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작하는 날엔 갈치조림!!!
가을이다.
습하고, 더웠던 긴 시간이 지나고 바람 속에 찬 바람이 섞여 있을 때면 아직 삼 분의 일의 시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한 해가 다 갔다고 생각할까? 가을은 늘 그렇다. 아마도 봄에 핀 꽃들이 열매를 맺어 그걸 수확하니 그 수확에 내 시간을 맞춘 게 아닐까 싶다 만. 나무야 제 한해의 몫을 다 했으니 그럴 수 있다지만 나는 나무도 아니면서 왜 그런 생각을 할까? 혹 마음이 계절보다, 물리적 시간보다 바빠서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릴 적 시골에서 살 때 나는 가을 타작하는 날을 참 좋아했다. 가을 타작을 하는 날은 항상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고, 바람도 잦아들어 날씨가 일단 좋았다. 그렇지만 날씨가 좋았다고 내 기분까지 좋았다고 할 수는 없고, 들밥 때문이 아니었을까?
타작하는 날이면 들 일에 손가락 하나 거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굳이 들밥을 이고 나가는 엄마를 따라 들로 나가서는 일꾼들 틈에서 점심을 먹었었다. 들밥이란 것이 그릇도 부족하고, 논 가장자리에 대충 볏단을 깔고 앉아서 먹어야 하는지라 비좁을 수밖에 없다. 우리 집은 할머니께서 계셨기에 엄마는 들밥을 해 나가시면서도 따로 할머니와 우리 밥을 챙겨놓으셔야 했다. 그런데도 굳이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따라나서 짚단을 깔고 앉아 먹었던 들밥이 더 맛있었던 이유가 뭐였을까?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맛. 가을 햇살 탓이다. 집에 밥이랑 다르게 들 밥에 보태진 건 가을 햇살밖에 없으니 그 탓이라 한다.
들밥에서 가장 맛있었던 반찬은 단연코 늦은 애호박을 툭툭 잘라 넣고 고춧가루와 매운 고추를 몇 개 썰어 넣어 칼칼하게 끓인 갈치조림이었다. 갈치조림은 국물을 자작하게 잡아 조린다. 일꾼들 틈에서 갈치 한 토막을 겨우 얻어먹고 나면 더 이상 내게 돌아올 갈치토막은 없다. 그럼 그 국물을 하얀 쌀밥에 떠 넣어 쓱쓱 비벼 한 입 먹는다. 그 맛이란…. 갈치는 이미 국물에 제 할 몫을 다 했으니 맛은 갈치보다 국물이다.
그런 기억 탓인지 제주도 여행을 갈라치면 팔뚝 두께만 한 제주 갈치를 제주 감귤처럼 꼭 사서 온다. 그걸 놓치고 나면 돌아와서도 눈에 자꾸 아른거려 일주일은 아쉬워한다. 그런데정작 조림용 갈치는 그렇게 굵으면 맛이 떨어진다. 재래시장에 나가면 조금 통통하다 싶은 그런 굵기가 딱 좋다. 요즘은 갈치를 손질해 달라고 하면 적당한 크기로 토막을 내주신다. 갈치는 비늘이 없을 것 같지만 번쩍거리는 게 비늘이다. 그걸 그대로 요리하면 비린 맛이 더 하니 칼날로 살살 긁어 비늘을 다 벗겨 내는 게 좋다. 넓적한 조림 냄비에 (무가 있으면 아주 조금 깔면 좋고, 없으면 말고) 갈치토막을 깔고 물이 갈치를 다 덮을 만큼 붓는다. 간은 반드시 조선간장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 마른 고춧가루를 두 숟가락 정도 넣고 일단은 끓인다.
