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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Oct 10. 2020

첫 번째 후유증

언젠가 주말 아침 눈을 뜨자마자 기분이 너무나 안 좋았다.

그냥 안 좋다는 단어보다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다고 생각될 정도의 아침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소개팅했던 분과의 점심식사가 약속되어 있었다.


그분은 예약해 둔 식당이 꽤 거리가 있다고 말하면서 동네 근처로 나를 태우러 오겠다고 했다.  

만나자마자, 근사하게 차려입은 가을 코트가 눈에 띄었다.

도착한 한적한 배경이 근사한 식당은 이런저런 한식 메뉴를 유기농으로만 만든다고 했고, 정갈한 반찬에 분위기 있는 한마디로 ‘너무나 좋은 곳’이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아직도 레고 맞추는 걸 좋아한다고 했더니 화색이 돌며 본인의 레고 만번대 수집품들 사진을 몇 장 보여줬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건물인지 단박에 알아맞힐 만큼 나도 관심이 있었지만, 아직 시작할 엄두를 못 내고 있던 취미였다.

통하는 부분이 많아서인지 점심을 먹는 내내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서는 돌아가면서 마실 커피를 주문했고, 차에 타기 전에 내 쪽 차 문을 먼저 열어주었다.

다시 (집 앞이 아닌) 동네 근처에 도착해서는 준비한 선물이라며 유행하던 예쁘게 포장된 양초 세트를 내밀었다.


그 정도 일들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다. 그게 그 분과의 마지막 만남이었기 때문에.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너무 좋은 데이트였고, 시작부터 끝까지 완벽한 느낌이었다.

사실 동경하고 있었지만, 지금껏 받아보지 못한 근사한 대접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그날 ‘더 좋은 분을 만나시면 좋겠다.’고 문자를 보냈었다.


아침부터 날 압도했던 그 우울감은 바로 소개팅으로 만난 그 분과의 약속 때문이었다는 게, 동네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 순간 날듯이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너무나 확실해졌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소개팅으로 만난 분과 만남을 이어간 경우가 없었다.

물론 보기 좋게 차인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난 만남을 중단할 갖은 핑계를 찾곤 했었다.

‘너무 감성적인 게 마음에 안 든다.’, ‘운전할 때 너무 긴장하셔서 내가 다 긴장이 되더라.’, ‘허세가 너무 심하더라.’

소개팅이나 결혼 정보 업체를 통해 주선된 만남 (아마도 ‘선’이라고 불러야겠지?) 조차도 우선 잘 해내고 싶은 승부욕이 발동했기에, 잔뜩 꾸미고 세상 좋은 사람인 척 노력을 했지만 번번이 다음 약속이 잡히면 숨이 턱 막혀오고 우울했다.


단순히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들었다거나, 그 날 만남에 무언가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완벽했던 어느 가을날의 점심식사조차도 내게는 ‘도살장 끌려가는 소’의 기분을 연상시켰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내 문제였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은 한동안 날 우울하게 만든다.

나에 대해 고민하며 정의한 첫 번째 문장이었다.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온 세상 모든 불이 동시에 다 꺼진 것 같은 적막감에 마음이 으깨져, 어쩔 줄 몰라했다.


오랜 시간 좋은 사람임을 눈으로 확인하고 서서히 정이 들었던 B와의 만남조차도 그 초반에는 잠겨가는 기분이었던 걸 생각하면, 처음부터 ‘이성교제’를 전제로 하는 소개팅이야 오죽했을까?


그 날을 끝으로 더 이상 소개팅이나 결혼 정보 회사는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 방식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나와는 맞지 않는 방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상대방에게도 혹시나 비칠 내 우울한 모습에 ‘내가 원래 그렇게 우울하거나 침울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줄 시간이 필요했고,

나 스스로도 ‘기분이 이렇게 땅까지 꺼져감에도 만나야 할’ 명분, 즉 일시적인 호감이 아닌 정성 들여 쌓은 애정 같은 것이 필요했다.


