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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추구 100, 인내력 3을 가진
사람은 프리랜서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by 이재이

TCI 검사를 받았다.

유전적인 ( 바꿀 수 없는 기질 ) Temperament

후천적인 ( 바꿀 수 있는 성격 ) Character

이 두 가지를 함께 평가하는 심리 검사인데,

여기서 기질이란, 어떤 상황에서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을 뜻하고

성격이란 중요하게 추구하는 목표 및 가치에서의 차이를 의미한다고 한다.


나는 꽤나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보게 되었다.

세상에 백분위로 자극추구 100, 자유의지 4, 인내력 3.

상담받는 내내 어질어질함과 동시에

내 상태가 객관적으로 이해되었다.


나는 회사에서 부적응자였다.

사실 회사뿐만이 아니라 중학교 - 고등학교 모두

나를 결속(?)하는 것들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모조리 싫었다.

내 의사는 전혀 물어보지 않고 교복을 제대로 입으라는 명령이라니, 복종하기 싫어서 체육복을 입고 교문을 몰래 뛰어들어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와중에 벌점은 받기 싫어서 뛰어 들어간 게 어이없지만.

야간 자율학습도 아주 싫어했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시간에는 늘 창밖이 붉었고, 노을이 너무나 예뻤고, 나무가 살랑거렸다.

그런 것들을 보면 화가 났다.

나는 10대에도 10대가 너무 소중했고, 노을 지는 시간을 좋아했고, 어리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은데, 왜 책을 펴놓고 이 건물에 갇혀있어야 하지?

그리고 그 어린 친구는 지금 회사탈출자가 되었다.

스크린샷 2025-07-13 오후 5.16.15.png 야자 중에 봤던 창밖을 담아놓았다면 좋을텐데, 이건 내가 사랑하는 윤슬

수많은 강의 광고에서는 프리랜서가 되면 월 천만 원, 아니 적어도 몇 백만 원은 누구나 쉽게 얻는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현실은 회사에서보다 배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돈을 벌 수 있었다.

돈은 내 가치에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돈이 없는 시간들이 길어지니 의지도 약해졌다.

그냥 세상에 굴복하고 살았으면 지금쯤 매달 나오는 월급으로 내가 더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

그럼 지금 프리랜서 일을 더 열심히 하면 되잖아!라는 생각보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사람들이 아무리 힘들어도 회사에서 나오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었나.

불안감이 행복함과 만족감을 집어삼키는 중이다.


다시 돌아와서, 이 검사는 지금 내 마음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새로움, 모험, 자극, 변화를 추구하는 성향이 매우 강하고, 동시에 사회적 민감성도 높다.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시너지가 나는 타입인데 회사 밖은 외롭다.

그리고 유전적으로 인내심이 부족하고, 후천적으로 자율성이 낮다. 동시에 책임감 있고 타인과의 협업을 중요시하며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싫어한다고 한다.

외부로는 책임감 있고 일 잘하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으나 내면으로는 자기 확신이 낮고, 선택 앞에서 불안을 느끼는 편이다.

혼자 일하다 보면 내가 유독 '결정'하는 것을 회피하고 싫어했는데,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그래도 상담사님이 말씀하시기로는

내가 사진업을 선택한 건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고 하셨다.

계속해서 감각과 창의성을 필요로 하고, 유동적인 업무라 나에게 잘 맞을 거라고.


스크린샷 2025-07-13 오후 5.12.14.png 사진을 찍는 건 사실 아직도 즐겁다

사실 지금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무'의 상태로 가고 싶다.

그렇다고 삶을 당장 끝내고 싶거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지치고 취약하다.

그럼에도 해내야지.

바꿔서 생각해 보면, 끈기와 자기 확신을 기르는 훈련만 한다면

나는 완벽한 예술가형 사람이 아닌가!

그래 그럼에도 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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