이제부터 채소를 준비한다. 봄부터 열매를 맺은 호박은 늙은 호박으로 익어 호박죽도 끓이고, 늙은 호박전도 되겠지만 끝 여름에 열매를 맺은 호박은 죽었다 깨어나도 늙은 호박이 되지 못한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을 기대해도 대기(大器)가 되려면 물리적으로 시간이 있어야 하는 거란 걸 호박을 키우다 보면 안다. 그 호박은 애 머리통만 해지면 따서 볶아 먹든, 조림에 넣어 먹든 먹어 치워야 한다. 일단 애호박은 덤벙덤벙 음…. 감자 반 개 정도 크기로 썰어둔다. 이때 애호박은 이쁘게 썰지 않는다. 우리 엄마는 호박을 숟가락으로 떠서 넣기도 했었다. 그리고 마늘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마늘은 적당히 준비하고, 양파도 한 개쯤 들어가야 하니 결대로 약간 굵게 썰어서 호박이랑 같이 두면 된다. 가을 파는 맛있다. 아끼지 말고 뿌리부터 줄기까지 통통통 썰어 마늘이랑 같은 시간에 넣으면 되니 같이 준비한다. 이젠 재료 준비가 끝났다. 이때쯤이면 갈치가 보글보글 끓으면서 생선 살에 간이 알맞게 밴다. 이때 간을 보면 개미가 없다.
이젠 준비한 채소를 넣을 차례다. 호박이랑 양파를 먼저 넣고 한소끔 을 끓이면 호박은 주변이 살짝 투명해지고, 양파는 전체가 고춧가루 물이 들어간다. 그럼 마늘을 골고루 풀고, 썰어둔 파를 올려 파의 숨을 죽으면 맛있는 갈치조림이 완성된다. 요리책을 보면 설탕을 한 숟가락 넣고 이런 말들이 나온다만 나는 음식에 설탕을 잘 넣지 않는다. 매실청 같은 경우도 초고추장을 만들 때나, 비빔국수를 만들 때를 제외하면 요리에 쓰는 경우는 드물다. 다만, 고등어조림을 할 때 조선간장 말고 양조간장을 쓰는 걸로 단맛을 내는 게 유일하다.
갈치조림은 국물이 자작하게 넓은 그릇에 담아 흰 쌀밥이랑 먹어야 맛있다. 이때 밥이 질면 음…. 실패다. 밥이 고슬고슬해야 갈치조림 국물에 비볐을 때 밥알이 한 알 한 알 따로 구른다. 햇살이 많이 들어오는 거실에 익은 열무김치랑 먹으면 그릇에 밥을 푸는 게 의미가 없다. 어차피 그날 해 둔 밥솥에 밥은 다 바닥을 내고, 누룽지까지 끓여 먹고 나서야 숟가락을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갈치조림과 함께 가을이 되면 토란 들깻국을 만든다. 토란은 영양가가 아주 많다고 하는데 남편이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 토란국은 엄마랑 나누는 음식이다. 엄마도 나도 토란 들깻국을 좋아한다.
예전에 엄마가 농사를 지을 때는 토란을 주셨지만 이젠 시장에 가서 토란을 사야 한다. 토란은 동글동글하고 큰 밤톨만 한 게 맛있다. 요새 시장에 나가보면 달걀만 한 토란이 많이 나와 있는데 어쩐지 유전자 변형을 한 것 같아서 나는 피한다. 작고 단단해 보이는 토란을 사 와 깨끗하게 그대로 씻는다. 예전에는 생것을 깎아서 애벌 삶기를 해서 사용했는데 요새는 그냥 껍질째 삶는다. 생토란을 깎으면 손에 알레르기 반응이 생겨 매우 가려워 고생한다. 토란이 반쯤 익어 껍질을 벗길 수 있겠다 싶으면 건져 식혀두고 육수를 우린다.
