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가을날 토란국을 끓이며.
토란은 아이 때는 맛이 없어 먹기가 싫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 되었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농사를 지으실 때는 토란을 수확하시면 내 몫을 따로 챙겨주셨는데 농사일을 접으시면서 더 이상 토란은 시골에서 수확해 먹는 음식이 아니라 시장에서 사서 먹는음식이 되었다.
토란은 동글동글하고 큰 밤톨만 한 게 맛있다. 요새 시장에 나가보면 너무 커 달걀만 한 토란이 많이 나와 있는데 어쩐지 유전자 변형을 한 것 같아 피하게 된다. 작고 단단해 보이는 토란을 사 와 깨끗하게 흙을 털어낸다 싶을 만큼 씻는다. 예전에는 생토란을 깎은 후, 애벌 삶기를 해 사용했지만 요즘은 그냥 껍질째 삶는다. 생토란을 깎으면 손에 알레르기 반응이 생겨 가려워 고생한다. 토란이 반쯤 익어 껍질을 벗길 수 있겠다 싶으면 건져 식혀두고 육수를 우린다.
육수 마른 표고버섯과 멸치를 기본으로 해 가볍게 끓이는 게 좋다. 육수를 내는 동안 삶아서 우려낸 토란대와 육수를 끓이면서 우려낸 표고버섯도 같이 잘라 토란 양에 맞춰 일대일로 준비하면 된다. 육수를 우린 표고는 나중에 건져 잘게 썰어 국에 넣으면 된다. 마른 표고가 맛은 있지만 좀 적다 싶으면 생 표고를 썰어 넣어도 된다. 버섯은 물에 씻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흐르는 물에 넣어 씻는다. 물기를 털어내고 송이 부분은 네 등분하면(토란 크기랑 비슷하게) 된다. 생 표고버섯의 꽁지도 버리지 말고 나무랑 맞닿았던 부분은 끝을 잘라버리고 두 토막 정도 자르면 된다.
토란대는 마른걸 사면 너무 번거럽다. 농협하나로마트 가면 삶아 봉지에 넣어서 파는 걸 사와 물에 한 번 헹군 후 물기를 꼭 짜고 살짝 밑간 후 들기름 아주 작게 넣어 볶아 둔다. 그래야 토란대의 아린 맛이 안 난다.
이건 취향의 문제이긴 한데 토란국에는 새우랑 바지락을 조금 넣는 게 맛있다. 이때 너무 ‘나는 새우다.’, ‘나는 바지락이다.’ 하면서 그 모양이 다 보이면 괜히 비린 맛이 난다. 일단 새우를 다지고, 바지락도 다진다. 다져두면 뭘 넣었는지 모르면서 아미노산의 맛이 우러나와 나중에 개미가 좋다. 다진 새우와 바지락을 조선간장과 들기름을 살짝 넣어 들들 볶는다. 들기름이니까 그냥 볶아도 들들 볶인다. 이젠 준비가 끝났다.
육수에 껍질을 깐 토란, 밑간한 토란대, 버섯, 볶아 둔 새우와 바지락을 넣어 다 잠길 만큼 물을 넣어 토란이 다 익을 때까지 끓인다.
아차…. 들깨 물을 준비하는 걸 잊었다. 방앗간에서 미리 만들어 둔 들깻가루를 풀어서 끓이면 맛이 덜하다. 들깨를 잘 씻어 말린 후 병에 넣어 냉동실에 보관해 두는 게 좋다. 종이컵 가득 들깨를 믹서기에 넣고 물은 종이컵 5컵 정도 붓는다. 아주 야무지게 갈면 갈수록 좋다. 가는 체를 냉면 볼에 올리고 들깨 간 걸 내리는데 숟가락으로 살살 저어가면서 내려야 한다. 그리고 체에 걸러진 건더기를 다시 믹서기에 넣고 물 한 컵을 넣어 다시 1분쯤 갈아 똑같은 방법으로 내리면 들깨 물이 만들어진다. (걸쭉한 들깻국을 원하면 찹쌀을 종이컵 한 컵 정도 3시간 이상 불린 후 아주 곱게 갈아 쌀 물을 만들어 그걸 넣어주면 걸쭉하게 된다.약간 전분효과 같다고나 할까? 대신 잘 저어줘야 한다. 안 그러면 냄비 바닥에 들러붙어 탄내가 나서 버려야 한다. )
끓고 있는 냄비에 들깨 물과 쌀 물을 넣어 재료들을 다시 한소끔 끓이면 토란 들깻국이 완성된다. 그런데 이게 물 조절을 잘 못 하면 실패하기가 아주 쉽다. 너무 뻑뻑해도 죽처럼 먹기가 거북하고, 너무 묽으면 맛이 덜하다. 그런데 사람마다 그 좋아하는 묽기가 다르니 처음부터 쌀 물과 국물 물을 많이 잡지 말고 끓이면서 조절하는 게 좋다.
이건 우리 엄마의 팁인데 들깨나 깨 종류, 잣 이런 부류의 견과류는 죽을 끓여도 그렇고 국을 끓여도 마찬가지로 스스로 물기를 많이 잡아먹지 않는다. 그래서 전복죽이나 호박죽 같은 것들은 끓이면 금방 뻑뻑해져 처음부터 물을 좀 낙낙하게 잡아도 실패할 일이 적지만 들깨나 깨를 이용한 죽들은 아무리 끓여도 처음 묽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물을 조금 부족한 듯 잡아 요리하면서 물 조절 하는 게 좋다.
다 끓였다 싶으면 그때는 소금간으로 마지막 간을 맞추고 먹으면 된다. 진짜 맛있다. 갈치 조림처럼 여기도 여전히 고슬고슬한 밥을 말아서 먹으면 밥알이 하나하나 씹히면서 가을 보양식으로 최고라 할 만하다.
가을이 깊었다.
잘 챙겨먹고 겨울잠을 잘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