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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 Nov 08. 2024

계절을 보내는 올바른 자세 Ⅷ

-들깨죽으로 아침을

깻잎을 먹는 나라가 우리나라 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다.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우리가 처음 고수를 접했을 때 입에서 세숫비누 냄새가 난다고 느꼈듯 그 나라 사람들도 깻잎에서 물비누 냄새가 났을 수도 있었겠다.      


  며칠 전 어른과 식사 자리에서 나이가 60살이 넘으면 태어난 곳에서 50리 안에 살다 가는 게 좋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이가 들면 날씨, 온도, 먹거리 등 처음 내 몸을 받아 준 곳의  그것들이 주는 평온이 필요하다고 뜻이었다. 당신께는 고들빼기김치가 그렇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나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내 음식이 무엇일까를 잠시 생각했다. 딱히 떠오르는 건 없지만 굳이 고향의 맛으로 기억하는 걸 찾으려고 하면 깻잎이 아닐까 싶다. 

     

 여름날 짭조름한 간장에 멸치 듬뿍 넣고, 여린 깻잎 순을 넣어 밥 위에 쪄 주시는 깻잎 장, 멸치젓에 붉은 생고추를 갈고, 잔파와 깨소금 가득 넣은 양념장에 재운 깻잎김치는 지금도 입에 침이 돌게 하는 음식이다. 초봄 약간의 감기몸살로 입안에 혓바늘이 일어 밥 넘기기 힘들 때, 누룽지 삶아 된장에 묻어 둔 깻잎이랑 먹으면 절로 회복이 되곤 했었다. 무수한 조리법으로 어머니는 깻잎을 뜯었고, 가을이면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들깨는 수북했다.      


 나는 토란을 넣은 깻국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토란도 좋아하고, 들깨도 좋아하는데 우리 어머니는 항상 그 국에 조개나, 홍합 같은 해산물을 넣어서 끓여주셨다. 싱싱하기만 하면 좋았겠지만 간혹 입에 씹히는 쌉쓰레한 그 불쾌함이 국그릇을 밀어놓게 했다. 대신 나는 들깨죽은 한 냄비를 들고 먹을 만큼 좋아했다.      


 옛날 시골에서 살 때 들깨국이나, 들깨죽을 끓이는 일은 참 번거로웠다. 무엇보다 믹서기가 없었던 시절이니 맷돌에 그걸 갈아서 깻물을 만들어야 했으니 그 무거운 맷돌을 꺼내고, 어처구니를 끼우고, 맞춰 들깨를 갈고, 쌀을 갈아야 했으니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깨 수확이 끝나면 어머니는 그 수고로움을 겪으면서 들깨국을, 들깨죽을, 그리고 시래깃국에 들깨물을 부어서 끓여주셨다. 눈물겨운 정성임을 이제야 안다. 그때도 알았더라면 먹는 것들로 훨씬 덜 까탈을 부렸을 것이리라.      


  나는 미리 빻아 냉동실에 넣어 둔 들깨는 쓰지 않는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는 맷돌에 돌려서도 해 주셨는데 요즘이야 믹서기가 얼마나 좋은데 그것도 하기 싫다고 언제 빻았는지도 모를 냉동실의 들깨가루를 쓰겠냐 싶어 누가 준다고 해도 사양한다. 


아침을 잘 차려먹진 않지만 아침을 챙겨 먹어야 할 일이 생기면 나는 들깨죽을 준비한다. 

들깨죽을 먹으려면 자기 전에 쌀을 살짝 불려놓고 자는 게 좋다. 미리 불려두지 않아도 잘게 갈면 익히는 게 어렵진 않으나 바쁜 아침에 1분도 아깝지 않든가?

 먼저 멥쌀을 좀 굵게 갈아서 물을 좀 적게 잡아 중불로 끓인다. 대충 10여 분 정도 끓이면 되는데 이때 물이 작아서 자꾸 뻑뻑해지기 때문에 물을 수시로 조금씩 보충해 주면 좋다. 그렇다고 물을 너무 넣으면 나중에 미음이 되니 물을 가능하면 조금 부족하게 넣는 게 좋다.  쌀이 적당하게 익었다 싶으면 살짝 불을 꺼 놓고 이젠 들깨물을 준비해야 한다.      


 들깨는 먼지를 물에 헹구고, 믹서기에 물과 들깨를 넣어 갈아주면 된다. 너무 뻑뻑해서 알 갈릴 수도 있으니 물은 조금 넉넉해도 된다. 그리고 대충 갈아졌다 싶으면 가는 체에 내리면 되는데 이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숟가락으로 체 바닥을 살살 긁어줘야 물이 제대로 빠진다. 그리고 그 찌꺼기에 물을 조금 더 부어서 다시 믹서기에 곱게 갈아주면 다시 들깨물이 제법 나온다. 그렇게 들깨 간 물이 만들어지면 냄비에 넣어 죽의 물을 맞추면 된다. 처음부터 들깨를 넣어 끓이면 고소한 맛이 다 날아가 아까워 나는 쌀을 거의 익힌 상태에서 들깨물을 넣는다. 소금으로 심심하게 간을 하면 끝이다.      


  보통 식사를 남편과 둘이서 하니 나는 쌀을 밥그릇에 한 그릇하고, 들깨는 작은 컵으로 한 컵 준비한다. 그렇게 준비하면 한 끼 식사로는 좀 많다만 남겨뒀다가 저녁에 먹어도 맛있다. 들깨죽에는 열무김치든, 김장김치든 어울리지 않는 김치는 없지만 나는 열무김치를 훨씬 더 좋아한다. 남편은 반찬 없이도 잘 먹는다.  


  며칠 전 시골에서 조금씩 농사를 짓고 계시는 시어머니께서 들깨를 한 되 정도 보내셨다. 냉동실에 통으로 넣어뒀으니 시시때때로 들깨죽을 먹는 호강을 누릴 수 있지 싶다. 

이 또한 가을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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