육수를 우리는 동안 표고버섯과 삶아서 우려낸 토란대를 손질한다. 표고버섯은 토란 양에 맞춰 일대일로 준비하면 된다. 버섯은 물에 씻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흐르는 물에 넣어 씻는다. 물기를 털어내고 송이 부분은 네 등분하면 된다. 꽁지 부분은 끝을 잘라버리고 두 토막 정도 자르면 된다. 토란대는 삶아서 우려놓은 토란대를 산다. 농협하나로마트 가면 봉지에 넣어서 파는 걸 사서, 물에 한 번 헹군 후 물기를 짜고 살짝 밑간해서 기름 없이 볶아 둔다. 그래야 토란대의 아린 맛이 안 난다. 이건 취향의 문제이긴 한데 토란국에는 새우랑 바지락을 조금 넣는 게 맛있다. 이때 너무 ‘나는 새우다.’, ‘나는 바지락이다.’ 하면서 그 모양이 다 보이면 괜히 비린 맛이 난다. 일단 새우를 다지고, 바지락도 다진다. 다져두면 뭘 넣었는지 모르면서 아미노산의 맛이 우러나 나중에 개미가 좋다. 다진 새우와 바지락을 조선간장과 들기름을 살짝 넣어 들들 볶는다. 들기름이니까 그냥 볶아도 들들 볶인다. 이젠 준비가 끝났다.
멸치랑 다시마 만 넣고 조선간장을 기본으로 육수를 우린다. 굳이 진할 필요는 없다. 육수가 완성되면 건더기를 다 들어내고 토란이랑, 토란대, 버섯, 볶아 둔 새우와 바지락을 넣어 다 잠길 만큼 물을 넣어 토란이 다 익을 때까지 끓인다.
아차…. 들깨 물을 준비하는 걸 잊었다. 방앗간에서 미리 만들어 둔 들깻가루를 풀어서 끓이면 맛이 덜하다. 들깨를 잘 씻어 말린 후 병에 넣어 냉동실에 보관해 두는 게 좋다. 종이컵 가득 들깨를 믹서기에 넣고 물은 종이컵 5컵 정도 붓는다. 아주 야무지게 갈면 갈수록 좋다. 가는 체를 냉면 볼에 올리고 들깨 간 걸 내리는데 숟가락으로 살살 저어가면서 내려야 한다. 그리고 체에 걸러진 건더기를 다시 믹서기에 넣고 물 한 컵을 넣어 다시 1분쯤 갈아 똑같은 방법으로 내리면 들깨 물이 만들어진다. (걸쭉한 들깻국을 원하면 쌀을 종이컵 한 컵 정도 3시간 이상 불린 후 아주 곱게 갈아 쌀 물을 만들어 그걸 넣어주면 걸쭉하게 된다. 대신 잘 저어줘야 한다. 안 그러면 냄비 바닥에 들러붙어 탄내가 나서 버려야 한다. )
끓고 있는 냄비에 들깨 물과 쌀 물을 넣어 재료들을 다시 한소끔 끓이면 토란 들깻국이 완성된다. 그런데 이게 물 조절을 잘 못 하면 실패하기가 아주 쉽다. 너무 뻑뻑해도 죽처럼 먹기가 거북하고, 너무 묽으면 맛이 덜하다. 그런데 사람마다 그 좋아하는 묽기가 다르니 처음부터 너무 물을 많이 잡지 말고 끓이면서 물 조절을 하는 게 좋다. 이건 우리 엄마의 팁인데 들깨나 깨 종류, 잣 이런 부류의 견과류는 죽을 끓여도 그렇고 국을 끓여도 마찬가지로 스스로 물기를 많이 잡아먹지 않는다. 그래서 전복죽이나 호박죽 같은 것들은 끓이면 금방 뻑뻑해져 처음부터 물을 좀 낙낙하게 잡아도 실패할 일이 적지만 들깨나 깨를 이용한 죽들은 아무리 끓여도 처음 묽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물을 조금 부족한 듯 잡아 요리하면서 물 조절 하는 게 좋다.
다 끓였다 싶으면 그때는 소금간으로 마지막 간을 맞추고 먹으면 된다. 진짜 맛있다. 갈치 조림처럼 여기도 여전히 고슬고슬한 밥을 말아서 먹으면 밥알이 하나하나 씹히면서 가을 보양식으로 최고라 할 만하다.
가을이 깊었다. 도토리를 주워 이젠 도토리묵을 만들어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