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색깔, 세 가지 맛 (아카시아 꽃, 두릅 그리고 표고)
6월이 겨우 이틀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계절은 여전히 겨울과 여름의 중간계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트렌치코트를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망설이던 그때, 바로 반소매를 꺼내 입어야 했던 이상한 2024년의 봄이다. (그냥 그날이라도 꺼내 입었어야 했다)
트렌치코트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겨울 패딩에서 반팔 옷으로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5월의 막바지인 지금도 가끔 서늘한 바람이 팔뚝을 스쳐 의자에 걸어둔 얇은 패딩을 입는 날이 생긴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런 미친 계절에도 꽃들은 제 때를 알아 피고 지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아름답고, 애달픈 부지런함이다.
지난 4월 바람이 나무 끝만 흔들어도 벚꽃이 비처럼 내리는 날, 차를 탈 것도 없이 신발만 신어도 천지가 꽃구경인 호시절에 남편과 함께 사막엘 다녀왔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인천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굳이 이 좋은 계절에 사막을….’을 백번도 넘게 구시렁거리며 다녀온 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동서로 퍼진 나라가 아니라 남북으로 길쭉한 나라라 귤 같은 아열대 과일부터 날씨가 좀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해야 맛있다는 사과까지 다 맛있다. 참 신기하게도 세계지도를 펼쳐서 보면 똥 짤막한 크기에 남북이라고 할 것도 없는 나라에서 벌을 따는 양봉업자들은 봄이면 저 아래 남해부터 강원도까지 한 두어 달 쉼 없이 이동하며 꿀을 딴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양봉업자의 그런 호 시절은 다 갔지 싶다. 남쪽 끝자락인 우리 동네에서 날리던 벚꽃이 거의 북쪽 경계다 싶은 인천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렇다고 영 차이가 나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우리 동네 벚꽃이 70대 중반이라면 인천의 벚꽃은 30대의 피가 뜨거운 젊은이라고나 할까? 단단하게 나무에 잘 붙어 있어서 바람에도 흩날리지는 않았으니....,
어쨌든 그랬다.
이젠 우리나라 크기쯤 되는 동네에서는 봄이 남으로부터 올라가지도 않고, 겨울이 북으로부터 내려오지도 않는다. 그냥 덮친다. 우리는 가만히 있다가 덮침을 당하는 것이다.
봄이 우리를 덮쳐 올해도 어김없이 아카시아가 온 산을 덮었고, 어김없이 그즈음에 봄비가 내렸다. 즉 꽃이 누렇게 변했다는 것이고, 꿀 농사는 조졌다는 말이다.
아카시아꽃이 필 때면 절에서는 아카시아꽃 튀김을 한다. 아카시아꽃 튀김을 하는 날이면 두릅이나, 가죽 같은 봄 채소의 튀김도 같이 상에 올린다. 묽은 찹쌀 풀을 튀김옷으로 묻혀 튀겨낸 아카시아꽃 튀김과 초록색의 두릅이나, 가죽 튀김을 같이 차려내면 밥상이 그야말로 봄이다. 매년 봄이 되면 아카시아꽃을 따러 바구니를 들고 산으로 나선다. 너무 핀 꽃은 살짝 손만 대도 쳐져서 안 되고, 너무 덜 피면 향도, 단맛도 없어 안된다. 알아서 적당한 꽃송이를 골라야 한다.
아카시아는 송이째 살짝 씻어 물기를 적당하게 빼고 마른 밀가루 살살 뿌려가며 묻힌다. 튀김옷은 찹쌀가루와 전분 가루를 8:2 정도 섞어 살짝 밑 간을 한 후 묽게, 아주 묽게 개 준비한다. 시중에 파는 튀김가루를 사용하면 꽃잎이 살아나지 않고 떡이져 니맛 내 맛도 없는 길거리 튀김이 되기 십상이다.
기름은 무조건 깨끗해야 하고, 아무리 아까워도 사용하던 기름은 안된다. 흰모시옷을 흙탕물에 씻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마른 밀가루를 살살 뿌려둔 꽃송이를 묽은 튀김옷에 살짝 담근 후 살살 흔들어 튀김옷을 더 얇도록 털어 낸 후 온도가 잘 오른 튀김 냄비에 넣으면 다시 꽃이 하얗게 피어난다. 색깔은 한번 튀겼을 때가 제일 이쁘지만, 맛이 덜해 초벌을 빠르게 건져 식힌 후 다시 한번 온도를 높여 튀겨내면 그나마 바싹함이 오래간다.
두름이나, 가죽도 똑같은 방법으로 튀겨내면 되는데 두릅은 줄기 부분이 두꺼워 도마에 올려 줄기 부분을 칼 손잡이로 토닥토닥 눌러 깨 주면 향도 더 진하고, 식감도 좋다.
이젠 표고버섯튀김을 할 차례다. 표고버섯튀김은 젖은 표고버섯보다는 마른 버섯을 사용해야 맛이 좋다. 꼬들꼬들한 식감을 생 표고는 낼 수가 없다.
모양이 온전한 마른 표고를 잘 골라서 8시간 정도는 물에 불리는 게 좋다. 뒷날 해야겠다 싶으면 나는 자기 전에 물어 불려놓고 잔다. 잘 불린 버섯의 대 부위는 가위를 이용해서 잘라내고 꼭 짜서 물기를 뺀다. 모양이 일그러지지 않는 한 최대한 물기를 빼는 게 좋다. 버섯은 제살이 깊어 튀김옷의 간이 속까지 스며들지 못해 맹탕이 되기 쉬우니 미리 밑간 해서 튀김을 하면 한 맛이 더 있다.
물기를 잘 뺀 불린 표고에 참기름, 참치액 약간 넣어 조물조물, 아주 조물조물하게 무쳐 30분 정도 재워둬야 한다. 30분쯤 후에 다시 물기가 살짝 나와 있을 것이다. 다시 손으로 한번 질끈 짜주고 마른 밀가루를 살살 뿌린 후 튀김옷을 입혀 튀겨내면 된다. 아카시아꽃이나, 두릅, 가죽 잎과는 다르게 투박하게 튀겨도 모양이나 색깔에 영향이 없다 보니 표고버섯튀김은 무조건 맛있게 튀겨내면 된다.
봄이 막 시작할 때 취나물이며, 머위 순이며, 살짝 데친 두릅이 그 자체로 싱그러웠다면 아카시아꽃 튀김은 깊은 가는 봄을 즐기는 맛쯤 되지 않을까? 예쁜 대바구니에 새하얀 아카시아꽃 튀김 한자리, 파란 두릅튀김 한자리, 그리고 투박한 표고버섯튀김을 안치고, 가운데쯤 앙증맞은 간장 종지 하나 앉혀 내면 그걸로 충분한 봄이다. 이만하면 되었다.
동동주 한 사발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없으면 그만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