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언제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으며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지만, 일상에서의 그는 늘 불안한 음률처럼 흔들렸다. 그는 주변 여자들에게 친절했고, 쉽게 마음을 주는 사람이었다. 지수 주변의 친구들은 물론 가족들까지 그의 바람기 다분한 성격을 걱정하며 둘의 만남을 탐탁지 않아 했다.
지수 역시 알고 있었다. 그와의 관계가 길게 이어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그의 자유분방함은 때로는 매력적이었지만, 동시에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수많은 밤, 그의 연락을 기다리며 초조해했고, 다른 여자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과, 가끔씩 보여주는 진심 어린 모습에 지수는 속절없이 끌렸다. 마치 폭풍우가 몰아칠 것을 알면서도 등대 불빛을 향해 달려드는 나방처럼, 불안한 사랑에 매달렸다.
결국, 주변의 우려대로 그는 떠나갔다. 예상했던 이별이었지만, 막상 현실로 닥쳐오니 지수의 마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오랜 시간 그의 불안정한 음표에 맞춰 춤을 췄던 그녀의 심장은, 갑자기 멈춰버린 음악처럼 텅 빈 채 고요하게 울렸다.
지수는 예상했던 이별이었기에 괜찮을 줄 알았다. 오히려 홀가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그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고, 함께 들었던 음악, 함께 갔던 카페, 심지어 그의 옷에서 나던 희미한 향기까지 모든 것이 그녀를 괴롭혔다. 주변 사람들은 "봐, 내 말이 맞지?”라며 위로했지만, 그들의 걱정 어린 시선은 오히려 그녀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마치 자신이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듯했다.
매일 밤, '내가 정말 바보 같았어.' 라는 후회와 자책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주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놓지 못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지수는 침대에 누워 끊임없이 울리는 알람 소리에 짜증스럽게 눈을 떴다.
새벽 3시, 잠 못 이루는 밤들이 반복되면서 그녀는 극심한 무력감에 휩싸였다. 지수는 문득 강렬한 탈출 욕구를 느꼈다. 익숙한 공간, 익숙한 사람들, 익숙한 모든 것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새로운 공기가 필요했다.
완전히 낯선 곳으로 떠나, 이 모든 아픔과 후회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충동적으로 노트북을 켠 지수는 저렴한 항공권 검색 사이트에 접속했다. 목적지는 정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당장 떠날 수 있는 곳,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낯선 풍경 속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화면을 스크롤하던 그녀의 눈에 '방콕 특가 항공권'이라는 문구가 들어왔다.
왠지 모르게 끌리는 이름이었다. 복잡한 도시보다는 조용하고 따뜻한 곳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에, 지수는 망설임 없이 왕복 항공권과 저렴한 리조트 숙소를 예약했다.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지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야경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그녀에게는 그저 차갑고 낯설게만 느껴졌다. 지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디 이 여행이 그녀에게 새로운 시작의 계기가 되기를, 멈춰버린 그녀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텅 빈 마음 한구석에는, 어쩌면 그곳에서라면 잊었던 자신의 웃음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이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