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 다닌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처음 같이 수업한 학생은 초등학교 2학년 아이였다. 그것도 1:1로.
원래는 6명 정원의 그룹수업을 해야 하지만 그 시간 대에 신청한 학생이 이 친구를 제외하고 3달 동안 한 명도 없었다. 저학년이고 1:1이니 초보 선생으로서는 괜찮은 조건이었다. 그런데 수업하면서 보니 이 친구 하나가 2-3명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구두수선 아저씨는 왜 고민했을까?”
....
“왜 가게를 비우게 되었지?”
...
“어떻게 소문이 났을까?”
....
“덩치가 전학생을 놀렸을 때, 전학생의 기분은 어땠을까?”
“... 안 좋아요.”
1:1 수업은 아무래도 한 친구를 중심으로 그 친구에게 많은 질문을 하면서 진행된다. 그런데 이 친구는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책만 쳐다보고 있거나 창밖만 바라보면서 시선을 외면했다. 빨리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건지 의자에서 엉덩이가 들썩들썩 거린다. 그렇게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고 고작 하는 말이라고는 ‘나빠요’ ‘슬플 것 같아요.’ 하는 간단한 한 마디가 전부였다. 아이의 웃음과 대답을 듣기 위해 나는 저학년들에게 100% 먹히는 똥 이야기라던가 앞에서 연극하는 것처럼 과장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헉, 갑자기 여기서 똥이 마려우면 어떡하지?”
“아아~니 잇! 사람이! 감히! 내 앞에서 이럴 수 있딴 말이요?”
“어머머머~그러게요~ 저 사람 정신이 헤까닥~! 나갔나 봐~~”
여전히 표정하나 바뀌지 않았다. 작은 미소조차도 보여주지 않았다.
글쓰기 시간에도 내가 알려주지 않으면 연필만 든 채로 멍하니 종이만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엔 내성적이고 낯을 가려서 그럴 수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혹시 수업이 어렵거나 재미가 없어서 억지로 학원에 끌려오는 것이 아닌가란 의구심이 들게 되었다. 그래서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 논술학원입니다. 00 이가 집에 가서 수업이 어떻다고 하던가요? 수업 시간엔 워낙 말이 없고 창밖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아서요. 혹시 학원 오기 싫어서 억지로 오는 건 아닌가요?”
“아니에요, 선생님. 원래 얘가 말이 굉장히 많아요. 처음에 낯을 좀 가리긴 하는데요, 친구들이랑 놀 때도 엄청 시끄럽고요, 집에서도 곧잘 말을 잘해요. 그리고 논술학원 가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싫으면 학원 가기 전부터 가기 싫은 티를 많이 내는데, 논술학원은 자기가 챙겨서 가요. 수업이 너무 재밌대요, 선생님.”
이런 두 얼굴의 사나이를 보았나. 아이의 욕구를 충족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아 전전긍긍하던 내 모습이 어이없고 허무했다. 표현이 서툰 아이인가.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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