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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Oct 10. 2020

비련의 여주인공은 사양합니다.

초반에도 언급했듯이 난 소설이나 영화, 매체들에서 자극적으로 사용되는 성폭행이란 소재가 참 불편하다.


뉴스는 그 존재의 이유 자체가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데 있으므로, 사건/사고에 대해 건조하고 다소 자극적이더라도 있는 그대로를 보여 줄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몇 년 동안 ‘성폭행 사건’이라는 보도만 나와도 아닌 척 내 눈치를 살피셨다.)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모습은 왜 늘 이런 식인지 모르겠다.


우선, <박복하다>하다는 옛날 표현을 끌어와도 부족할 만큼 위로받지 못하는 가련한 캐릭터가 더러 있다.

마치 잘근잘근 짓밟히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인양, 상처 받다 손가락질받고 결국 감당하지 못해 자살하는 경우도 흔하다.

관객의 분노를 자아내기 위한 영화적 장치라는 걸 알지만, 그런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나도 저랬어야 하는 건가? 저렇게까지 무너져 내리지 않은 내가 이상한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싶지 않았다.


혹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폭행’ 자체가 영화적 장치로 쓰인 경우에는 더욱 심각하다.

그냥 이야기의 기승전결에서 중간 단계를 쑥 빼버리고 “아참! 앞에서 풀지 못한 떡밥은 사실 아동 성폭행이었습니다. 깜짝 놀랐죠?” 하고 끝나버린다.


믿기 어렵겠지만, 현실에서도 이런 경우가 더러 있었다.


#

스트레스를 너무 받던 어느 날, 회사의 심리 상담실을 찾은 적이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사, 계속되는 야근과 회식, 문제의 모퉁이마다 책임자를 추궁해 대는 통에 날이 서 방어하기 바빴던 공격적인 회의들.

지쳤었다.

정말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었지만, 아무에게도 털어놓기가 쉽지 않았다.

주변에 많은 이들도 다 나름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기에.


회사에 있는 심리 상담사는 참 괜찮은 대안 같았다.

<비밀이 보장된다>는 전제하에 상담실에는 종이 파일에 암호 같은 글귀로 나를 지칭하는 내 폴더가 하나 새로 생겼다.


그렇게 점심시간이나 한가한 금요일 오후 몇 번 더 상담실을 찾아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꽤나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김 부장은 일은 하지도 않으면서 불만만 많고, 강 차장은 언제나 말을 못됐게 해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것 같아요. 저렇게까지 누군가에게 무례해도 된다는 생각을 한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요."

"메일을 보내기 누를 때마다 마음이 두근거려요. 다들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방어해 내느라 바쁜데, 난 그 사이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사람이거든요. '이런 문제가 생겼는데 어떻게 풀까요?'하고 메일을 보내면 '내가 이런 이런 이런 이유로 작년에 이렇게 결정을 한 거라 난 잘못 없어요'하는 답장이 와요. 다들 고슴도치처럼 움츠려서 상대방을 찔러야 자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야근이나 회식을 너무 해서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 나는 혼자 좀 부유먼지처럼 돌아다니고, 고민 없이 읽고 볼 영화나 책을 살피는 시간도 필요한데, 야근을 하거나 회식을 하거나 둘 중 하나는 해야 해서 평일은 시간이 아예 없어요. 주말 동안은 밀렸던 잠을 몰아서 자고 일요일 오후가 되면 몇 시간 남지 않은 주말이 애달파 속이 아려와요."


누군가 그저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어깨 위의 짐들을 덜어낼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실감이 났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담사가 “오늘은 옛날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했다.

두세 번째 상담부터는 남자 친구 이야기라던가, 떨어져 살아 자주 만나기 어려운 부모님 이야기처럼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털어놓기 시작했었기에, 상담사로서는 자연스러운 상담의 흐름이었을 테다.


옛날이야기.

평범하고 따스하게 자랐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먼저 털어놓았다.

좀 가난한 편이었지만, 정 많고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부모님 덕에 저녁시간만큼은 매일 웃으며 함께 식사를 하곤 했다. 여름이면 주말마다 우리 가족이 즐겨 찾는 강가에서 캠핑을 했고, 매일 저녁밥이 준비되는 동안 아빠는 언니와 나를 자전거 앞 뒤에 태우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런 포슬포슬한 이야기들을 마치자, 가만히 듣고 있던 상담사는 이번에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말해보라고 했다.


인생의 큰 사건들이라.

사건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자연스레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성폭행'이었다.

햇살이 쏟아지던, 연한 초록의 밝은 상담실.

그 장소가 내가 털어놓을 이야기에 대해 내가 가진 끈적하고 우울한 색과는 너무나 상반돼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키워드 정도만 꺼냈었는데도 후드득 눈물이 흘렀다.


내 감정이 동요하는 정확한 포인트여서 그랬는지, 자극적인 단어가 등장해서였는지 상담사가 바빠지는 게 느껴졌다.

휴지를 뜯어주며 조금 자세를 고쳐 앉는 게 보였다.

“그래서 그랬군요.”

별 의미 없이 무심코 내뱉은 그 상담사의 한마디가 퍽 불편하게 느껴졌다면 분명 내가 예민한 탓일 것이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반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이야기하던 업무의 스트레스, 반복되는 야근과 회식의 피로, 나와 맞지 않는 기업문화에 대한 회의감 그 모든 인과관계가 또다시 한 문장으로 단순히 결론지어지는 기분이었다.

‘하아, 또 결국 여기로 돌아왔구나.’ 싶었다.  


#

사과 씨를 심었더니 사과가 열렸어요. 하는 이야기 같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맞는 말이다.

물론 사과 씨를 심었으니, 사과가 나온 거 겠지만

그 사이사이에 물을 주고, 쓰러지지 않게 부목을 대어주고, 약을 치고, 새를 쫓아낸 농부의 노력도

장마를 견뎠고, 뜨거운 여름 땡볕 이겨냈고, 몇 차례나 고비로 맞았을 태풍도 천둥도, 시린 겨울도 묵묵히 참아냈을 사과나무의 처절한 싸움도

그 행간 어디에도 녹아 있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대체로 이 길고 긴 시간에 대해서는 관심 가지지 않았다.

아마도 중간 과정 따위는 필요로 하지 않는 명확한 답변을 얻었다고 확신했는지 사람들은 그 사이사이에 내가 살아온 이야기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언제나 성폭행이란 키워드가 비참했고,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이다.


그래서 이십 대 내내 거듭된 연애의 실패가 어느 정도 내 문제임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

햇살이 참 좋던, 그 날 오후 상담실을 나오며 나는 다짐했다.

‘그래, 내가 한번 고민을 해 보자.’


그렇게 마음먹은 것만으로도 곧 속이 울렁거렸지만, 더 이상 미룰 것 없이 내가 직접 발짜국을 떼야만 했다.

나까지 내 인생을 두고 어물쩡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아마도 어릴 때 성폭행당한 게 이유였나 봐요’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분명, 그 사건은 내게 악영향을 끼쳤을 테지만 나라는 사람 전체를 지배하는 핵심은 아니리라 확신했다.


그렇게 많은 심리학 책에서 말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계인 ‘마주 보기’를 시작했다.

막 스물아홉이 되었을 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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