영양은 모르겠지만 검은콩으로 만들면 좀 더 영양가가 높아 보이고, 고급스러워 보이기도 하다. 콩은 두어 번 씻은 후 물을 충분히 부어 밤새 불린다. 뒷날 아침 한 번 더 헹군 후 물에 불린 콩의 두 배 정도 넣고 30 정도 끓인다. 콩이 행여 덜 익었을 때 그 비린 맛을 아주 아주 싫어하기 때문에 차라리 메주 냄새가 살짝 나더라도 완전히 삶는다.
콩이 다 익으면 체에 받쳐 찬물로 몇 번 헹군 후 손바닥으로 비비면 껍질이 벗겨진다. 대충 벗겨졌다 싶으면 콩을 통째로 받아 논 물에 담근다. 그러면 콩 껍질이 위로 동동 떠 올라 걷어내기 좋다. 그걸 걷어내야 입에 걸리는 게 적어 좋기는 하지만 그걸 다 걷어낼 것이라 물에 오래 헹구면 고소한 맛이 다 빠져나가니 무리할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대충대충 걷어내고 믹서기에 넣고 물 조절을 해 가며 곱게 갈면 된다. 그때 볶은 소금으로 간을 좀 간간하게 하면 국수를 넣었을 때 간이 좋다.
콩물이 완성되면 통에 넣어서 냉장 보관하고 달걀을 삶아야 한다. 달걀은 끓는 물에 넣어서 중불에 11분이면 완숙이 된다.
아~ 물국수에는 오이채가 빠지면 서운하다.
오이는 소금을 묻혀 빡빡 비벼가며 씻으면 된다. 굳이 껍질을 다 벗길 필요 없이 대충 벗긴 후 채를 썰어 물에 살짝 한번 씻어 체에 받쳐 물기를 빼 두면 된다.
국수 삶는 거야 콩국수든 잔치국수든 똑같다.
드디어 준비가 끝났다.
국수 그릇에 국수를 예쁘게 담고, 오이 채를 좀 넉넉하게 올리고, 삶은 달걀은 반으로 잘라 두 개 다 올린다. 사람이 달걀 한 개는 먹어야지 나는 반개는 좀 서운해서 싫다. 그리고 가장자리에 얼음을 살짝 깔고 콩물을 국수가 잠길 만큼 부어야 한다. 그래야 배가 터질 듯 터지지 않고 든든하다. 우리 엄마는 콩국수에 꼭 통깨를 살살 뿌려 주신다. 나는 이에 끼어서 싫어하고. 아주 개인적 취향이라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구포국수 큰 다발 하나를 다 삶을 때면 여름이 슬슬 지나고 찬바람이 인다.
이젠 가을을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