#

여기에 더해 난 낯선 이들과의 스킨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스킨십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친한 친구들의 팔짱을 끼거나 남자 친구와 손을 잡고 길을 걷는 것, 사랑하는 이들을 포근히 안아주는 것 모두를 퍽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낯선 사람들, 즉 이전부터 나와 스킨십이 있던 이들이 아니면 나와 몸이 닿는 게 싫었다.


나의 기분이 언제 어느 시점에 내려앉는지 명확히 하기 위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현상들을 적어 봤다.

- 남녀 상관없이 새로운 스킨십은 대체로 거슬린다.

- 악수 정도는 괜찮은 편이다.

- 친밀감이 없는 신체 접촉은 불편하지 않다. 신체사이즈를 잰다거나, 마사지를 한다거나.

- 이성 교제를 전제로 하는 스킨십은 그 정도와 상관없이 꽤 많이 우울하게 만든다.

- 일단 한번 스킨십을 시작하면 그 이전 단계 스킨십은 괜찮은 편이지만, (포옹한 친구와 팔짱 끼는 게 어색하진 않지)

- 그럼에도 매일 같이 스킨십하지 않는 이상, 스킨십 자체를 꽤나 의식된다.


그때쯤 대학 동기들이 의아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던 게 떠올랐다.

“수아 쟤는 놀거나 술 먹을 때 스킨십 진짜 없지. 그렇지 않아?”

당시에는 ‘여우짓’이라고 부르던 이성에게 호감을 사기 위한 의도적인 스킨십에 대해 아주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좋은 건가 보다’하고 넘겼는데, 그제야 이게 내 약점이었다는 걸 눈치챘다.


낯선 사람이랑 하게 되는 대부분의 신체접촉에 정말 세포 하나하나가 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처럼 의식하게 된다.  

일단 굳어버릴뿐더러, 그다지 유쾌하지도 않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사실들은 꽤나 내게 치명적이었다.

단순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에 더해, 지금 만나는 사람이 고장 난 똥차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날 구질구질하게 매달리게 했다.

언제나 난 만나고 있는 이 사람과 헤어지는 게 싫은 것 보다도

“하, 어떻게 다시 사람을 만나서 정들고, 우울한 일정 시간을 견디는 그 과정을 다시 하지?”하는 걱정이 앞섰다.

정말이지 최악의 문제점이었다.

게 중에는 극단적으로 나쁜 놈도 있었으므로.


양다리였다.

다른 여자 친구가 있었고, 둘은 신혼여행을 하와이로 가네, 칸쿤으로 가네 하며 진지하게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었다는 데 나만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심지어 그 여자 친구와 난 아는 사이였다.


그는 나와의 양다리 사실이 그녀에게 알려질까 무서워 ‘남자 친구라서’ 말해줬던 내 치부들을 그녀에게 온통 떠들어대며 날 허언증으로 만들어 놨었다.

나중에서야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여자 친구가 내게 전화해 '그놈 진짜 나쁜 놈'이라며 그가 했던 나쁜 짓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해 주었었는데, '설마 이런 얘기까지 했을 줄이야' 싶어 전화받는 내내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양다리에 인간적인 배신감까지 연타석으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놈과 싸우고 악을 쓴 것도 피곤한데, 그의 여자 친구의 하소연까지 듣고 있었다. 그녀는 정신과 상담을 시작했다고 했다.

‘나한테 왜 이런 얘기까지 하는 거지?’

너무 어이가 없는 상황이 연속되니까 마치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옆에서 지켜본 제삼자 마냥 그냥 좀 피곤했다.


그리고 화가 나기보단 그 녀석이 좀 불쌍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이해할 수 없는 그놈 행동들이 대체 어떤 결핍에서 초례된 건지 좀 딱했다.


가장 어이가 없는 건,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복수하고 싶고 화가 난다는 느낌보다는, 또 방안에 쭈그리고 앉아 그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아. 또 어떻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정들고, 서로의 많은 것들을 공유해 평온해질 때까지 그 시간들을 견뎌내지?

어떻게 그걸 또 하지?'


'나 어떻게 하지?'


스스로가 구제불능이라고 느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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