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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체제 속 평안함을 느꼈던 단 한 사람

어린이 문학소설 '리보와 앤' by 어윤정

by 김모음





소설 속 리보와 앤은 도서관에서 일하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리보는 도서관을 안내하고, 책을 검색하고, 추천하고, 사진도 찍어서 SNS에 보내주는 일을 한다. 리보는 사람의 표정을 스캔하여 감정을 읽어낼 수 있고 사람과 소통하며 학습도 할 수 있다. 앤은 어린이 열람실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로봇이다. 어느 날 리보와 앤이 살고 있는 소설 속 세계에도 ‘플루비아’라는 바이러스로 인한 비상방역 체제가 실행되었다. 갑작스러운 비상체제에 도서관에 있던 사람들은 서둘러 빠져나가기 바빴고 도서관은 폐쇄되었다. 영문도 모른 채 리보와 앤은 하염없이 사람들이 오길 기다린다. 리보는 자신에게 책에 대해 물어보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기다렸고, 앤은 자신이 읽어주는 책을 들으려 옹기종기 앉아있었던 아이들을 기다렸다. 특히나 리보는 도현이라는 아이를 기다렸다. 하루하루 전력을 아끼며 지내던 어느 날 현관에서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 도현이를 만나게 된다. 서로가 너무나 반가웠지만 유리문의 벽을 넘을 순 없었다. 리보는 이 순간, 감정을 잊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전력이 모자라 초기화가 진행되려 했고 그 순간, 도현이의 발소리가 들리며 소설은 끝이 난다.


사람들과 같이 있어야 할 일이 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던 로봇 리보와 앤. 사람이 불편한 나. 팬데믹에 대한 정 반대의 시각을 지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 번 소지하고 다녀야 하는 마스크, 4인이상 모임 금지, 의무적으로 맞아야 하는 백신 등의 의무사항과 제한이 많아짐에 불편함을 가졌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두의 불편함으로 나는 평온했다. 말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나는 코로나19로 인한 방역제재가 싫지 않았던 사람이다. 오히려 즐겼다고 해도 좋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졌다. 물론 천성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같이 어울려 지내는 것이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성인이 되고 난 후 어느 시점에 어떤 상황에 휘말려 나에게 공격적이고 두려움을 주는 사람들을 경험했다. 사람이 무서웠다. 사람과의 만남, 아니, 잠깐의 스침 조차도 무서웠다. 내가 스치는 사람,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사람에 대한 공포로 스스로 동굴을 만들고 그 안에서 웅크리고 있을 때, 까만 털이 북실북실한 한 생명이 나의 가족이 되었다. 이 어린 생명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고, 그 결과로 이 털북숭이는 40kg까지 커졌다. 지금은 이 녀석과 같이 산책한 후에는 꽤 힘이 들 정도이다. ‘새벽’. 이 녀석의 이름은 새벽이다. 밤과 아침 사이, 그 순간의 시간을 새벽이라고 한다. 가장 고요한 시간이며, 다가올 아침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침 해가 밝기 직전 가장 어두운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내 인생의 ‘새벽’ 시간에 만난 아이라 붙여준 이름이다.


덩치가 커서 데리고 다니기 힘든 것도 있지만 가장 힘든 것은 산책할 때 마주치는 ‘사람’이었다. “어머, 어머” 소리치며 피하는 사람, “저런 큰 개를 왜 데리고 나왔대” 라며 수군거리는 사람, “에잇, 씨발” 욕을 하는 사람, 심지어 차도에 서 있는 차 안의 운전자가 유리창을 내리고 인도에 있는 나에게 “아니, 사람 많이 다니는 아침시간에 그렇게 큰 개를 데리고 나오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라며 항의하는 사람 등, 내가 세상의 표적이 된 것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들을지 모르고 했을 뒷말이었겠지만, 나는 정확히 들을 수 있었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나는 또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라는 인간은 나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만 끌어당기는 불운의 자석이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방역제재의 일환으로 대부분의 대면활동이 비대면으로 전환되고, 사람을 만난다 하더라도 마스크로 얼굴의 반은 가린 채 진행되었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타인의 얼굴을 덜 마주칠 수 있어서 좋았고, 상대방의 표정을 알 수 없어서 좋았고, 내 얼굴도 가릴 수 있어서 좋았다. ‘코로나여서’라는 말은 귀찮을 때, 부담스러울 때 늘 사용할 수 있는 제일 좋은 핑곗거리였다.


팬데믹이 끝나고 더 이상 바이러스로 허망하게 죽어가는 사람이 없고 모두가 어디든 갈 수 있는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롭다. 하지만 나는 모두가 갇혀있던 시간 속 나 홀로 자유로웠던 그때가 가끔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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