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엄마가 고백한 날은 내가 정신없이 우느라 잠을 못 잔 날이다. 자려고 노력했으나 눈물이 멈추지 않는 아주 지독한 날 말이다.
개인병원에 다니고 있는 나는 올해 대학병원으로 병원을 옮기는 것이 목표이다. 예전보다 좋아졌지만 아직도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더 좋아져서 예전처럼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소화하고 싶다는 희망을 대학병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우리나라 최고의 의사들이 일하며 연구하는 곳 아닌가. 내 이 희망이 헛된 희망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요 며칠, 대학병원에 가면 어떻게 내 증상을 말씀드려야 할지를 고민했다. 대학병원 진료시간은 아주 짧다는데 그 짧은 시간 내에 3년이 넘는 내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우선 나는 노트북으로 그동안의 병을 앓으면서 내가 겪었던 모든 상황을 쭉 나열하였다. 그 내용들을 5분 동안 말할 수 있는 분량으로 간추리고 간추렸다. 그 과정에서 나는 깎여나갔다.
나의 장점이자 단점은 빨리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게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따라서 나는 아주 기쁜 감정도, 아주 슬픈 감정도 감사하게도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대부분 잊는 편이다. 이런 내가 3년 동안의 기억을 회상하려고 하니 잊고 있었던 모든 감정들이 떠올랐다. 슬프게도 행복한 하루보다 불행한 추억들이 더 많이 생각났고 그만큼 나를 아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의사 선생님께 내 상황을 말씀드리는 연습을 하기 위해 입을 떼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 나는 글에 적어 놓은 내용을 끝없이 반복하며 이야기하였다. 가족들이 깰까 두려워 뻐끔뻐끔 입모양으로 내는 나의 이야기는 이내 울음이 되었다.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걷잡을 새도 없이 나에게 멍울이 된 것이다.
나는 나를 생각할 때, 여러 감정이 들곤 하는데 이 날 내가 처음 느꼈던 감정은 ‘분노’였다.
나는 왜 이겨내지를 못하는가. 왜 나는 이 병 때문에 어쩔 줄 몰라하는가. 나는 이렇게 나약한 존재인가. 그런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그동안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항상 누군가에게 너는 성실하구나, 너는 참 열심히 사는구나를 듣던 나한테 도대체 왜. 나는 열심히 삶에 임하는데도 왜 삶은 자꾸 나를 버리려 하는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의 분노는 엄마의 고백을 듣는 순간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에 대한 분노에서 엄마에 대한 연민으로 감정이 바뀌었다. 그녀를 연민하기에 그날만큼은 내가 나 자신을 상처낼 수 없었다.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