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오면 열무~
큰애를 임신하고 도대체 맛있는 게 없었다.
그렇다고 입덧이 심한 것은 아니고 단지 맛이 없었다. 여름이라 날씨도 덥고, 몸은 피곤한데 입맛이 없으니, 기운이 더 빠졌다. 그 와중에 그래도 먹어내는 건 열무김치에 강된장을 넣어 비빈 열무 비빔밥이었다.
두어 달이 넘는 여름 내내 엄마는 열무김치를 만들고, 된장을 밥솥에 넣어 쪄 그걸 우리 집으로 나르시느라 분주했었다. 덕분에 더운 여름을 잘 넘기고 태어난 딸이 올해로 30살이다. 그 아이도 열무 비빔밥을 좋아하고, 나도 여전히 잘 익은 열무김치에 된장이나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는 걸 좋아한다.
6월이 들면 날씨가 벌써 여름이다.
시장에 나가보면 열무가 지천이다. 그럼 한 단을 사서 김치를 담가 맛을 보고 더 담을까? 아님 서너 단을 담아 나눠 먹을까를 고민한다. 대부분은 두 단을 사서 엄마와 나눠 먹는다. 그런데 엄마는 고춧가루를 넣지 않는 국물김치를 좋아하고, 나는 붉은 풋고추를 갈아 넣은 김치를 좋아하니 어머니랑 따로 담아 각자 먹는 걸로 한다.
열무를 사 오는 날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밀가루 찹쌀 풀부터 끓인다. 찹쌀가루를 미리 빻아 냉동실에 보관하면 김치를 담을 때도, 찹쌀 부꾸미를 부쳐 먹을 때도 유용하다. 찹쌀가루가 없으면 밀가루를 이용해서 풀을 끓여도 좋다. (부침가루, 튀김가루는 안된다) 종이컵으로 한 컵에 물 5컵 정도 넣어 끓이면 좋은데 좀 걸쭉해도 나중의 조절이 가능하니 굳이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찹쌀 풀이 완성되면 적당히 식어야 하니 시원한 곳에 식혀두고, 이젠 열무를 절일 차례다. 엄마는 항상 열무 잎을 적당히 쳐내고 김치를 담그셨는데 내가 해보니 굳이 잎을 잘라낼 필요가 없었다. 열무는 한입에 들어가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굵은소금으로 간을 하면 된다. 이때 미리 씻을 필요는 없다. 소금으로 간할 때 마른 열무에 간이 쉽게 배지 않으니 한 층을 올리고 물을 살짝 뿌린 후 소금을 뿌리면 절이는 시간이 짧아져 좋다.
열무 간을 해 두고 이젠 양념을 만들어야 한다. 양파, 마늘, 액젓, 풋 붉은 고추, 고춧가루, 생강 약간 준비한다. 나는 열무 한 단 기준으로 양파는 한 개, 마늘은 한 뿌리, 붉은 고추는 5개 정도면 된다. 그걸 깨끗하게 씻어 액젓과 함께 믹서로 잘 갈아둔다. 적당하게 식은 찹쌀 풀에 갈아 둔 양념을 넣어 잘 섞어준다. 이때 마른 고춧가루를 한 숟가락 넣고 잘 비벼준다. 양념은 간을 봐서 들큼하니 살짝 세다 싶으면 제대로 된 거다.
열무 절이는 시간은 그야말로 적당하게 숨이 죽은 시간이니 딱히 몇 분으로 정하지는 않는다.
간을 하는 동안 두 번 정도 아래위를 뒤집어 숨을 골고루 죽이는데 우리 엄마 말씀으로는 너무 자주 뒤집어 손을 타면 풋내가 난다고 하셨다. 열무를 꺾었을 때 뚝하고 끊어지지 않고, 탱글탱글하게 휜다 싶으면 간이 다 된 것으로 보면 된다. 간이 된 열무는 흐르는 물에 서너 번을 씻는다. 나는 살짝 천천히 씻는데 소금간이 빠져나갔으면 싶어서 그렇게 한다. 잘 씻은 열무의 물기를 십여 분을 두면 물이 적당하게 빠진다.
이젠 버무리기만 하면 끝이다.
물기가 적당하게 빠진 열무에 미리 만들어 둔 양념을 넣어서 버무리면 되는데 이때도 너무 바락바락 묻힐 필요는 없다. 또 풋내가 날 수 있으니 살짝 몇 번 뒤집는다 싶을 만큼만 버무리면 된다. 양념이 좀 적다 싶은 게 알맞다. 김장 김치처럼 양념을 넣으면 익은 뒤에 좀 텁텁한 느낌이니 가능하면 양념은 좀 작다 싶을 만큼 하면 된다.
이젠 내가 할 일은 끝이 나고, 김치와 김치통이 알아서 잘 익힐 것이다. 초봄엔 이틀 정도밖에 두고, 여름이면 하루를 밖에서 재운다.
아~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잘 익은 열무를 좀 잘게 썰어 흰밥에 넣고 고추장을 조금 넣어 쓱쓱 비비면 여름 더위쯤으로 입맛 잃을 걱정은 없다. 아참. 나는 고춧가루는 청양고추를 사용한다. 그러면 익었을 때 매콤함이 한 맛 더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