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여봐

그 이후의 이야기

by 하루

어느 날 집으로 날아든 전단지 한 장 때문이었다. ‘ㅇㅇㅇ스포ㅇㅇ 리모델링 기념 연회 원가 Hot sale!’ 겨울이 물러가는 즈음, 움터오는 새싹처럼 기운차게 뭔가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 + (터미네이터의 여주인공처럼) 목이 굵은 여자가 되고 싶다는 독특한 나의 로망이 할인행사를 알리는 전단지와 심리적 화학반응을 일으켜 1년 치 회비를 카드로 긁게 된 것은. 이런 충동적 결정을 한 데에는 겁도 없이 던진 남편의 코멘트도 한몫 아니했다 할 수 없다. “자기는… 몸에 비해… 음… 머리가 좀 커~” 본인 머리 사이즈를 망각한 실로 용감무쌍한 발언이라 발끈하고는 거울에 비춰 보니, 아니 어느 정도 그런 거 같기도 하다. 머리를 줄일 수는 없는 일. 그래.. 몸을 키우는 거야!!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보다 근력과 유연성을 키우는 운동을 하라는 트레이너의 지침에 따라 3일 동안 각각의 사용 방법을 익힌 후 결국 태어나 처음으로 기구에 앉아 이런저런 민망스러운 자세로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강호동 같은 천하장사가 앉았다 갔는지 60kg에 맞춰진 팔 운동 기구를 소심하게 10Kg로 다시 맞추고 가까스로 10번 정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으로도 숨이 턱에 차는 체력. 아~ 굵고 탄탄한 목은 너무 먼 얘기다.


50년 가까이 함께 해온 내 몸에 대해 무지하다. 팔, 다리가 얼마나 펴질 수 있는지(왼다리, 오른 다리가 90도 겨우 벌어진다.), 관절이나 뼈는 어떻게 구부려지는지, 근육은 어느 정도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지, 심장은 얼마나 격렬하게 뛸 수 있는지. 남해 바다색 같이 파란 체조 매트에 앉아 15도 이상 더 휘어지지 않는 등을 앞으로 구부리려 힘쓰다 보면 일렁이는 바다에 떠 있는 것처럼 멀미가 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몸에 대해 무지한 것만큼이나 마음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다.


감정의 증폭장치가 커도 삶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던 때. 일상은 스팽글처럼 반짝거리고 어깨의 짐이 솜사탕처럼 가벼웠던 때. 증폭되는 감정으로 인한 통증이 아프다가도 통증이 지나면 찾아오는 열락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다. 음악을 오래도록 즐기고 싶다면 오디오에 맞는 적절한 증폭장치가 필요한 걸 지금은 안다.(안다고 꼭 아는 대로 되는 건 아니다.) 질풍노도가 아니어도 그 미세한 진동 속 시시각각 바뀌는 마음의 모양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지. 마음에 데이지가 피고, 소슬바람이 불고, 소나기가 내리고 볕이 드는 때를, 별이 뜨는 때를 알아야지.


내년 2월까지는 이미 낸 돈도 있으니 어쨌거나 열심히 운동을 해 볼 작정이다. 허리는 30도쯤 휘어지게, 다리는 135도쯤 벌어지게, 20kg는 거뜬히 움직일 수 있게.. 그래도 터미네이터 여전사는 터무니없겠다. 몸을 움직이는 게 마음을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된다. 마음에도 이두박근, 삼두박근 근육을 붙여 보련다.


2017년 1월 5일. 딱 5년 전 1월 내 마음의 풍경을 엿본다. 그 후 며칠 더 운동기구와 씨름하던 나는 어느 토요일 아침 혼자 일어날 수 없어 업혀 급히 병원엘 갔다. 목디스크라는 진단을 받고 결국 11개월 남은 회원카드를 남편에게 양도(남편도 11개월을 다 못 채웠다.)하고 아쉬운 대로 요가를 시작했다. 목이 굵은 여전사 로망은 접었다. 지금은 집에 있는 보라색 요가 매트 위에서 아~~ 주 조금씩 유연해지고 있는 아직 뻣뻣한 몸을 움직이며 가끔 증폭장치가 고장 나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하루를 닫는다. 여전히 90도와 15도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지만 10년 더 해 보자. 더 잘 들여다 봐 주면 더 유연해지지 않을까. 몸도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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